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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브이아이피' 박훈정 감독, 가지 않은 길

최송희 기자입력 : 2017-08-23 16:52수정 : 2017-08-23 16:52

영화 '브이아이피'의 연출을 맡은 박훈정 감독[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요즘 말로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다르다. 영화 ‘부당거래’를 지나 ‘악마를 보았다’, ‘신세계’로 이어지는 박훈정 감독의 누아르는 신작 ‘브이아이피’를 통해 정점을 찍게 됐다. 경찰과 검찰의 정치, 조직폭력배 간의 알력 다툼에서 국가와 국가 간의 이해관계에 따른 정치까지. 박훈정 감독의 세계가 더 넓어졌다.

영화 ‘브이아이피’(감독 박훈정·제작 ㈜영화사 금월·공동 제작 페퍼민트앤컴퍼니·배급 워너브러더스 코리아㈜)는 북에서 온 VIP가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상황 속 이를 은폐하려는 자, 반드시 잡으려는 자, 복수하려는 자,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네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범죄영화다.

최근 아주경제는 영화 개봉을 앞두고 박훈정 감독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여러 이유로 여타 누아르 영화와 궤를 달리하는 ‘브이아이피’는 박 감독의 전작과도 차별점을 띄고 있었다. 드라이하고 정제된 인물들과 그 관계성, 더욱 넓어진 세계관 등은 박 감독에게도 이후 등장할 누아르 영화에도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였다.

영화 '브이아이피'의 연출을 맡은 박훈정 감독[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다음은 박훈정 감독과의 일문일답이다.

각본을 맡았던 ‘악마를 보았다’에 비견되던데. 더 차갑고 드라이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 그런 이야기는 좋다. 작품 의도였다. 서늘하고 차갑고, 거칠고, 드라이한 걸 만들어보고 싶었다.

사건 중심의 영화라고 누차 강조해왔다. ‘사건’을 준비해가는 과정이 중요했을 텐데
- 캐릭터들이 사건 아래로 던지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캐릭터끼리 동질감을 느끼거나 동화돼가거나 교감을 나누는 브로맨스 같은 건 없다. 냉정한 영화 톤에 맞춰서 캐릭터들도 냉정한 인물들로 꾸렸다.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만나면 부딪치는 관계를 그렸다.

캐릭터들이 구구절절하지 않더라
-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국정원 요원인 재혁(장동건 분)이나 경찰 이도(김명민), 공작원 대범(박희순 분)까지. 모두가 북에서 온 VIP 광일(이종석 분)을 원한다. 예컨대 이런 거다. ‘너도 얘를 원해? 하지만 나도 얘를 원해’ 같은 상황들. 각자 내 상항이 더 급하다고 우기는 거다. 서로 각자를 원하는 걸 위해서 부딪치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우정이 쌓이고 감정을 교류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시나리오를 쓰면서부터 그런 생각을 했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차갑길 바랐다.

영화의 구조나 캐릭터가 기존 누아르 장르를 비껴간다. 하지만 제작사나 주변에서 바라는 누아르의 구조나 요소들이 있었을 텐데
- 있었다. 브로맨스 같은 거…. 가장 염려했던 건 감정적 교감이 없고 건조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게 바로 그 점인 터라…. 하하하. 너무너무 드라이해서 모래알을 씹는 것 같은 느낌과 관계가 그려지길 바랐다. 동시에 서늘하게 돌진하는 느낌으로. 이번 영화는 내용적으로 그런 스타일이 맞다고 생각했다.

영화 '브이아이피'의 연출을 맡은 박훈정 감독[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기획 귀순자를 영화 소재로 사용한 건 ‘브이아이피’가 최초다
- 가장 한국적인 소재인데도 지금까지 사용되지 않았더라. 왜 없지? 하지만 없으니까 해야지. 하하하. 이야기나 스타일, 톤이 낯설다 보니 이야기는 명확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획 귀순을 소재로 이야기를 엮으면서 딱히 어려운 점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럼 어떤 점이 어려웠나?
- 이야기적이나 연출적으로 어려운 건 없었다. 다만 처음에 ‘난 이런 스타일의 누아르를 할 거야!’라고 말하고 그대로 돌진했는데 관객에게 보여줄 시간이 다가오면서 점차 고민과 갈등, 겁이 나는 거다. 호기롭게 만들긴 했는데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걱정이 된다. 많이 보셔야 할 텐데 너무 낯설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고.

박훈정 감독 하면 덕후들이 가장 사랑하는 감독 아닌가?
- 그런가? 체감을 잘 못 한다. 저도 좋아하는 거 하나만 파는 스타일이라서 (팬들이) 좋아하는 걸까?

덕후들의 마음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작품에 꼭 녹아있어서 그런 것 같다
- 저 역시 좋아하는 작품은 수십 번씩 돌려보고 새로운 걸 찾아내려고 하는 편이다. 은연중에 제 작품에도 그런 설정이나 디테일을 심어놓았을 수도 있다.

영화 '브이아이피'에서 광일 역을 맡은 배우 이종석[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가 공개되면 광일 캐릭터가 가장 화제가 될 것 같은데
- 광일은 기존 사이코패스 캐릭터들과 다르길 바랐다. 설정들이 여타 사이코패스들과 다르다. 태생 자체가 귀한 로열패밀리 거기다 외동아들이다. 어떤 행위를 감추거나 의식할 필요가 없는 거다. 범죄 사실을 숨기거나 의식을 치르거나 작업하듯 굴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니들이 어떡할 건데?’라는 태도를 가진 인물이다.

광일을 연기한 이종석에게 따로 주문한 것도 그런 태도였겠다
- 종석이에게 ‘너는 중세 봉건 영주의 외아들’이라고 설명했다.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걸 다 했었고 집에서 키우는 개나 소, 말을 죽였을 땐 재산이기 때문에 혼이 났지만, 그 마을 사람들을 해쳤을 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런 어린 시절을 가진 인물이고 그것만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이코패스 역할을 탐내는 배우들이 많았을 텐데. 이종석 캐스팅에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 종석이 정도면 스타지 않나. 그 정도 되는 친구들은 말로는 센 거 하고 싶다고 하지만 막상 작품이 들어오면 망설인다. 종석이가 (광일 역을)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을 때도 ‘왜?’라고 물어봤다. ‘이거 영화 잘 되면 광고 끊길 텐데?’ 하하하. 종석이는 배우로서 욕심이 있는 친구라 좋았다. 적극적이고 마음가짐도 좋았다. 스타기도 하고 이런 역할을 안 하더라도 멋진 역할도 많은데 본인도 배우로서 욕심이 있는 것 같더라.

(왼쪽부터) 영화 '브이아이피' 스틸컷 중, 이도 역의 김명민, 광일 역의 이종석, 재혁 역의 장동건[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재혁은 어땠나? 극 중 가장 큰 심경·태도의 변화를 겪는 인물인데
- 유일하게 심정적 변화가 있는 캐릭터다. 국정원 요원들 역시 광일이 예쁜 게 아니니까. 그들이 (광일을) 대하는 태도나 표정은 ‘싫지만 회사에서 시키니까 해야 한다’는 느낌이 있길 바랐다. 체제에 순응적인 인물인데 어떤 사건을 겪고 다시 로컬로 떠난다. 피곤하고 초췌할 거고 결여된 느낌이 있는 캐릭터였다. 광일이 남한을 헤집고 다니는 것에 대한 자책도 있었고. 우리 영화 중 감정적 변화가 가장 큰 인물이다.

개인적으로는 채이도 캐릭터가 가장 좋았다. 체감상 가장 센 캐릭터였다
- 무대포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분명 머리도 좋고 잘난 캐릭터다. 마음대로 다해야 하는 인물이다. 윗사람을 대할 때나 아랫사람을 대할 때나 한결같지 않나. 제가 볼 땐 이도가 폭력적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서 나쁜 경찰 같지만 또 어찌 됐든 범인을 잡겠다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으니 마냥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 그사이에 타협이나 합의도 없고. 그런 성격은 개인적으로 저도 좋아하는 부분이다.

영화를 총 다섯 챕터로 나눴다. 최근 영화들에는 보기 힘든 구성이었는데
- ‘브이아이피’의 시작은 소설이었다. 책으로 쓰려고 나눠놓은 거라 (형식을) 바꾸기가 어려웠다. 처음에는 5개의 챕터, 4개의 인물챕터까지 총 9개의 챕터가 있었다. 그런데 너무 많다고 해서 인물 챕터를 다 빼게 된 거다.

영화 '브이아이피'의 연출을 맡은 박훈정 감독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브이아이피’에서 가장 우려되는 건 여성 캐릭터를 소모하는 방식이다. 이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텐데
- 저희도 걱정하는 부분이다. 사실 광일의 악마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게 그 신뿐이었다. 너무 자극적인 것 같아서 신을 덜어내야 하나 고민했는데 그 장면이 약해질수록 광일 패거리의 악마성도 약해지더라. 당시에는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 필요 이상으로 불쾌하거나 공포스러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가 간과한 부분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 여성들이 일반 남성들 이상으로 크게 반응한다는 것을 몰랐다. 무지했던 거다.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여성 캐릭터를 이용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바뀐 듯하다. 계기가 있던 걸까?
- 점차 이뤄졌다. 개인적으로 강자, 거대한 조직, 시스템, 주류에 비아냥거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약자와 소수를 그리는 방식이 너무 쉬웠다. 내가 비겁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체감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깨달음이 다음 작품에도 영향을 미칠까?
- 당연히 미칠 거다. 이런 영화를 못 찍을지도.

누군가에게 딱 10분만 영화를 보여줄 수 있다면 어느 부분을 보여주고 싶은가?
- 10분이라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처음과 끝을 보여줘야 한다.

다섯 챕터 중 한 챕터를 고르자면?
- 북에서 온 VIP 챕터를 보여주고 싶다. 저런 애를 처리 못 해서 무기력한 모습, 우리 시스템이 마비되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챕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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