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책을 만나다] '맘충이' '여혐'…내면화된 성차별, '여성'의 삶을 억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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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0-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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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년생 김지영 | 나는 왜 네가 힘들까 | 난쟁이가 사는 저택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밀린 집안일, TV리모콘과의 손가락 씨름, 아이들과 놀아주기 등 주말·휴일엔 '의외로' 할 일이 많아 피곤해지기 일쑤다. 그렇지만 책 한 권만 슬렁슬렁 읽어도 다가오는 한 주가 달라질 수 있다. '주말, 책을 만나다'에서 그런 기분좋은 변화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지음 | 민음사 펴냄

 

'82년생 김지영'                                                                                                                     [사진=민음사 제공]



'여권(女權) 신장(伸張)'.  90년대에 본격적으로 대두하기 시작했으니, 이 두 보통명사의 조합이 우리 사회에 널리 쓰인 지도 어느새 20여 년이 됐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을 이 시간에 여성들의 권리는 정말 늘어났을까?

안타깝게도 2016년 한국은 '맘충'(Mom+蟲)  '여혐'(여성혐오) 같은 뜨악한 신조어가 득세를 하고, '메갈리아'(남성혐오 성향의 사이트)가 '뜨거운 감자'로 떠로으는 등 페미니즘 논란이 뜨겁다. 

지난 2011년 지적 장애가 있는 한 소년의 재능이 발견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삶의 부조리를 그려낸 작품 '귀를 귀울이면'으로 데뷔한 작가 조남주가 이번엔 한국의 30대 여성들의 보편적 일상을 세밀하게 파헤쳤다. 

슬하에 딸을 두고 있는 34세 '김지영'은 어느 날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인다. 시댁 식구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친정 엄마로 빙의해 속말을 뱉어내는가 하면 남편의 결혼 전 애인으로 빙의해 그를 놀래기도 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남편은 김지영의 정신 상담을 주선하고, 그녀는 정기적으로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삶을 풀어내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담당 의사가 김지영의 자기 고백을 재구성해 기록한 리포트 형식을 취한다. '그때 그 상황'에서는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차분히 쏟아 내는 그녀의 말들은 '김지영'을 이 시대 여성의 대변자로 삼기에 충분할 정도로 사실적이고 자세하다.

흥미로운 점은 1982년에 태어난 여아 중 가장 많이 등록된 이름이 '지영'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이 시대 젊은 여성들의 삶을 보편적으로 그리기 위한 작가의 전략적 선택이기도 하지만, 김지영이라는 개인의 고백을 30대 여성들의 고백으로 볼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 소설이 눈길을 끄는 것은 1999년 남녀차별금지법 제정, 2001년 여성부 출범 등 성평등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이후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여성의 삶을 억압하는 성차별적 요소들을 가감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사, 통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지난 20여 년간의 '성차별 역사'를 꼼꼼하게 취재한 저자의 발품에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192쪽 | 1만3000원


◆ '나는 왜 네가 힘들까' 크리스텔 프티콜랭 지음 | 이세진 옮김 | 부키 펴냄

 

'나는 왜 네가 힘들까'                                                                                                                [사진=부키 제공]



"지금 몇 시야?" 회식을 마치고 밤늦게 귀가한 남편에게 아내는 충분히 예상되는 질문(항의)을 던진다. 

이어지는 대화는 뻔하다. "누군 좋아서 술자리에 오래 붙어있는 줄 알아? 나도 피곤해" "나와 가정에는 아무 관심도 없어? 이 집은 나만 지키고 있는 거지?"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로 전 세계 수많은 '감각 과민증' 독자들의 고민을 어루만졌던 크리스텔 프티콜랭이 반복되는 답답한 '심리 게임'을 풀어낼 처방전을 들고 다시 찾아왔다.

프티콜랭에 따르면 우리는 희한하게도 정해진 사람과 정해진 패턴대로 똑같은 싸움을 반복한다.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심리 게임이고, 게임을 주도하는 사람은 '피해자' '박해자' '구원자' 이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심리 게임이라는 용어는 1963년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교류분석 창시자인 에릭 번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번은 사람들이 다투는 방식이 일정한 순서를 따라 반복되고 예상 가능한 패턴을 보이다가 마침내 고통스러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 주목했고, 자신이 발견한 패턴에 일상적인 용어를 붙여 심리 게임 목록을 만들었다. '너만 없었으면' '너 이번에 딱 걸렸어' '정말 너무하죠!' 게임 등이 그것이다. 

"오빠, 나 못생겼지?"라는 공포스러운 질문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도발하고 몰아붙여 박해자로 만들고, 자신은 피해자가 되도록 몰고 가는 게임이다. 저자는 "인간에게는 물·음식·잠에 대한 기본 욕구 못지않게 절박하지만 노골적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또 다른 욕구, 즉 자기 존재를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고 강조한다. 인간은 자극을 박탈당하면 미쳐버리고 적극적으로든 소극적으로든 자살을 기도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어떻게 하면 유형별로 각자의 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옛 게임 동무'와 결별하면서 진행중인 게임을 어떤 방식으로 해체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실질적인 팁을 전한다.

복잡한 인간 관계를 게임으로 치환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면 △상대가 던지는 '떡밥'을 피하는 법  △당신의 약점을 건드릴 때 자동적으로 나오는 반응을 다스리는 법  △무차별적으로 날아오는 치명적인 한마디에 대처하는 법 등의 처방이 특효를 볼 수 있다. 

200쪽 | 1만3800원


◆ '난쟁이가 사는 저택' 황태환 지음 | 황금가지 펴냄
 

'난쟁이가 사는 저택'                                                                                                  [사진=황금가지 제공]



사회에서 괄시받던 왜소증 사내가 종말의 세상에서 생존자들의 유일한 희망이 되며 벌어지는 사건을 짜임새있게 담아낸 단편소설 '옥상으로 가는 길'이 장편소설로 개작됐다.

제2회 좀비 아포칼립스(ZA) 문학 공모전 당선작으로, 지난 2013년 연극으로도 상연된 바 있는 옥상으로 가는 길은 '난쟁이가 사는 저택'이라는 제목을 달고 이야기의 폭과 깊이를 더했다. 

선천성 왜소증을 앓고 있는 '진성국'은 병원에서 아버지와 함께 허드렛일을 한다. 그러던 중 좀비가 창궐하자 그와 그의 아버지는 병원에 갇힌 채 힘겹게 생존을 이어간다. 난리통에 정신을 놓아버린 아버지는 성국에게 큰 짐이 되고, 성국은 1인용 헬기 자이로콥터의 열쇠를 얻어 병원을 탈출하는 것을 유일한 희망으로 여긴다.  

그렇지만 키를 지닌 채 좀비가 된 병원장 때문에 좀처럼 그 뜻을 이루기가 힘들고, 하나뿐인 식량 보급로인 옥상까지 좀비들로 막혀 꼼짝없이 굶어죽을 위기에 처한다. 다행히 옛 쓰레기 배출구의 비좁은 공간을 통해 옥상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성국은 자신의 작은 체구를 이용해 식료품을 가져오는 데 성공한다.

이 소설은 단순한 '좀비 재난'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안전지대인 '게토'에서 파견됐던 헬기가 추락하고, 생존자들이 성국이 있는 건물로 들어오며 포커스는 인간군상, 그리고 그들의 추악한 면면에 맞춰진다. 성국은 순식간에 여러 사람의 생명을 책임지게 되고, 점차 자신도 모르게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된다. 

영화 '부산행' '28일 후' 등에서도 다뤘던 '인간의 추악한 본성'은 이 소설의 촘촘한 구성과 차진 문장을 거치며 현대 사회의 탐욕, 질투,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거듭났다. 

252쪽 |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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