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교칼럼] 천하삼분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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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교 초빙논설위원. 바른정책연구원장
입력 2017-12-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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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교칼럼]


천하삼분지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승부수를 던졌다.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위한 ‘전 당원 투표’ 카드로 정면 돌파한다. 정치 기반인 중도를 강화할 목적이다. 3당 체제의 재정립이다. 정계 개편의 바람을 일으켜 내년 지방 선거와 차기 총선을 겨냥한다. 물론 최종 목표는 차기 대선이다. 그의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가 성공할 수 있을까? 삼국지의 유명한 이야기이다. 유비의 삼고초려에 응한 제갈공명은 ‘천하삼분론’을 계책으로 제시했다. 유비는 서부 지역인 형주를 근거지로 삼아 촉나라를 세운다. 그리고 남쪽의 오나라 손권과 연대해서 북쪽의 강자 조조를 친다. 안 대표의 생각도 유사하다. 바른정당과 통합 후 자유한국당과 손을 잡고 민주당과 대결한다. 정치공학 소설 같지만 그 명분과 콘텐츠를 잘 채우면 ‘새로운 정치’에 성공할 수 있다.
안 대표의 결단에서 절박한 심정이 느껴진다. 헤어스타일도 짧게 전투 모드로 잘랐다. 전국을 돌면서 당원들의 의견도 수렴했다. 여론을 등에 업었다. 당 대표직까지 걸었다. 통합이든 반대든 대표직에서 물러난다. 배수의 진을 쳤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당내 반대파들은 사생결단 저지할 태세이다. 당원 투표는 통과되더라도 전당대회는 걱정된다. 최악의 경우 물리적 충돌도 감수해야 한다. 통합의 파트너인 바른정당도 올인하지 않고 있다. 정책 조율과 호남 인적 청산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다. 다행인 것은 손학규 전 대표가 중간에서 조정자로 나섰다. 그에게는 판을 키워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번 중도 통합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모두 이해타산이 맞는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기반을 갖추지 못하면 생존 자체가 어렵다. 차기 총선, 대선은 일찌감치 물 건너간다. 국민의당은 호남 기반이 무너졌다. 바른정당은 탈당으로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했다. 두 당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28.2%를 득표했다. 흩어지면 죽지만 뭉치면 산다. 통합의 시너지 효과로 수도권에서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 문제는 국민의당 내 호남 의원들이다. 통합 신당이 호남을 벗어나면 호남 의원들의 정치 기반은 상실될 수 있다. ‘영산강 오리알’이 될 수도 있다. 반대하는 이유이다.
안 대표는 스스로 밝힌 것처럼 기존의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정치 틀 자체를 바꾸려고 정치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두 번의 기회를 놓쳤다. 2012년 대선에서 무소속 출마 기회를 흘려보냈다. 단기필마로 출마했으면 프랑스의 마크롱이 될 수도 있었다. 올해 5·9 대선도 실패했다. 개혁적 보수의 유승민 후보와 단일화를 했어야 했다. 인생에 세 번의 기회가 있다고 했으니 마지막 한 번은 남아 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중도 강화 전략은 충분한 근거가 있다. 유권자의 이념 분포를 보면 중도가 가장 많다. 최근 한 조사를 보면 중도(36.3%), 진보(35.1%), 보수(23.7%)로 나타났다. 중도는 대부분 합리적 성향으로 기성 진보도 보수도 싫어한다. 대부분 중산층 이상이다. 교육과 소득 수준이 비교적 높다. 비전과 가치 중심의 정치를 원한다. 기득권 정치를 혐오한다. 깨끗하고 정직한 정치인, 소통과 배려와 품격을 갖춘 지도자를 갈구한다. 강력한 세대교체를 원한다. 정책 선호는 매우 까다롭다. 개인적 자유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평등도 추구한다. 안보가 중요하지만 평화를 위한 대화도 필요하다. 시장 중심의 경제성장에 공정한 기회와 배분도 요구한다. 적절한 세금 부담과 복지도 주장한다. 정책 패키지를 잘 짜야 호응 받을 수 있다.
역대로 중도 지향 정치는 성공했지만 중도 정당은 정작 집권하지 못했다. 영국 노동당 토니 블레어의 ‘제3의길(The Third Way)'과 보수당 데이비드 캐머런의 ‘온정적 보수(compassionate conservative)'는 기존 정당을 기반으로 중도로 확장해서 집권에 성공했다. 미국 클린턴의 ‘중도 정책’과 주니어 부시의 ‘따뜻한 보수’ 모두 기존의 민주당과 공화당을 기반으로 확장에 성공한 사례이다. 이런 경우는 진보-보수 양측의 지지를 기반으로 중도로 확장하는 전략(outside-in)이다. 소위 집토끼를 기반으로 산토끼를 잡는 경우이다. 하지만 안 대표가 추구하는 삼분(三分)전략은 중앙을 기반으로 보수나 진보 쪽으로 확장하는 전략(inside-out)이다. 중도를 확고한 기반으로 확보하면 성공할 수 있다.
자강(自强)을 위해 몇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안 대표는 정치 세력 없다. 나홀로 정치 스타일이다. 혼자서 대업은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의 복잡다기한 문제들은 지도자 혼자서 풀 수 없다. 좋은 조언자와 참모가 있어야 한다. 정치 입문 초기 원로 멘토들을 외면한 게 아쉽다. 제대로 된 참모가 없다 보니 기획, 메시지, 홍보, 정책, 전략의 수준이 떨어진다. 유비에게는 제갈공명과 관우와 장비가 있었고, 유방에게는 장자방과 한신과 소하가 있었다. 또한 참신한 인물 충원을 통한 정치 세력을 구축해야 한다. 그들이 명분을 만들어내고 실천한다. ‘구태정치, 기득권 정치’를 끝내기 위한 새로운 세대를 키워야 한다. 프랑스의 마크롱은 동반자 ‘앙 마르슈’ 세력 창출에 성공했다.
안 대표는 최근 정치적인 근육도 키우고, 마키아벨리적 권력 의지도 강해졌다. 어릴 때부터 ‘매사에 최선을 다하며 독종으로 살아왔다’고 한다. 대학생 시절 의료봉사를 통해 느낀 사회 개혁 의식, 벤처 기업가로서 공공심, 소통과 공감은 그의 아이콘이 되었다. 두 번의 실패로 많은 상처를 받았다. ‘안철수 현상’의 자산을 잃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50대 후반, 정치 입문 5년의 정치초년생이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중도통합에 과감한 용기가 필요하고, 삼분론의 성공에는 정치적 비전과 리더십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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