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 미운 자식에게 떡을 줘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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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원 기자
입력 2017-08-1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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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 미국의 한 에너지 회사가 파산 신청을 했다. 이 회사는 월스트리트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포천'이 선정한 미국 내 가장 혁신적인 기업에 6년 연속 선정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회사의 파산은 투자가들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줬다. 게다가 이 회사가 분식 결산으로 빚을 감추고 이익을 부풀려온 사실마저 드러났다.

당연히 회사 주가는 급락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도 잃었다. 주식 투자에 사용된 직원들의 퇴직금도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바로 분식회계 사태로 유명한 엔론에 대한 얘기다.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는 기소됐고, 외부감사를 맡은 회계 법인도 파산했다. 두 명의 CEO 중 케네스 레이는 2006년 유죄 판결을 받고 최종 판결을 기다리던 중 세상을 떠났다. 또 다른 CEO 제프리 스킬링에게는 24년 4개월 형이 확정됐다. 
 
단지, 먼 나라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부끄러운 분식회계 흑역사가 존재한다. 외환위기가 불어닥친 1990년대 후반 대우그룹 분식회계는 사회 전반을 크게 뒤흔들었다.

2003년에는 SK그룹 분식회계 사태가 터졌고, 2014년 모뉴엘 사태 역시 잘 알려진 사례다. 2016년에도 대우조선해양 사태가 사회를 혼란에 빠뜨렸다. 그리고 올해 들어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채무 재조정안이 확정되면서 겨우 고비를 넘겼다.

그런데 불과 몇 달 되지 않아 한국항공우주(KAI)가 분식회계 의혹을 사고 있다. 방산비리 의혹으로 수사를 받아온 KAI가 수천억원대에 달하는 분식회계를 저지른 혐의에도 연루된 것이다.

14일 외부 감사를 맡은 삼일회계법인은 KAI의 상반기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의견으로 '적정'을 제시했다. 그러나 여전히 분식회계 의혹을 떨쳐낸 것은 아니고, 검찰 수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미국과 한국 모두 분식회계 흑역사를 겪었지만, 이에 대한 대응은 사뭇 달라 보인다. "일벌백계(一罰百戒)해야 한다"는 말을 종종 한다.

한 사람에게 벌을 줘 백 사람을 경계한다는 뜻이다. 다른 이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본보기로 중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다.

분식회계를 근절하기 위해 정부도 개선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백약이 무효다. 그렇다 보니 솜방망이 처벌이 문제란 지적이 계속해서 나온다.  분식회계 연루자들을 일벌백계하지 않는다면, 현실적으로 이를 근절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처벌의 형평성도 중요하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가 불거졌을 때 유독 외부 감사인에게만 책임을 떠넘기고, 실제 잘못을 주도한 기업은 면죄부를 받았다는 논란이 많았다.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의 의미를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분명 잘못된 말이다. 예쁜 자식이 잘못을 했을 때에는 당연히 혼을 내 옳은 길로 안내해야 한다.

미운 자식도 예외일 수 없다. 미운 자식이 잘못을 했을 때에도 떡을 하나 더 줄 게 아니라, 엄하게 처벌해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은 "회계 부정은 특정 기업뿐 아니라 경제 전체를 무너뜨리고, 투자자의 목숨까지 빼앗아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틀린 말이 아니고, 기업인이나 회계인 모두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분식회계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처벌을 만만하게 봤기 때문일 수 있다. 잘못을 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내려야 한다. 미운 자식에게 떡을 하나 더 줘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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