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근의 차이나 무비⑩] 중국 예술 전통을 스크린에 투사한 무협영화 ‘협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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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근 한국외대 교수
입력 2018-05-1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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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5년 중화권 최고 칸 최고기술상

영화 '협녀'의 유명한 대나무숲 전투 장면.[사진=영화 '협녀' 캡처]


영화 ‘협녀(俠女)’는 후진취안(胡錦銓) 감독이 1971년에 만든 작품이다. 후진취안은 20세기 후반 중국 무협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처음엔 홍콩 쇼브러더스와 주로 작업을 했다. 데뷔작 ‘옥당춘(玉堂春)’과 ‘대지아녀(大地兒女)’, ‘대취협(大醉俠, 한국 제목은 방랑의 결투)’ 등을 찍었다.

그러나 쇼브러더스는 빠른 리듬의 상업영화를 원했고, 후진취안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한 장면이라도 정성들여 찍은 예술 작품과도 같은 영화를 남기려고 했다.

갈등 끝에 후진취안은 대만으로 건너간다. ‘협녀’는 대만에서 찍은 첫 영화다. 그래서 대만 자본과 홍콩의 제작방식이 결합한 영화라고들 한다.

그런 만큼 예술적 추구가 듬뿍 담겨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에 대한 감독의 집념은 180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으로도 드러난다. 원래는 네 시간이 넘었는데 그나마 편집 과정에서 줄어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영화 '협녀'의 후지취안 감독. [사진=바이두]


‘협녀’는 중국의 예술 전통을 스크린에서 이어받은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연극 전통, 미술 전통, 문학 전통, 사상 전통을 스크린에 투사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중국 전통을 현대적 영화 속에 녹여낼 것인가를 고민한 영화다.

‘동도서기(東道西器)’라는 표현도 덧붙일 수 있다. 서양에서 건너 온 영화라는 그릇에 동양의 이치를 담고자 했던 노력이 빛난다.

이 영화는 중국의 ‘평극(評劇)’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평극’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경극보다는 더 소박하고 서민적인 연극이다.

허베이(河北)와 동북 지역을 중심으로 유행했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경극’의 한 분파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엄격히 말하면 ‘평극’이 옳다. 경극과 달리 여성 역할을 여성이 직접 연기하고 음악도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영화를 연극의 한 종류 내지, 그 확장이라고 봤다. 영화가 들어오자 ‘서양 그림자극(西洋影戱)’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중국에서는 190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연극영화’가 많이 만들어졌다. 전체 제작 편수의 약 30~40%를 차지할 정도다. 연극 무대를 직접 촬영하거나 야외 세트장 등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를 촬영하기도 했다.

최초의 중국영화라 일컬어지는 ‘정군산(定軍山)’은 경극 배우를 불러다가 그 연기를 그대로 촬영한 것이다.

그런 전통이 홍콩으로 이어졌다. 홍콩에서도 이미 연극영화가 다수 제작됐다. 1960년대 평극 영화 ‘화위매(花爲媒)’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후진취안은 이러한 맥락 위에서 ‘협녀’를 제작했다. ‘협녀’는 많은 부분 연극영화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영화 '협녀'의 주인공 구성자이(顾省斋, 스쥔 분).  [사진=영화 '협녀' 캡처]


특히 저자거리 세트장이나 주인공 구성자이(顾省斋·스쥔 분)의 집을 중심으로 한 세트장들이 그렇다. 물론 ‘협녀’가 연극영화를 표방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시 홍콩에서 유행하던 연극영화의 분위기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협녀’는 당대 홍콩 연극영화의 수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중국 산수화의 전통을 이어받기도 하다. 예컨대 거의 모든 장면에서 연기를 피운다. 이른바 ‘드라이아이스’ 효과다. 이는 서양 회화가 물감으로 캔버스 전체를 채우는 것과 달리 여백을 비워두는 동양 산수화의 수법을 스크린 위에서 고안해낸 것이다.

동양 회화는 빈 공간이 하늘이 되고 공간이 된다. 프레임 안에서 인물 구도를 잡을 때 인물들이 정면에 위치하지 않고 측면에 배치되거나, 바위 같은 특정 사물이 화면의 절반을 차지하는 장면 등도 중국 산수화의 전통을 이어받은 증거들이다. 더구나 그림을 그려 먹고 사는 화공이 등장하는 건 일종의 유비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중국 소설의 전통과도 맥을 같이한다. 영화는 청나라 말기 소설 ‘요재지이(聊齋志異)’에 실린 협녀편을 개작한 것이다.

여기에 명나라 때 이야기인 ‘명사고(明史稿)’의 이야기를 함께 섞었다. ‘요재지이’에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적잖다.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화된 경우가 꽤 있다. ‘천녀유혼(倩女幽魂)’이나 ‘화피(畵皮)’가 대표적이다. 협녀 이야기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중국 설화에는 이런 이야기가 많다.

특히 무능력한 남성을 도와주기 위해 구원자인 ‘선녀’가 등장한다. 미스테리한 정체성을 가진 여성이 등장하고, 그녀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인습적인 남녀의 성 역할이 전도된다. ‘협녀’에서도 남자는 힘없는 서생으로, 여자는 무공에 능한 협사로 그려진다.

‘협녀’는 중국의 ‘협의 사상’도 이어받았다. ‘무협’에서 ‘무’는 싸움의 기술이고 ‘협’은 의리의 정신이다. 무는 협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다. 협은 자유로운 정신이다. 가족과 친구를 막론하고 자신과 의리를 지키는 사람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는 정신이다.

그래서 국가가 정치적 규제를 앞세우는 법가나 현실적 성취를 꿈꾸는 유가와 대비된다. 사마천(司馬遷)의 말처럼 약자가 강자에게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객’임을 실천하는 사상이다. 영화의 영어 제목이 ‘A touch of ZEN’인 것도 불교 자체가 아니라 선(禪)의 철학을 담으려고 노력한 결과였다.

‘협녀’는 당시 무협영화의 전통을 이어 받은 홍콩영화와 대만영화의 새로운 진전이었다. 중국의 예술 전통을 창조적으로 이어받았던 것이다. 1975년 칸 영화제는 ‘협녀’에게 최고기술상을 줬다.

중화권 영화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홍콩과 대만 영화계는 흥분했고 후진취안은 새로운 힘을 얻게 됐다.

한국 관객도 국내 영화제를 통해 ‘협녀’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2015년 칸 영화제 수상 40주년을 기념해 대만 국가영화센터(國家電影中心)가 디지털화한 버전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볼 수 있었다. 지난날 그다지 흥행하지 못했던 영화가 세기를 넘어 다시 찾아오자 한국의 무협 마니아들도 열렬한 관심으로 호응했다.
 
 

[임대근 교수의 차이나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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