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 종영 ①] 시그널, 드라마의 한계를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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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3-14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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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vN 방송 화면 캡처]

아주경제 김은하 기자 = “미제사건이 왜 엿 같은 줄 알아? 범인이 누군지, 동기가 뭔지, 모든 게 밝혀진 사건은 힘들어도 가슴에라도 묻을 수 있지만, 미제사건은 내 가족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왜 죽었는지도 모르니까 잊을 수가 없는 거야. 하루하루가 지옥 같지.”

12일 시청률 13.4%로 자체 최고 시청률 경신하며 유종의 미를 거둔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에서 형사 차수현(김혜수)이 들려준 말이다. 장기 미결 사건들을 소재로 하는 ‘시그널’은 이 대사를 첫 회에 등장시키며 작품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피해자의 고통을 통해 소멸하는 형벌권의 아이러니함을 꼬집는다.

장기 미제 사건을 푸는 실마리는 2015년 프로파일러 박해영(이제훈 분)과 1989년 형사 이재한(조진웅 분)을 연결시켜주는 고장 난 무전기다. 2015년의 박해영이 발달된 수사 기법으로 과거 미제 사건의 단서를 제공하면, 이재한이 과거의 현장에서 진범을 추적하는 식이다. 밀양 여중생 집단 폭행 사건, 대도 조세영 사건, 화성 연쇄 살인 사건 등 당시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을 모티프로 한다. 고된 일상에 치여 잊고 살았던 우리 사회의 상처를 돌아보게 함으로써 오락성에 국한 됐던 드라마의 역할을 한 평 넓혔다.

장르물 불모지였던 국내 드라마 시장에 ‘싸인’ ‘유령’ ‘쓰리데이즈’를 통해 수사물을 안착시킨 김은희 작가가 대본을 쓰고, ‘미생’으로 섬세한 연출력을 인정받은 김원석 PD가 연출을 맡았는데, 둘의 시너지는 대단했다. 쏟아지는 찬사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흐트러짐 없이 16부작을 완성했다. 직전에 방송된 ‘응답하라 1988’이 개연성 없는 결말로 성급하게 끝을 맺었기에 더욱 빛나는 성과다.

드라마 최초로 ‘아나모픽’ 촬영 기술을 도입, 화면의 색감과 비율을 달리해 과거와 현재를 구분했다거나, 한국 드라마의 고질병인 불필요한 로맨스, 엉성한 연기의 아이돌 연기자를 걷어냈다는 것 말고도 과감한 시도는 또 있다. 드라마가 중반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여주인공격인 차수현(김혜수 분)이 사망했을 때, 국내 드라마 역사에 없는 충격적 전개에 시청자는 열광했다. 새롭고 용감한 시도에도 유난 떠는 법이 없었다. 여주인공을 죽였다 살려내는 에피소드를 그릴 때조차 작품이 가진 덤덤하고 시니컬한 기조를 잃지 않았다.

이 모든 찬사를 가능하게 한 것은 역시, 배우들의 연기다. 특히 별다른 장치 없이 십수 년을 오가야 했던 김혜수와 조진웅의 노련함이 빛났다. 김혜수는 어리바리한 표정과 주눅 든 어깨로 초짜 순경을, 강단 있는 눈빛과 각진 말투로 15년 차 베테랑 형사를 연기했다. 2000에서 1989년으로, 1989년에서 1995년으로, 다시 1997년으로 훌쩍훌쩍 시간을 넘어야 했던 조진웅은 수염이나 주름 분장 따위에 기대는 법 없이, 널뛰는 시간을 오롯이 홀로 표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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