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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115] 바다 뱃길은 어떻게 열렸나? ②

배석규 칼럼니스트입력 : 2017-12-17 11:26수정 : 2017-12-17 11:26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아라비안나이트의 본산

[사진 = 아라비안 나이트 책표지]

바그다드는 아라비안나이트(The Arabian Nights' Entertainment)의 고장이다. 천 하루 동안 엮어낸 얘기, 그래서 천일야화(千一夜話)라고 불리는 이야기보따리 속에는 온갖 전설과 우화, 모험담들이 가득 들어 있다. 이야기 속에는 압바스 왕조보다 한참 전 시대인 사산왕조(224-641)의 샤흐라야르(Shahryar)왕과 이야기를 엮어내는 화자(話者)인 세헤라자드(Shahrazad)라는 여인이 등장한다. 천일야화가 밤마다 엮어져 나오게 된 사연은 잘 알려진 얘기다.
 

[사진 = 천일야화]

부정한 왕비를 처형시킨 왕이 여성에 대한 혐오감을 갖고 신부를 날마다 새로 맞아 첫날밤만 지나면 처형시키는 일을 3년 동안 매일 되풀이했다. 노대신의 딸인 세헤라자드는 자진해서 왕을 섬기면서 매일 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왕에게 천일 동안 처형을 연기시키도록 만들고 마침내는 처형을 중단하게 만든 천 하루 동안 이어진 재미있는 이야기가 바로 천일야화다.

물론 그녀는 왕과 결혼해 세 아이를 낳으며 행복하게 살았다. 천일야화의 실제 작가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 신드바드, 동방으로의 모험

[사진 = 천일야화 책표지]

‘신드바드의 모험’,‘알라딘과 요술램프’,‘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등 우리에게는 대부분 신비의 세계로 상상 여행을 떠나게 하는 내용들이다. 위의 얘기들은 주로 어린이들에게 동화로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 천일야화 속에는 외설적인 성의 얘기가 곳곳에 담겨 있어서 외설이냐 아니냐의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천일야화는 이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과 신화, 동화 등을 모두 집대성한 것으로 바그다드 시대에 많은 얘기가 보태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많은 얘기의 무대는 주로 중앙아시아와 중국, 인도 그리고 주변의 섬들이다. 그 가운데 동화로도, 영화로도 널리 알려진 ‘신드바드(Sindbad)의 모험’은 바로 무슬림들이 이슬람지역에서 거친 파도를 넘어 동쪽 중국으로 향하던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 인도양 해풍 넘어 중국으로
뱃사람 신드바드가 인도양을 일곱 번이나 항해하면서 겪은 진기한 체험담을 담은 얘기가 ‘신드바드의 모험’이다.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며 겪은 항해와 교역을 통해 주인공이 바그다드의 부호가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 쿄토대의 스기야마교수는 신드바드란 이야기 속의 주인공 이름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페르시아어로 ‘인도의 바람’이라는 의미로 인도양의 해풍을 이용해 동서로 배를 타고 항해했던 해양 상인, 즉 무슬림 상인들의 총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 = 무슬림의 동진]

당시 신드바드는 지금 이라크의 바스라항을 출발해 인도양을 거쳐 중국을 오가며 많은 모험과 함께 교역을 하게 된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고향에 돌아온 얼마 후면 좀이 쑤셔서 그냥 있지 못하고 다시 바다 장삿길에 나섰던 신드바드는 당시 무슬림 상인들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 다우교역권의 형성
이라크 남쪽 페르시아만(灣)에 연해 있는 항구도시 바스라(Basrah)는 쿠웨이트와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어 지난 91년 걸프전 때 대규모 공습을 받았고 부시행정부의 이라크 전쟁 때도 뉴스에 자주 등장한 도시로 귀에 낯설지 않다. 8-9세기 이 바스라항은 동서 교역이 꽃피었던 무역항이었다. 바스라항을 비롯한 페르시아만의 우불라(Ubullah)와 시라프(Siraf)등 이슬람지역 항구에서 중국 남쪽의 해안도시 광주와 천주, 복주 등으로 이어진 뱃길은 육지를 통해 중동과 중국을 이었던 카라반의 교역과는 또 다른 중요성을 갖는다.
 

[사진 = 다우선 모형]

해상무역은 그 물량도 크고 효율성도 육상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이 때 무슬림들이 개척한 해상교역권을 흔히 다우교역권(Dhow 交易圈)이라고 부른다. 이 명칭은 당시 무슬림들이 이용한 선박을 다우선이라 부른데서 연유한다. 그들이 이용한 범선인 다우선은 널빤지에 구멍을 뚫어 야자섬유 끈으로 연결시킨 다음 나무못을 선체에 박고 물이 새지 않도록 고래 기름이나 역청을 바른 봉합선이었다.

이 배는 역풍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삼각돛을 갖추고 있었다. 다우선 가운데 큰 것은 3백 톤 규모로 적재량은 180 톤가량 됐다. 그러니까 한 대의 다우선에 실을 수 있는 상품의 양은 낙타 6백 마리가 실은 짐과 맞먹는 규모였다는 얘기다.

▶ 중국 땅에 정착한 무슬림

[사진 = 항주의 무슬림]

별자리와 계절풍 등을 이용해 중국 연안까지 바다 교역 길을 개척한 무슬림들은 중국 광주에 대규모 거류지를 만들고 그 곳을 근거지로 삼아 북쪽으로 올라가며 그들의 영역을 넓혔다. 그들의 영향력은 중국의 아래쪽 항구에서 장강 입구의 양주에 이르는 넓은 지역까지 미쳤다. 무슬림은 그 수가 늘어나면서 번방(蕃坊)이라는 자치공동체를 설립했다.
 

[사진 = 이슬람 사원]

그 곳에서 그들은 ‘까디(Qad)’라고 부르는 행정책임자와 ‘쉐이크(Shaykh)’라고 부르는 종교지도자를 선출해 이슬람의 종교와 관습을 유지해 갔다. 867년 ‘황소의 난’ 기간 중에 중국 동남부 해안지역에서 살해된 외국인이 10만 명에 이른다는 내용이 당시 아랍인 여행자들의 기록에 남아 있다. 그 수가 다소 과장 됐다고 하더라도 이 지역에 진출한 무슬림의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바다와 육지로 중국 땅에 들어오는 무슬림들이 늘어나면서 당시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에도 이들의 왕래가 적지 않았다.

▶ 처용(處容)은 아랍인인가?

[사진 = 처용 관련 삼국유사]

이 시기를 한반도에 적용하면 통일신라시대가 된다. 향가 처용가로 잘 알려진 처용이 이슬람인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논란이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헌강왕 때인 880년쯤 처용이 동해바다에 나타났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때는 ‘황소의 난’이 끝나가던 시기다.

지금의 울산항인 개운포에 나타났던 처용은 생김새도 외지인 모습을 하고 있는 등 몇 가지 점에서 당시 동아시아에 나타났던 무슬림 해상세력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이 논란의 출발점이다. 처용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확인할 수도 없고 신라와 이슬람인의 교류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당시 신라와 무슬림 세력이 교역을 했을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 신라․무슬림 교류 가능성

[사진 = 실크로드 대상단]

당시 무슬림의 번방이 있었던 장강 입구의 항구 양주에는 신라 해상세력들의 근거지인 신라방이 함께 있었다. 또 신라인이나 이슬람인 모두 당시 당나라 수도인 장안 출입이 잦았다. 이런 정황은 양측 사이에 교류가 있었을 가능성을 높여주는 부분이 아닐까? 이슬람인들의 한반도 진출이 기록으로 처음 확인되는 고려사를 보면 "현종 15년인 1024년에 ‘대식국(大食國:아라비아)’에서 열라자 등 백 명이 와서 왕을 만나 토산품을 바치니 왕이 그들을 극진히 대접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백 명이나 되는 상인들이 고려 조정을 상대로 교역을 시도할 정도라면 처음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하여튼 무슬림들은 중국해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지역으로 활발히 진출하면서 바닷길을 그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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