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164] 만두하이는 여성 칭기스칸인가?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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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 칼럼니스트
입력 2018-02-05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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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칭기스칸 가묘 앞에서 취임식

[사진 = 나이만 차강 게르(칭기스칸 가묘)]

나이만 차강 게르! 몽골족의 영웅 칭기스칸의 가묘가 있는 성지다. 비록 지금은 중국 땅 내몽골에 있지만 칭기스칸의 시신이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칭기스칸의 유품이 남아 있는 이곳을 몽골인들은 최고의 성지로 여기고 있다. 1470년, 이 나이만 차강 게르 앞에서 성대한 취임식이 열렸다.
 

[사진 = 소르칵타니 사당]

취임식이 열린 곳은 바로 뭉케 대칸과 쿠빌라이 대칸의 어머니인 소르칵타니의 사당 앞이었다. 군중들 사이에서 나온 인물은 7살의 어린 아이였다. 가냘픈 몸매의 어린 아이는 사당 앞에서 두려움에 떨었다. 그렇지만 그의 뒤에는 강인한 여인 만두하이가 있었다. 만두하이는 바트 뭉흐를 칭기스칸의 27대 후계자인 대칸으로 옹립하면서 모든 땅과 모든 바다, 모든 사람의 통치자라고 선언했다.
 

[사진 = 칭기스칸 가묘의 게르]

어린 바트 뭉흐가 이 자리에서 칸位에 오르니 그가 다얀칸(Dayan Khan: 達延汗)이다. 다얀은 대원(大元)을 일컫는 말이다. 몽골족과 중국인 모두를 겨냥한 이름이었다. 그 이름 속에는 어린 칸을 앞세워 칭기스칸의 가문을 다시 부활시켜 보겠다는 만두하이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래서 칭기스칸의 가묘 앞에서 치러진 취임식은 그동안 분열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몽골인들의 힘을 한 곳으로 모아 옛 선조의 영화를 재현하겠다는 것을 다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40대 만두하이, 10대 다얀칸과 혼인

[사진 = 영화 ‘만두하이’]

만두하이는 어린 다얀칸을 키워가면서 섭정으로서 동몽골을 다스렸다. 다얀칸이 즉위한 직후 만두하이는 오이라트와의 전투에 나선다. 힘을 한 곳으로 결집시키고 새로운 기반을 잡아가는 데는 전투에서의 승리가 최선의 수단이라고 판단했음이 틀림없다. 동몽골의 힘을 모아 나선 오이라트와의 전투는 ‘타스 브리게드’라는 곳에서 펼쳐졌다.

전투의 결과는 그녀의 기대대로 대승이었다. 다얀칸이 15살이 됐을 때 만두하이는 처음으로 그에게 군대 지휘권을 주고 원정에 내보냈다. 1481년 서몽골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돌아오자 만두하이는 애초의 계획대로 다얀칸과 결혼했다. 만두하이가 42살, 다얀칸은 17살이었다.

서른한 살과 여섯 살 로 만나지 11년 만이었다. 25살의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유목 사회에서는 손아래 남자가 손위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이상적인 결혼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별문제가 아니었다.

▶세쌍둥이 낳은 만두하이

[사진 = 만두하이 민화]

비록 나이가 들어 혼인을 했지만 만두하이는 일곱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 등 모두 8명의 자녀를 낳는다. 여성의 폐경기를 감안하면 연년생으로 아들을 낳아도 가능하지 않을 것 같아 보이지만 만두하이는 줄줄이 쌍둥이를 낳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쌍둥이를 낳은 경우가 세 번이었다. 첫 번째 쌍둥이를 낳은 뒤 그녀는 두 아들에게 토로 볼로드(Toro Bolod)와 울루스 볼로드(Ulus Bolod)라는 이름을 주었다. ‘강철 정부’ 와 ‘강철 국가’의 의미였다. 이들 일곱 명의 아들과 다른 후비에게서 태어난 4명 등 모두 11명의 다얀칸 아들들이 이후 칭기스칸 가계의 새로운 몽골 민족을 탄생시키게 된다.

▶35년 전장 누빈 만두하이

[사진 = 다얀칸]

1484년 다얀칸은 자신의 어머니를 납치해간 이스마일을 공격해 살해한 뒤 어머니 시케르를 데리고 왔다. 1488년 만두하이는 49살의 만삭의 몸으로 오이라트와의 전투를 직접 지휘했다. 이 전투에서 만두하이는 말에서 떨어졌다. 그녀가 죽으면 이제 겨우 부활하기 시작한 몽골제국은 다시 붕괴될 수도 있었다.

아직 20대 초반의 다얀칸이 만두하이 없이 몽골을 이끌고 가기에는 군사적 경험이나 정치적 경력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녀의 부하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그녀를 구해냈다. 충성스런 전사들 덕분에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그녀는 한 달 뒤 다시 아들 쌍둥이를 낳았다. 35년 동안 전장을 누볐던 만두하이는 다얀칸이 남부 원정을 떠난 뒤 야영지에 머무르다 텡그리의 부름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칭기스칸의 사당 앞에서 한 맹세를 모두 지켰다. 7명의 아들과 한명의 딸을 낳은 것을 보면 사당 앞에서의 맹세는 그녀를 칭송하기 위해 나중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옛 몽골 영광 재현한 여걸
칭기스칸의 아들과 손자들은 상당부분 정주권 문화에 안주하면서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만두하이는 말위에서 정복한 나라는 말위에서 다스려야 한다는 유훈을 철저히 따랐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여성으로서 겪어야 하는 임신과 출산 병고 등 어떤 것도 그녀의 군사 활동을 방해할 수 없었다. 그런 모든 것들을 극복하고 만두하이는 쿠빌라이 이후 가장 강력한 중앙집권 통치방식을 되살려 냈다.

만두하이가 떠났지만 다얀칸은 이미 강인하고 영명한 군주로 거듭나 있었다. 그래서 만두하이가 부활시킨 몽골제국은 무너지지 않았다. 다얀칸 시절의 몽골제국은 북쪽의 시베리아 툰드라지역과 바이칼호수지역에서부터 남쪽으로 고비사막을 넘어 황하근처와 오르도스지역까지 차지했다.

또 동쪽으로는 만주지역에서부터 서쪽으로는 알타이산맥을 넘어 중앙아시아 초원지역까지 확대돼 옛 몽골제국의 영광을 재현시켰다. 다얀칸은 만두하이 손에 자라 어린 시절에는 말위의 바구니 속에서 전장을 누볐지만 동서 몽골을 통합하는 어엿한 군주로 거듭났다.

▶남편을 역사에 남을 칸으로 만들어

[사진 = 몽골의 여인들]

만두하이는 다얀칸을 앞세워 권력을 휘두른 것이 아니라 다얀칸을 강한 남자로, 존경받는 군주로, 용맹한 군인으로 길러냈다. 만두하이는 남편을 길러 몽골 역사에 남을 칸으로 만들고 아들들을 제대로 길러 칭기스칸 가문을 부활시키도록 만든 것이다. 무엇보다 분열과 반목을 계속하던 몽골을 다시 칭기스칸 가계 중심으로 통일시켰다는 점을 역사가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흔히 만두하이를 칭기스칸의 모친 호엘룬에 비유하곤 한다. 세계를 정복했던 기마 민족의 사회가 얼른 생각하면 남성 우위의 사회일 것처럼 여겨지기 쉽다. 하지만 가정에서의 어머니의 역할은 아버지의 역할을 능가한다. 칭기스칸이 평생 가장 존경하고 두려워했던 인물이 어머니 호엘룬이었던 것도 그 것을 말해주는 한 사례다. 그래서 용맹한 전사는 어머니의 손으로 길러지고 그러한 어머니가 있어 세계정복이 가능했을 것이다.

▶"여성 칭기스칸 만두하이"

[사진 = 다얀칸 취임]

만두하이는 다얀칸에게 아내였지만 어린 다얀칸을 키우면서 용맹스럽고 추진력 있는 군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 역할은 사실상 어머니나 다름없었다. 특히 만두하이는 어린 칸을 키우면서 대몽골제국의 부활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지를 끊임없이 주입시켰다. 만두하이는 또 오이라트와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동몽골이 완전한 주도권을 잡은 상태에서 장성한 다얀칸에게 몽골의 통치를 넘겼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일부 학자들은 만두하이는 국가 경영 측면에서 칭기스칸보다 더 뛰어난 인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 칭기스칸이 3백여 년이 지난 뒤 전생사상에 따라 여자의 몸으로 환생한 것이 바로 만두하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만두하이를 여성 칭기스칸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사진 = '어머니에게' 부르는 몽골 걸그룹 '이모션']

몽골의 위대한 작곡가 잔찬노로프가 작곡한 교황곡 ‘만두하이’와 2015년 한국에 왔던 ​ 몽골 성악가 자르칼사이칸이 부른 만두하이는 그래서 몽골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음악가운데 하나가 됐다. 만두하이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다얀칸은 긴 치세를 누리면서 칭기스칸 일족의 권위를 되살리는 업적을 남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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