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창] 시마무라의 교훈 “우리는 도박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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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2-02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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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생활경제부장 = 패스트패션(SPA)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유니클로. 일본 의류업계 1위인 패스트리테일링이 만든 브랜드다. 국내에서도 수년째 SPA시장 정상을 꿰찬 유니클로지만 최근 일본에서 모기업의 분위기가 심상찮다.

같은 패스트패션 콘셉트를 추구하는 경쟁기업 시마무라 때문이다. 일본 의류 업계에서 단일 브랜드로는 유니클로가 1위지만 최근 시마무라가 2위까지 치고올라오자 패스트리테일링으로선 이내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게 시마무라는 6개월(지난해 3월~8월)간 매출 증가율이 6.2%로 패스트리테일링의 5.4%를 앞질렀다. 순이익은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46% 증가했다. 일본 내 매장수만 해도 유니클로가 960여개인데 반해 시마무라는 2000여개로 크게 늘었다. 매출규모에서 유니클로(약 1조7000억엔)가 시마무라(약 5200억엔)보다 3배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랄만한 일이다.

당황한 패스트리테일링은 유니클로보다 더 싼 가격의 브랜드 'GU‘까지 론칭하며 수성전략을 폈지만 영업이익 증가세에 있어 시마무라에 5분기 연속 밀렸다. 

일본 내에서 시마무라가 ‘패션업계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셈이다. 그런데 시마무라의 성장비결을 보면 의외로 단순하다. 블룸버그통신은 시마무라가 지난 5분기 연속 영업이익 증가세로 유니클로를 압도했다며 그 배경으로 군더더기를 쏙 뺀 '노 프릴'(no-frills) 전략과 초저가 전략을 꼽았다.

1953년에 세워진 시마무라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패션기업임에도 지금껏 디자이너가 없고 유명인사를 모델로 쓰지 않는다. 1140엔(약 1만2000원)짜리 카디건에서부터 900엔(약 9500원)짜리 스키니팬츠까지 제품이 다양한데 이것도 대부분을 해외의 저가 제조업체에서 공급받아 자국에 판매한다.

더 특이한 것은 일본 내 2000개 매장 대부분이 도심의 쇼핑가가 아닌 교외 대로변에 위치했다는 점이다. 유니클로를 비롯해 자라, H&M 등 대부분의 SPA 브랜드들이 패션에 민감한 젊은층이 모여드는 도심에 매장을 낸데 반해, 시마무라는 ‘외곽’을 선호했다. 도심보다는 교외에서 쇼핑하는 빈도가 높은 주부와 여고생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시마무라의 노나카 마사토(野中正人) 사장은 자신의 경영원칙에 대해 "우리는 도박을 하지 않는다"며 "이길 수 있고, 잘하는 일에 매달릴 뿐“이라고 설명했다.

일본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이라는 불황기를 겪으며 디플레이션 수렁에 허덕인 상황에서 시마무라의 독보적인 성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한국의 패션업계로 눈을 돌릴 때 지나치게 외형성장에 주력했던 우리기업들이 지금 심각한 ‘구조조정’ 수순을 밟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외형보다 실속을 챙긴 시마무라의 성장역사에 더 눈이 쏠린다.

국내 패션업계는 장기불황 여파로 최근 몇 년 사이 관련사업을 접거나 매각, 혹은 축소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경제 저성장 기조가 굳어지면서 가계 소득이 떨어지고 소비 심리는 위축돼 소비자들이 의류지출을 대폭 줄인 게 컸다. 그럼에도 아이러니한 것은 대형 패션기업들이 지갑을 닫은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추기보다는 불황탈출의 묘수로 브랜드 확장이나 해외진출 등 거대자본을 앞세운 외형확대를 추구했다는 점이다.

물론 앞선 사례처럼 젊은층의 소비자를 겨냥한 SPA 시장과 같은 맥락에서 패션업계 전반을 해석할 수는 없다. 다만 최근 리딩 패션기업들이 당초 내건 ‘목표점’과 달리 대부분이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며 관련사업을 접거나 구조조정에 나선 사례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 우리 패션기업들이 탈출구를 잘못 찾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실제 삼성물산 패션부문과 LF, 코오롱FnC 등은 나란히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이 대부분 두 자릿수 하락세를 보였고 SK네트웍스는 패션사업 부문을 현대백화점그룹 패션 계열사인 한섬에 통째로 매각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도 남성복 ‘엠비오’ 핸드백 ‘라베노바’를 접었고 LF는 여성 영캐주얼 질스튜어트의 세컨드 브랜드 '질바이질스튜어트'와 남성복 '일꼬르소'를 백화점에서 뺐다. 해외시장에서 승승장구하던 이랜드그룹은 자금 조달을 위해 캐주얼 브랜드 '티니위니'를 중국기업에 매각했으며 패션그룹 형지도 지난해 아웃도어 사업 철수에 이어 최근 중국에서 전개하던 남성복 브랜드 '본지플로어'와 '예작'의 사업철수를 결정했다.

이밖에 포에버21 등 제조·유통 브랜드가 국내사업을 철수했고 아웃도어기업 네파도 세컨브랜드 ‘이젠벅’을 철수하기로 했다.

그야말로 패션업계가 ‘사업철수’라는 도미노 사태에 빠진 형국이다. 시마무라는 유니클로가 일본시장이 포화상태라고 보고 해외로 눈을 돌리는 동안에도 인구 노령화 추세에 적응하겠다며 '안방'을 고수했다. 그리고 조직을 슬림화하고 결제시스템을 간소화했으며 종업원의 80%를 파트타이머 직원인 주부들로 채웠다. 

이처럼 시마무라는 국가적 불황에 소비자들이 의류구매를 꺼리자 그들만의 '눈높이 방식'으로 소비자들을 다시 돌아오게 만들었다. 외형확대를 꾀하며 '도박' 같은 사업성공을 꿈꾸는 한국 패션기업들이 시마무라의 낮은 자세를 되새겼으면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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