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잠수함·항공모함, 美 기술 필요 없다"...프랑스, 한국과 국방협력 의향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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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김주헌 기자
입력 2021-09-18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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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영국·호주가 인도·태평양 지역의 새로운 군사·안보·외교 협력체인 '오커스(AUKUS)'를 발족하며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 기술을 이전하기로 합의하며, 앞서 호주와 관련 거래를 추진해왔던 프랑스 측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이 가운데 프랑스 측이 우리나라와 핵폐기물 재처리 기술을 비롯한 국방기술 협력 의향이 있음을 시사해 이목을 끌었다.

지난 17일 필립 르포르 한국 주재 프랑스대사는 서울 서대문구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 약 1시간가량 기자간담회를 열고 호주의 핵잠수함 수주 계약 폐기 문제와 관련한 프랑스 정부의 입장을 표명했다. 해당 간담회에는 시릴 뒤퐁 주한 프랑스대사관 국방무관도 동석했다.
 

필립 르포르 한국 주재 프랑스대사(오른쪽)와 시릴 뒤퐁 주한 프랑스대사관 국방무관. [사진=주한 프랑스대사관 제공]

 
특히 르포르 대사는 이번 사태가 향후 한국과 프랑스 양국의 협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묻는 말에 신중하게 대응하면서도 여러 측면을 시사하는 인상 깊은 답변을 남겼다.

르포르 대사는 "프랑스는 당연히 한국과 핵폐기물 재처리 기술 등의 거래·협력을 진정으로 원하고 있다"면서 "프랑스는 군사 기술에서도 핵잠수함과 항공모함 건조까지 모든 기술을 모두 가지고 있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이(핵폐기물 재처리 기술)는 민수용이기에 (논의) 범위가 다르긴 하다"면서 여지를 남기면서도 "프랑스는 관련 기술 분야에서 유일무이한 국가"라고 재차 피력했다.

르포르 대사는 이어서 "핵잠수함과 관련한 모든 기술을 갖고 있는 나라는 프랑스와 미국뿐"이라고 설명하며 "핵잠수함부터 항공모함까지 미국의 기술은 어느 것도 필요 없다"고 말해 자국의 국방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앞서 지난 6월 르포르 대사는 '핵폐기물 관리를 위한 프랑스식 해법'을 설명하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한국은 '한·미 원자력 협정'에 의해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없기 때문에 핵폐기물을 직접 재처리할 순 없지만, 협정이 지정한 대로 프랑스와 영국에 재처리를 위탁할 수 있다"면서 우리나라에 핵폐기물 재처리 기술 관련 거래 의향을 타진하기도 했다.
 
프랑스 "계약 파기 피해는 호주에 돌아갈 것...美에 실망, 보다 독자적인 전략 추진"
이날 르포르 대사는 호주 정부가 프랑스의 군사 기술 기업 나발그룹과의 핵잠수함 수주 계약을 파기한 것과 관련해 호주 측의 피해가 더 크다는 점을 강조하는 동시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에 대해 강한 어조의 비판을 쏟아냈다.

앞서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영국·호주 3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새로운 군사·안보·외교 협력체인 '오커스(AUKUS)'를 발족했고, 첫 협력 사업으로 호주는 향후 18개월간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을 이전받고 8척을 자체 건조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호주 정부는 앞서 2016년 프랑스 나발그룹과 체결한 12척의 바라쿠다급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는 560억 유로(약 78조원) 상당의 수주 계약을 파기했다. 당시 해당 거래를 계기로 두 나라는 '전략적 제휴 협정'을 체결하고 양국의 관계를 '결정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었으나, 향후 악영향 역시 불가피해졌다.

르포르 대사는 이번 계약 파기에 대해 "나발그룹은 현재 프랑스 국방부를 비롯한 여러 국가와 수많은 계약을 체결하고 거래를 진행하고 있기에, 재정·경제적인 타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관련) 피해는 원자력 산업과 관련한 영향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인 호주 측에 돌아갈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선택의 자유는 있지만, 약속을 준수해야 하는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며, 과거에 체결한 계약을 이행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의무적인 것"이라고 강조하며 호주와 미국 측이 신의를 저버렸다고 주장했다.

특히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일방주의적으로 과격하고 예측불가능한 행동'을 했다면서 강한 비판을 이어갔다. 르포르 대사는 "프랑스는 이번 일로 대단히 실망했다"면서 "(프랑스는) 바이든 미국 행정부에 대해 동맹국의 이익을 더 존중하고 덜 일방적인 외교를 기대해왔지만, 이번 사건으로 미국은 절친한 동맹국인 프랑스의 이익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프랑스 정부가 밝혔던 대로 지난 15일 오커스 출범이 발표되기 전까지 프랑스 측은 미국·영국·호주로부터 이와 관련한 어떠한 사전 통보를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재차 언급하면서 이번 결정으로 프랑스 측은 인도·태평양 지역뿐 아니라 대서양과 인도양 지역에서도 미국이 강조하는 협력의 논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르포르 대사는 "향후 프랑스 정부가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파기하진 않겠지만, 보다 균형적인 협력 관계를 추구할 것"이라면서 "전략·환경·경제적 측면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에 보유한 자국의 영향력을 통해 역내 문제에 대해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자주적이고 지속적으로 관여할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다만 그는 프랑스 정부의 '독자적인 판단'에 대해서는 "프랑스는 프랑스만의 수단과 비전을 가지고 있으며, 다자주의와 법치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외교 정책을 펼치고자 한다"면서 자국 인도·태평양 정책의 핵심 기준을 제시했다.
 

필립 르포르 한국 주재 프랑스대사(오른쪽)와 시릴 뒤퐁 주한 프랑스대사관 국방무관. [사진=김주헌 기자(jhkim123@ajunews.com)]

 
佛 주미대사 소환 '강수'...美 반발 달래기 '진땀'
프랑스 정부 역시 해당 문제에 대해 강한 반발을 이어가고 있다. 전날인 16일 장-이브 르 드리앙 프랑스 외무·유럽부 장관과 로랑스 파를리 국방부 장관은 공동 명의의 성명문을 발표해 "관련 협력에서 프랑스를 배제한 미국의 선택은 일관성이 결여한 결정"이라고 비판하며 향후 인도·태평양 지역 내 국제 협력과 대응 전략에서 자국과 유럽 차원의 자율성을 더욱 강조하겠다고 피력했다.

또한 다음날인 17일 밤에는 르 드리앙 외무장관이 별도의 추가 성명을 발표하고 "(미국의) 야만적이고 일방적이며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결정은 용납할 수 없는 '등에 칼을 꽂는' 행위"라고 비판하면서 호주와 미국에 주재하고 있는 프랑스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프랑스 정부가 우방국에 주재하는 자국의 대사를 불러들인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반면 미국 측은 오커스 출범과 관련해 사전 조율이 없었다는 프랑스 측의 비판을 해명하는 동시에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지난 16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관련 논의를 위해 지난 48시간 동안 프랑스와 접촉해왔다"면서 "미국은 프랑스와의 관계에 '핵심 가치'를 두고 있으며, 프랑스는 필수적인 파트너"라고 발언했다. 같은 날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 역시 "오커스 발표 전 프랑스 지도자들과 미리 접촉했다"면서 "프랑스는 해당 발표를 사전에 알고 있었으며, 우리(미국)는 프랑스와 긴밀히 협력한다"고 해명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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