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현칼럼] 대통령에게 ‘노’라고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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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6-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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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칼럼
(초빙논설위원·전 주호주대사)
 

[사진=김봉현]




문재인 대통령이 “반대의견을 말하는 것은 참모들의 의무”라고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신선하고 멋있게 들렸다. 그동안 우리 사회, 특히 청와대에서 ‘적자생존’(받아 적어야 산다)이 얼마나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주었던가?

그러나 인사권을 가진 대통령에게 반대의견을 제시한다는 것은 말이 쉽지 실제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 이유는 첫째, 참모의 반대의견이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워한다. 궁정시대에서는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분위기를 잘 살펴서 해야 했다. 지금은 목숨은 아닐지라도 자리를 내놓아야 할지 모른다. 그러한 사례는 많다. 최근 임명된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국장시절 올바른 말을 하다가 ‘잘렸다’.

공자는 “반대의견을 개진하려면 반드시 윗사람의 신뢰를 확실하게 확보한 연후에 해야 한다(信得而後諫)”고 하였다. 윗사람으로서는 자신에게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참모가 진정 자신을 위해서 반대한다는 믿음이 있어야 자신에 대한 비방으로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반대의견 전달을 ‘측근’들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러나 아무리 측근이라고 해도 너무 자주 반대하게 되면 결국 윗사람의 심기를 거스르게 된다. 삼국지에서 조조(曹操)의 최측근이었던 순욱(筍彧)이 죽음을 당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둘째, 대통령이 갖는 정보의 깊이와 폭을 참모들이 따라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그러하게 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초기에는 주변의 의견을 잘 듣다가 나중에는 귀를 닫았다고 한다. 이는 박 전 대통령이 초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참모들의 말에 들을 만한 내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금방 알게 된다.

지금과 같이 장관이나 참모들이 1, 2년마다 교체되면 새로 임명된 이들은 정보량과 질의 측면에서, 그리고 국가 운영의 기술적 측면에서 대통령과 비교가 되지 않는 열등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말 한마디 잘못하여 자신의 무지와 무능을 대통령에게 드러내게 되는데, 이들이 어찌 자유롭게 대통령에게 반대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까?

셋째, 대통령이 다루는 국가적 의제들은 그리 단순한 문제들이 아니다. 참모들도 어떤 결정이 옳은 것인지 쉽게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해 당사자들 간의 첨예한 대립이 발생하는 이슈는 더욱 그러하다. 주관적인 철학과 신념의 차이에 따라 결정이 달라지게 된다. 결국 대통령의 철학에 따라서 결정될 수밖에 없다. 참모가 자신의 철학을 대통령에게 강요하기가 어렵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참모들의 용기 부족과 이기심, 그리고 윗사람들의 닫힌 마음 때문이다. 참모의 입장에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영(零)점이지만 침묵하면 50점은 받을 수 있다는 나름대로 이기적이지만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보스가 닫힌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참모들은 더욱 말을 하지 못한다. 모처럼 용기를 내어 의견을 내었는데 보스가 그 의견을 평가절하하거나, 화를 내거나, 아니면 레이저 광선을 내뿜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반대의견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이 현상은 우리나라와 같이 유교적 교육을 받은 문화 전통에서 더 자주 나타난다.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불경으로 여겨지거나, 질문하였을 때에 모욕을 주거나 평가절하하는 현장을 목격한 학생들은 성인이 되어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침묵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반대의견 제시를 미덕으로 칭하였지만 참모들이 얼마나 반대의견을 말하게 될지 모르겠다. 문재인 대통령의 열린 마음과 참모들의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참모들은 끝없이 공부하고 연마하여 대통령이 들어서 참고가 될 수 있는 정교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은 또한 그러한 참모들을 물색하여 오래 곁에 두어야 한다.

그러함에도 윗사람에게 듣기 거북한 말을 간언하는 것은 역시 쉽지 않다. 그래서 반대의견 제시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미 국무부는 1971년부터 ‘반대의견 통로(dissent channel)’를 개설하여 반대 의견들을 자유롭게 올릴 수 있게 하였다. 의사결정권자는 결정하기 전에 이 반대의견 통로에 올라온 의견들을 읽어보아야 한다. 그리고 반대의견을 올린 사람은 보호를 받도록 되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반대의견 제시 요청도 지켜질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그냥 국민들에게 립서비스하는 데 불과하게 된다. 제도적 보장이 없는 상태에서 윗사람에게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들은 다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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