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수명에 대한 3가지 풍경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이상국 T&P 대표
입력 2018-04-16 16:36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에곤 쉴레의 '죽음과 소녀'(1915년작)]



# 2042년

법률적 언어가 그려내는 시간적 풍경으로 보자면, 2042년 그해 우리의 전직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씨가 만기 출소를 하게 되어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나이가 66세인데 징역 24년을 살면 90세다. 그럼 죽어서 나오란 말이냐"라고 말을 했다. 사실상 종신형에 가까운 형기(刑期)를 사뭇 인간적인 호소를 섞어 항의한 셈이다. 항의할 당사자가 대통령이어야 할지에 대해선 납득하기 어려운 정치적 공세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논외로 치자. 

홍 대표의 저 말은, 부지불식간에 한 사람의 여생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우리가 태어나서 부여받는 수명이란 무엇인가. 과연 앞으로 몇 살까지 살 것인가의 문제다. 혹시 2042년에 자신은 몇 살이며 어떤 모습일지 떠올려 보았는가.

전직 대통령이 수감 기간으로 선고받은 24년은 그에게 남은 삶의 기간보다 길까 짧을까를 생각하는 동안, 불로장수를 꿈꾸던 어떤 권력자도 결국 놔버릴 수밖에 없었던 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기껏해야 100년의 눈금 안에 갇힌 생이면서 인간은 왜 이토록 많은 것을 그 눈금 안에 넣고자 했던가 하는 각성 같은 것. 하늘이 준 수명과 법원이 준 형기 사이에서, 문득 해야 할 고민일지도 모른다.

# 2045년

우리는 언제까지나, 태어났다가 죽어야만 할까. 이 어리석어 보이는 질문은, 다음 말을 들어보면 의미심장해질지 모른다. 구글의 AI 개발 기술책임자를 맡고 있는 레즈 커즈와일의 말이다.

"앞으로 10년 내에 거의 모든 질병은 치료할 수 있게 되며, 노화는 속도가 늦춰지거나 역행할 것이다."

아직 암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이런 얘기는 좀 황당하게 들린다. 질병을 극복한 인간, 노화가 역행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늙지도 죽지도 않는 인간의 탄생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것도 10년 내에?

커즈와일은 그러나, 허풍쟁이는 아니다. 박사 학위를 스무 개 이상 보유하고 있다는 스펙 자랑은 제쳐두더라도, 광학문자 인식장치, 평판스캐너, 신시사이저, 음성인식기, 문서 음성변환기 등 놀라운 발명을 잇따라 해낸 발명가로 '현대의 에디슨'이라 불리는 사람이다. 인간게놈 프로젝트의 완성을 정확하게 예측한 사람이기도 하다. 역대 미국 대통령 3명이 그를 백악관에 초청해 의견을 들었을 만큼 그 나라 미래기술의 자부심이다. 그런 사람이 2028년 이전에 '사람이 안 죽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가 근거로 삼는 것은 기술특이점 이론이다. 특이점(Singularity)이란 기술진보의 속도가 무한대에 이르는 지점이다. 2045년에 제대로 된 특이점이 오고, 그에 앞서 예고편인 '작은 특이점'이 2020년쯤에 닥친다고 말한다. 딱 2년밖에 안 남은 시점이다. 2년 뒤 우리는 컴퓨터의 집적도가 인간의 뇌를 넘어서는 순간을 만날 준비를 해야 한다. 인간보다 뛰어난 로봇이 등장하는 것과 함께, 생물을 비롯한 모든 사물의 복제가 가능한 시대와 죽음이 없는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커즈와일 또한 이런 상황의 의미나 결과가 무엇인지는 예측하지 못한다. 다만 진화 속도의 기하학적 증가만으로 예측했을 뿐이다. 수명이 사라지는 시대가 온다면? 죽음 없는 인간이 행복할지 혹은 그의 미래가 과연 축복일지를 말하기에는 아무리 천재라도 역부족일 것이다.

# 목숨과 수명

목숨과 수명(壽命)이라는 말을 들여다보면 뜻밖에 교묘하다. 우선 목숨이란 낱말을 살펴보면 '목의 숨'이라는 말이 붙은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목을 지나가는 호흡이 있는데 그것이 진행 중인 것이 목숨이란 얘기다. 매우 구체적이며 생물학적이다. 이 숨이 드나드는 파이프라인을 기도라고 하고, 밥이 드나드는 파이프라인을 식도라고 하는데, 기도 뒤에 식도가 있다는 걸, 얼마전 부친이 돌아가실 때 알았다. 목에 숨이 들락이고 있어야 살아있는 것이라는 걸, 그때 눈물겹게 깨달았다. 어느 순간 숨길이 막히고 인체 내에 인적이 끊기며 적막강산이 들어차던 기억을 떠올린다.

수명은 중국에서 온 말일 텐데, 수(壽)와 명(命)의 의미가 서로 다르다. 우리말로는 다 목숨이라고 번역을 하는데, 이보다 맹맹한 풀이가 있으랴. 수(壽)는 일단 오래 사는 것을 말한다. 오래 산다는 건 신의 뜻을 피해서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신이 허용해준 최대치를 살았다는 의미다. 수를 누렸다는 게 그런 뜻이다. 명(命)은 그만 살라고 가위로 싹둑 자르는 것에 가깝다. 인간이 아무리 버둥거려도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도록 하늘이 툭 끊어주는 것이 그 생물의 명(命)이다. 장수(長壽)는 있어도 단수(短壽)는 없고, 단명(短命)은 있어도 장명(長命)은 없는 걸 보면, 그 가중치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수명은 인간과 신의 달리기 같은 것이다. 조금 더 살아보려고 내빼는 인간은 수(壽)를 쥐고 달리고, '살아봤잖아 그만 내려놔'라고 뒤쫓는 신은 명(命)을 쥐고 쫓아온다. 오래 살고 싶은 인간과 적당히 정리해고하고 싶은 신 사이의 초긴장 추격전이 낱말의 앞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명은 인간이 만들고, 수는 신이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수명에 대해 불만이 없는 인간이 어디 있으랴 마는, 수명에 대해 항소를 한 인간도 아직까지 찾아보기 어렵다. 예수님 정도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