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치즈의 아버지 지정환 신부 별세, 산양 2마리로 시작 낙농업 불모지→메카로 키워

장빈 기자입력 : 2019-04-14 00:00

지정환 신부가 별세했다.[사진=천주교 전주교구 제공]

전라북도 임실군을 낙농업 불모지에서 한국 치즈 산업의 메카로 키운 임실치즈의 아버지 지정환(디디에, 1958년 서품, 벨기에 브뤼셀 출생) 신부가 13일 오전 10시쯤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지정환 신부 별세 후 빈소는 전주시 덕진구 서노송동 천주교 전주 중앙선당에 마련됐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오는 16일 오전 10시 전주 중앙성당에서 지정환 신부 별세 장례미사를 거행한다. 장지는 전주시 치명자산 성직자 묘지다.

지정환 신부는 1959년 12월 부산항을 통해 한국에 왔고 1960년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신부로 발령났다. 그는 '정의가 환하게 빛난다'는 의미로 '정환'이라는 이름을, 성은 본명인 '디디에'와 비슷한 '지'씨로 정해 이후 ‘지정환’이라는 한국 이름을 갖게 됐다.

지 신부는 1961년 7월 전북 부안성당 주임신부가 됐다. 3년 동안 농지 30만평을 개간해 농민들에게 나눠줬고 1964년 전북 임실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후 지역 주민들과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임실군은 땅도 적고 척박한 지역으로 전라북도에서도 가장 가난했다. 그는 임실군을 살릴 방법을 고민하다 완주군의 한 신부가 선물한 산양 2마리로 치즈 생산을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산양유에 누룩과 간수 등 온갖 재료를 더해봤지만 치즈는 만들어지지 않았고 산양유가 쉽게 상해 먹지도 못하고 버릴 때가 더 많았다.

지 신부는 치즈 생산 기술을 배우기 위해 고국으로 가 유럽의 공장들에서 장인들로부터 비법을 배우고 임실군으로 와 맛과 향이 균일한 치즈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고인은 1967년 한국 최초로 치즈 공장을 설립했다.

그는 산양유로 치즈를 만든 후 서울의 호텔과 레스토랑, 피자집 등을 돌며 판로를 개척했고 작은 시골 마을 임실군에서 만든 치즈는 '신선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판매량이 급증했다.

주문량은 빠르게 늘었고 이에 지 신부는 젖이 많은 젖소를 키워 치즈를 더 많이 생산했다. 이런 지 신부의 노력으로 임실군은 낙농업의 불모지에서 한국 치즈 산업의 메카로 변모하며 성장했다.

이후 지 신부는 임실군의 주민들에게 대가 없이 모든 기술을 전수하고 권한을 물려줬다.

지 신부는 치즈로 임실군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데 크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민주화를 위해서도 애썼다. 지 신부는 1970년대 유신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체포돼 추방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유신 정권은 농촌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그를 추방하지 않았다.

지 신부는 임실군이 한국 치즈 산업의 메카가 된 이후 전라북도의 복지시설을 오가며 장애인 등 소외계층을 위해 봉사했다. 법무부는 한국 치즈 산업과 사회복지에 기여한 지 신부에게 2016년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했다.

지정환 신부는 한국인이 된 이후에도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등 나눔의 삶을 살았다. 최근 지병이 악화해 13일 전주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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