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부자삼대와 땅콩회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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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12-1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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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 기자]

아주경제 이재영 기자 = ‘부자가 삼대를 못간다’는 말이 있다. 선대가 축적한 재산을 손쉽게 물려받은 후손이 쉽게 교만에 빠져 재산을 지키는 것조차 어려워진다는 의미이다. 최근 3‧4세 승계가 한창인 국내 재벌사에서 그 후계 경영인의 도덕적 결함을 드러낸 사례가 생기는 것은 ‘부자삼대’를 연상케 한다.

대한항공 사태가 커진 것은 재벌 경영인의 교만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난의 본질조차 이해 못하고 조현아 전 부사장의 문제제기는 당연했다는 식의 변명스런 사과문은 족벌경영의 교만에서 비롯된 또다른 과오였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사태로 ‘제왕적 오너경영’에 대한 질책이 쏟아지는 가운데 후계 경영인의 자성을 위해 독일 머크의 사례가 참고할 만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의약‧화학 기업인 머크는 300년 넘게 12세대를 거쳐 내려오며 오늘날 매출 15조원의 초우량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머크는 특히 가족 소유와 기업 상장이라는 상반된 가치를 잘 포용해 세계에서 지배구조가 가장 모범적인 가족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머크는 직원들에게 여섯가지 가치를 강조하는데 용기, 성취, 책임감, 온전함, 투명성과 더불어 주목할 것은 ‘존중’이다. 이러한 머크가 접한 한국의 수직적 경영문화는 맞지 않는 옷이었다. 일례로 한국머크는 2010년부터 직급을 없애고 이름 뒤에 ‘님’을 붙여 호칭하기로 했다. 당시 대표인 유르겐 쾨닉 대표는 전직원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역동적이고 혁신적인 기업은 한국의 직급 호칭 없이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모두는 존중이 머크의 근본 가치이자 원칙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지금 변화하려는 것인가요?’라는 질문에 우리는 이미 늦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진정한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변화가 시급합니다”라고 말했다.

‘땅콩회항’은 다수 승객들의 안전과 시간이 오너경영인 개인의 위압적 지위 아래 박탈당했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고, 자신도 그 승객일 수 있는 대다수 국민들의 감정이입이 분노를 키웠다. 존중과 역지사지는 승객의 입장이 돼 보지 않은 재벌이라도 잊어서는 안 될 기본적인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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