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진 '길 위의 에세이'] 우유니 호수 (소금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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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진 논설고문
입력 2018-03-2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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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사막에 물이 고이면 모든 사물이 투명하게 반사되는 거울 호수로 변한다. 파란 하늘과 구름이 물에 비치며 사방이 온통 하늘이다.

물이 고인 우유니(Uyuni) 소금사막은 더 이상 사막이 아니다.
마법처럼 거대한 거울 호수로 변신한다.

호수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차를 타고 광활한 호수 속으로 들어가면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물거울에 반사돼
천지사방이 온통 하늘나라로 둔갑한다.

저 멀리 수평선이 없었다면
어디서부터 진짜 하늘이고 어디가 반사된 하늘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다.

바닥엔 한 변의 길이 1m 안팎의 5~6각형 소금 덩어리들이
촘촘하고 평평하게 이어져 끝없이 펼쳐져 있다.
마치 보도블록처럼 일부러 깐 것 같다.
그 위로 5~30cm쯤 물이 고여 있다.

발밑을 보면 분명 물 고인 소금 밭인데
고개를 들면 투명한 얼음판이요,
거대한 거울이다.
거울 속엔 땅이 사라져 없다.

사람들은 아래위 가득 찬 하늘의 몽환적(夢幻的) 분위기에 압도돼 연신 탄성만 지른다.
“히야~, 어쩜~.”

호수는 까마득한 수평선이 빙 둘러 이어지는 원형이다.
한쪽 끝부분에만 설산(雪山)이 연무에 가려진 흐릿한 모습으로 서 있다.
중간중간 작은 섬들이 점점이 놓여있지만 그 역시 반사돼 위아래 대칭이다.
저 멀리 움직이는 차도 아래위 두 대가 붙어 간다.

비현실적인 이상한 나라 - 우유니 소금호수다.

사람이 서 있는 건지 공중에 떠 있는 것인지 착각하게 만든다.

우유니는 볼리비아의 포토시주에 속해있다.
수도 라파스로부터 남쪽으로 200km.
남미의 백두대간에 해당하는 안데스산맥 중간지점에 넓게 형성된 고원지대를 알티플라노(Altiplano)라고 부르는데 그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해발 고도는 3,680m. 면적은 12,000㎢. 전라남도와 비슷하다.

현지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이곳의 소금 매장량은 약 100억 톤 이상.
그 속에 있는 리튬 매장량만 전 세계의 절반인 약 1억 4000만 톤이다.
소금밭은 모두 11개 층으로 이뤄졌는데 각 층은 두께 1~10m다.
가장 두꺼운 곳은 120m. 층과 층 사이엔 50cm쯤 물이 채워져 있다고 한다.
 

우유니 호수 투어는 4륜 구동 지프를 타고 진행된다

패키지+자유여행이란 다소 낯선 여행 프로그램에 합류하여 이곳을 찾은 건 1월 12일.
우기로 접어들며 사막이 호수로 변한지 한 달여.
며칠 새 비가 더 많이 내려 호수는 한창 만수위다.

투어는 호수 복판에서의 점심, 일몰, 일출, 별 보기, 잉카워시 섬 둘러보기가 주요 내용이다.

투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날씨.
비가 오거나 구름이 잔뜩 끼면 일몰, 일출, 별 보기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
우리 팀에 날씨 운은 절반만 따라줬다.

만수위여서 전망 좋고 선인장이 장관이라는 잉카워시 섬은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그쯤이야 감수하겠는데 흐린 날씨 탓에 별 투어를 놓쳐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호수 위에 점심 식탁을 차리는 중이다.

20명이 5대의 4륜 지프에 나눠타고 소금 호수 위를 30분쯤 달렸다.
차바퀴가 절반 이상 잠길 정도의 다소 깊은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5~10cm로 아주 얕다.

호수 한가운데 도착하자
관광객들은 미리 나눠준 장화를 신고 탄성을 지르며
환상의 세계에 빠져든다.
카메라나 핸드폰으로 찍고 또 찍는다.
서로 바꿔가며 모델도 된다.

마법 같은 광경에 한참 동안 몰입해 있다 옆을 보니 어느새 식탁이 마련됐다.
현지 가이드의 지휘 아래 지프 기사들이 소고기 바비큐와 각종 야채 등으로
미니 뷔페를 훌륭하게 차려 놨다.

금강산도 식후경(食後景)이라는데 우유니는 식중경(食中景)이다.
색다른 경관과 분위기 속에서의 식사.
음식 맛도 좋았지만 동양화 속 신선이라도 된 듯 으쓱해지는 기분이었다.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을 읊은 이백이나
도원경(桃園景)을 노래한 도연명이
이곳에 온다면
어떤 시를 지을지 궁금하다.

우유니 소금호수의 석양. 해가 넘어갈 때까지 다채로운 색채쇼가 펼쳐진다.

숙소를 돌아와 잠시 쉬다 해질 때 다시 호수로 향했다.

하늘은 이미 한켠으로 벌겋게 물들기 시작했다.
검붉은 구름이 물속으로도 들어가 호수까지 똑같은 색깔로 물들인다.

노을은 사람들이 서있는 곳마다 반짝이는 빛을 뿌려준다.
그 붉은 눈부심에 순간 몽롱해진다.

머리를 숙여 벌린 다리 사이로 석양을 본다.
민망하지만 색다른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
거꾸로 세상 속 어떤 태양이 참인가.
참과 거짓을 분간할 수 없다.
어질어질하다.

자연은 여러 모습으로 인간을 압도한다.
장엄한 규모로, 기묘한 형상으로 또는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찾는 사람들을 놀랜다.
우유니 호수는 그 종합판이다.

해발 3,000m가 넘는 고원에 엄청난 매장량의 소금사막이 있다는 자체가 경이다.
거기에 상상을 뛰어넘는 매직쇼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투영하게 반사되는 거울 호수를 활용하여 찍은 다양한 이미지 연출 사진들. 페루 리마에서 합류한 그룹투어 일행들.

현지 가이드가 적포도주를 테이블에 내놨다.
그때부터 특수촬영을 위한 연출이 시작된다.

일제히 포도주잔을 들고 한 컷.
한 줄로 길게 늘어서 폴짝 뛰게 하며 또 한 컷.
일렬로 선채 두발과 두 팔을 벌린다. 글자 모양을 만든다.
둥글게 둘러서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그 둘레를 지프로 빙 돌며 동영상을 찍는다.

이미 경관에 도취된 탓인지 어린아이 같은 행동들이 전혀 쑥스럽지 않다.
자연스레 두 손이 올라가고 노래도 흥얼거려진다.
나중에 카톡으로 전달된 사진과 동영상들 멋지고 극적이다.
여행 전 인터넷에서 본 장면들보다 훨씬 역동적이다.

최근에 올라온 사진들은 더욱 기발한 발상이어서 또 놀란다.
우유니에서의 포토샷은 하루가 멀다 하고 진보하는 것 같다.

몇 년 전 대구에서 열린 국제사진비엔날레가 생각난다.
전시된 사진 상당수가 연출한 이미지를 찍은 것이었다.
‘최후의 만찬’ 제목으로 두 개의 작품이 나왔다.
넥타이 정장 차림의 현대인 버전과 우락부락한 식인종 버전.
식인종 예수님이라니 좀 심했다.

비엔날레 관계자는 “현대 예술은 분야별 경계를 넘나드는 특징을 보여준다. 사진 또한 연극처럼 배우를 동원하고 이미지를 연출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제 아마추어들도 사진을 의도한 대로 기획하여 찍는 시대다.
특히 몽환의 우유니야말로 연출 사진이 돋보이는 무대다.

우유니 방문을 앞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원색의 화려한 옷차림으로, 더 유치한 몸짓으로, 더욱 극적인 이미지를 기획하여
멋진 연출 사진을 찍어보시라고.

그날 밤은 소금벽돌로 지은 소금호텔의 소금침대에서 잤다.
꿈이 꽤나 짜겠다 싶었지만 피곤한 탓인지 눕자마자 곯아떨어져 꿈 없이 잘 잤다.

다음날 새벽 5시.
깜깜한 어둠 속에 또다시 4륜 지프에 올랐다.
하늘은 야속하게도 두터운 구름으로 뒤덮여 기대했던 별들의 쇼는 끝내 볼 수 없었다.

안데스산맥의 밤하늘은 별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크고, 많고, 밝아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있다.
그 별들의 잔치를 우유니 호수의 반사경에 비춰 본다면 얼마나 환상적일까.

그러나 그런 행운까지는 따라주지 않았다. 1시간여를 기다렸지만 일출도 없었다.
아쉬움을 달래며 보따리를 쌌다.

어쩜 내 삶의 여정 그대로다.
손에 넣고 싶은 것들 뻔히 보면서 흘려보낸 게 어디 한두 가지던가.
그래도 우유니 호수 속을 거닐어 봤으니 그것만으로도 홍복이라며 위안을 삼는다.

소금 호텔 방안의 소금 침대와 소금 벽.

알티플라노

남아메리카의 등뼈 안데스산맥은 오래전 태평양판이 남미판과 충돌하며 솟아올라 형성됐다고 한다. 그 중간 해발 4,000m이상의 대규모 고원지대를 알티플라노라고 부른다.
알티플라노에 내린 강수는 하천을 따라 바다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호수로 모여든다. 이들 호수들은 원래 염호였으나 강수량이 많은 북쪽의 티티카카호는 소금기가 씻겨져 담수호가 됐다. 남쪽으로 갈수록 건조해 포오포호는 염수호로 남아있고, 우유니와 코이파사호는 소금사막 또는 소금호수가 됐다. 이 곳엔 해발 6,000m이상의 높은 산봉우리가 많다. 지금도 태평양의 나스카판이 남미대륙판 밑으로 파고드는 섭입현상때문에 화산활동이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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