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영상톡]"육지에 섬 만든 나만의 세계지도" 김순기 개인전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삼청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홍준성 기자
입력 2018-09-20 19:56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0 Time(제로 타임)' 8월 30일부터 11월 11일까지

  • -콜라주, 회화, 영상, 오브제 등 30여점


김순기(72) 작가의 세계지도는 특별하다. 전철의 궤도가 없는 곳에 전철이 생기고, 도시에 섬이 생기는가 하면 육지 한가운데 바닷물이 밀려와 홍수가 나기도 한다.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등 세계 주요 도시의 지도를 사다가 자신만의 세계지도를 만든 것이다. 어릴 적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작가는 "공부방 뒤에 항상 세계지도가 붙어 있었다"고 회상하며 웃었다.

[김순기 작가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삼청에 전시된 'carte du monde(세계지도)'를 설명하고 있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삼청은 8월 30일부터 11월 11일까지 김순기 작가의 개인전 '0 Time(제로 타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콜라주, 회화, 영상, 오브제 등 30여점을 선보인다.

'제로 타임'은 김순기 작가 예술세계의 중심점이 되는 개념으로 '시간', '가로지름', 그리고 '일필(一筆)'의 개념이 순환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로 구성됐다.

지난 3일 전시를 기획한 강소정 큐레이터는 "작가의 70년대, 80년대, 90년대 작품을 아우르는 하나의 지속적인 이야기를 발견했다" 며 "그 이야기들이 단순히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본인의 행위를 모아서 유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연대기로 모아서 전시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전시 주제인 '제로 타임'은 아무것도 없을 무의 제로가 아니라 모든 것이 있을 수 있는 혹은 모든 것이 없을 수 있는 잠재력으로써 제로이다.

강 큐레이터는 "작가는 동양과 서양의 모든 철학을 흡수해서 80년대부터 '사이가 있는 사이'를 생각했다" 며 "A와 B의 경계면에서 과거에는 이분법적으로 생각했지만, A도 될 수 있고 B도 될 수 있는 그사이가 존재하는 사이를 일상에서 실현을 통해서 작품을 완성했다"고 덧붙였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삼청에 전시된 김순기 작가의 'Passage(통로·1987)']


지하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계단 형태의 'Passage(통로·1987)' 작품이 눈에 띈다.
가로 3.5m 세로 4.5m 거대한 작품으로 각종 세계지도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콜라주(collage)이다.
작가는 프랑스 남부에서 살다가 파리 근처 이층집으로 이사 갔는데, 1층은 침실이 있고 2층은 비디오방과 공부방이 있는 구조이다.
2층으로 오르는 벽이 너무 지저분해서 아무거나 붙이기 시작한 것이 이 작품의 시작이다.
아라리오갤러리에서 만난 김순기 작가는 "올라갔다가 내려가면 다른 나라에 갔다 온 것 같다" 며 "내 나름대로 공간이동 통로"라고 말했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삼청에 전시된 김순기 작가의 'carte du monde(세계지도)']


13건으로 구성된 'carte du monde(세계지도)' 연작은 작가만의 세계지도를 표현한 작품이다.
어떤 작품은 지하철이 무질서하게 연결돼 있는가 하면 어떤 작품은 강을 기준으로 지도를 오려서 다시 붙여 놨다.
지도를 붙일 때는 풀로 붙이는 것이 아닌 색과 두께를 표현하기 위해서 아크릴 물감을 이용했다.
김 작가는 "전철은 원래 선이 있지만 내 나름의 통로를 만드는 것이다" 며 "세계지도를 붙이는 버릇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 구름을 타고 세계를 놀러 다니는 것을 꿈꿨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삼청에 전시된 김순기 작가의 'Voie-Voix Lactee']


'Voie-Voix Lactee'(1988) 작품은 한국에서 프랑스를 가는 18시간 비행장면을 60분으로 압축시킨 영상이다.
과거 서울에서 프랑스를 가려면 중간 경유지에서 3~4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작가는 그곳을 A와 B의 사이 공간으로 여겼다.
"스페이스 비투윈(Space Between·사이 공간)이 A와 B가 만나는 지점인데 그것을 '제로 타임'이라고 여겼다. '제로 타임'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포함한다. 이곳에서는 A와 B, 둘 다 가능하게 해주는 시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삼청에 전시된 김순기 작가의 'Colporteur O Time 1993']


'Colporteur O Time 1993'은 전쟁과 소통을 다룬 작품이다.
미국과 이라크 전쟁을 미디어로 접한 작가는 미국 측의 정보 조작에 화가 나서 TV와 안테나를 부쉈다. 전쟁은 한 나라의 문화를 없애는 것이고 작가로서 억지 주장으로 전쟁으로 시작한 미국에 화가 난 것이다.
작품은 세계지도를 중앙에 두고 주위에 통조림으로 쓰였던 빈 깡통 23개가 매달려있다. 지도에는 지금 전쟁을 하는 나라들이 불빛으로 표시돼 있다. 한반도 또한 2개의 LED가 반짝이고 있다.

"프랑스어로 '아랍인들의 전화 방법'이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나라 말로는 '깡통 전화' 이다. 전화로 뭐라고 하면 왜곡돼서 전달되고, 계속 전화를 하면서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깡통이 엉터리라는 의미가 있고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원래 깡통에서 사운드가 나와야 하는데 지금은 선이 삭아서 작동하지 않는다. 전시할 때마다 현재 전쟁을 하는 나라를 찾아서 현장에서 구멍을 뚫어서 전시하는 완성되지 않은 작품이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삼청에 전시된 김순기 작가의 'Colporture 1989']


통기타와 기차표를 오브제로 사용한 'Colporture 1989' 작품의 독특한 모양이 흥미롭다. 통기타의 줄이 있어야 할 부분에 구멍 뚫린 기차표가 길게 연결돼 있고 이 구멍에 맞춰 소리를 내는 오르곤이 설치됐다.
작가는 교수 시절에 학교에 강의하기 위해서 2주에 한 번씩 밤 기차를 타고 1000km를 달려갔다. 기차에서 자고 학교 도착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다시 기차를 타고 오는 생활을 몇십 년 했다.

"예전에는 기차표에 동그란 구멍을 뚫어 줬다. 그 뚫어 준 것으로 작품을 하고 싶어서 다 모아 놨다. 오르곤 기계를 사다가 기차표를 붙여서 악보를 그리기 시작했다."
작품의 오르곤은 오래돼서 작동하지 않지만, 오르곤이 작동할 때도 아름다운 연주가 들리는 것은 아니었다. 드로잉에 따라서 우연한 음이 나오는 구조이다.

[김순기 작가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삼청에 전시된 'Il-Pil(일필)'를 설명하고 있다.]


지하 1층과 1층에 있는 작품이 '제로 타임'에 집중한 작품이라면 2층에는 '일필' 시리즈가 전시됐다. 모든 신체와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서 한 호흡에 완성한 회화 작품을 볼 수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