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명(名)탐정' 되는 변호사들...총수도 모르는 총수의 가족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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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지 기자
입력 2022-01-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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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아주경제 DB]

# "칠판에 가계도를 쫙 그려놔요. 동일인(총수) 6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을 다 표시해요. 그럼 구멍이 뻥뻥 뚫려 있는 거예요. 이 자리에 누군가는 있는데 누군지는 모르는 거야. (하하) 일단 혈족이라고 하니까 찾아가면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죠. 뜬금없이 모르는 사람이 와서 '당신 회사 정보랑 자료 다 내놔라' 하는데 주겠어요?"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들은 연초에 '명(名)탐정'이 된다. 기업 총수도 모르는 100명이 넘는 총수의 친인척을 찾는 것이다. 매년 5월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에 나서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다. 속으론 공정위의 '과잉 규제'와 시대착오적인 '공정거래법'을 성토하고 있다.
 
6촌 이내 혈족=경제 공동체?··· 특수관계인 범위 논란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매년 5월 1일 '대규모 기업집단'을 지정한다. 자산 총액 기준 5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을 공시 대상 기업집단으로, 10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을 상호 출자 제한 기업집단으로 지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총수의 친족 등 '특수관계인'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를 계열사로 신고받는다.

공정거래법상 '특수관계인'에는 6촌 이내 혈족과 4촌 이내 인척이 해당한다. 기업은 특수관계인 현황과 그들이 보유한 기업의 주소, 지분율, 거래 관계 등을 공정위에 제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기업집단의 부당 내부거래를 막기 위해서다.

공정위 관계자는 "지정된 기업집단들은 특수관계인이나 소속 회사 변동이 있을 때 공정위에 신고를 하게 돼 있다"며 "관련 자료 제출은 5월 전부터 저희가 요청하고, 제출한 자료에 대해 정리한 뒤 발표와 동시에 지정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고에서 한 명이라도 누락되면 기업은 허위 자료 제출로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재계와 법조계는 총수 가족 찾기에 발 벗고 나서면서도 특수관계인 범위가 너무 넓다는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백광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는 "보통 전년 12월부터 시작해 연초에 동일인의 4촌, 6촌을 다 파악해 찾아다녀야 하는데 그 작업이 되게 힘들다"며 "동일인의 6촌까지 경제적 커넥션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감시하겠다는 것인데, 알고 보면 둘이 생판 모른다"고 말했다.
 
"핵가족 시대··· 반세기 지난 법령 시대착오적"
1974년 제정된 국세기본법 시행령에서 처음으로 '6촌 이내의 혈족'과 '4촌 이내의 인척'을 특수관계인으로 정하는 규정이 등장했다. 그들이 경제공동체라는 이유에서다.

이후 상법·공정거래법·자본시장법 등 다수의 법에서 특수관계인을 차용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10월 현행 법령을 전수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68개 법령, 717개 조문에 특수관계인 관련 규정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김진수 변호사(법률사무소 서초)는 "핵가족화가 많이 진행됐는데 6촌 관계 혈족을 경제적 이해관계로 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특수관계인이 공정거래법뿐만 아니라 상법, 자본시장법 등 여러 부분에서 우리나라 기업 경영 활동에 다소 불리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의견을 냈다.

석근배 변호사(법무법인 세종)도 "특수관계인 범위가 넓어서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은 계속 제기돼 왔다"며 "특히 가족의 범위와 개념이 변경되고 있는 요즘 6촌 이내의 혈족까지 규제 대상으로 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법제연구원은 최근 특수관계인 규정과 관련한 논문을 통해 새롭게 변화하는 가족 개념과 부양의무 등에 관련된 친족 범위를 고려해 특수관계인의 전반적 범위를 합리적으로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공정위, 특수관계인 규정 연구용역 결과 받아
'과잉 규제'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기업집단 부당거래를 사전에 막기 위한 거라면 고의적인 불법행위가 아니라고 반박할 수 있는 여지를 줘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수관계인임을 몰랐어도 가족관계증명서 등 서류 앞에선 백전백패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진욱 변호사(법률사무소 팔마)는 "기업에 의무를 부과하는 등 행정 편의적인 형태를 만들어놓고 빠져나갈 구멍을 주지 않고 있다"며 "신고하라고 기업에 의무를 부과하고 위반하면 바로 제재를 가하는 형식이라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공정위 기업집단국은 지난해 5월 시작한 특수관계인 규정 연구용역 결과를 지난달 전달받아 내부 검토 중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연구용역 결과도 현장의 문제의식과 비슷한 방향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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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거 아직도 안 없애는 대한민국 희망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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