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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칼럼] 평창을 위한 기도

이재호 초빙논설위원·동신대교수(정치학)입력 : 2017-12-07 20:00수정 : 2017-12-07 20:00
[이재호칼럼]

 

         [사진=초빙논설위원·동신대교수(정치학)]



평창을 위한 기도

전국체육대회를 치러본 시장, 군수들은 안다. 대회가 잘되려면 날씨와 기록, 이 두 가지가 도와줘야 한다. 비가 오지 않아야 하고 경기에선 좋은 기록이 쏟아져야 한다. 시설과 문화행사도 중요하지만 스포츠는 스포츠다. 기록이 좋다는 건 그만큼 명승부였다는 얘기. 해당 선수와 지도자들의 땀에 얽힌 뒷얘기만으로도 대회는 밝고 풍성해진다. 어쩌다 세계 신기록이라도 터지면 대박! 국제대회도 같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도 메달 집계 종합순위 4위를 달성케 한 우리 선수들의 선전 덕이 컸다. 4강 신화를 써내려간 2002년 월드컵도 마찬가지.

평창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쇼트트랙에서 금메달이 몇 개나 나올지, 스켈레톤에서 윤성빈 선수가 과연 우승할지, 관심은 여기에 쏠린다. ‘평창’이 갖는 혹은 가져줬으면 하는 정치적 함의는 적어도 대중에겐 그리 중요하지 않다. 북한의 참가문제만 해도 그렇다. 정부의 희망대로 뒤늦게라도 참여해 남북 대치상황에 작은 숨통이라도 터준다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설령 오지 않는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건 없다. 성화가 타오르면 스포츠가 아닌 것들은 이내 빛을 잃기 때문이다. 그게 올림픽의 본 모습이고 정신이다.

우리는 분단 콤플렉스 탓인지 스포츠에 정치를 얹으려는 욕구가 강하다. 냉전 때나 지금이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관계개선의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남북관계는 실현가능한 쉬운(비정치적) 분야부터 풀어야 한다”는 역대 정부의 일관된 기능주의적 접근도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 초 미·중 수교의 물꼬를 튼 핑퐁외교도 참고가 됐음은 물론이다. 어떻든 대한민국에서 스포츠는 언제나 정치에 봉사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스포츠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까지 머리에 일 수는 없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유도하기 위해 대회기간(2월 9∼25일)과 비슷한 시기에 벌어질 한·미 군사훈련(키리졸브·독수리훈련)을 중단·축소하자는 주장이 그런 경우다. 이런 주장은 지난 4일 북한이 화성-15형 ICBM을 발사함으로써 물 건너간 듯하나, 여권 내부에선 여전히 검토 중이라고 한다. 한·미 군사훈련은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그 위협이 사라지기는커녕 핵미사일 수준으로 심화됐는데도 우리가 먼저 훈련 중단을 거론하는 건 바른 대응이 아니다.

진보 진영에선 1992년에도 훈련이 중단된 전례가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남북이 1991년 말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합의했던 그때와는 사정이 다르다. 남한에 배치된 전술핵무기를 철수하겠다는 미국의 방침에 호응해 북한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서명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도 받겠다고 해서 훈련 중단이 가능했다. 그 약속마저도 곧 휴지가 됐다. 미국은 전술핵을 빼냈지만 북한은 사찰과정에서 ‘과거의 핵’(이미 확보한 플루토늄)이 드러남으로써 합의가 깨진 것. 북한은 이에 대한 IAEA의 특별사찰을 거부했다.

진보 측은 “북한이 비핵화를 위해 많은 양보를 했음에도 북·미관계 개선에 대한 미국 측의 확답을 듣지 못해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후 북한의 핵 개발 행보를 보면 이런 주장은 억지에 가깝다. 수면 위에서 벌어진 현란한 언어의 공방, 약속과 배신의 향연 뒤에서 북한은 숨죽여 핵개발에 매진했고, 오늘날 핵탄두를 장착한 ICBM으로 워싱턴을 때릴 수 있는 수준까지 온 것이다. 그런데도 1992년의 훈련 중단만을 강조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오히려 북한은 자신들이 필요할 때면 한·미 군사훈련 중에도 각종 행사에 주저 없이 참가했다. 2007년 8월 을지포커스 훈련기간 중 서울에서 열린 청소년 월드컵 축구대회에 선수단을 보낸 게 한 예다. 그때도 북한은 훈련 중단을 요청했지만 노무현 정부조차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물론 정부로서는 욕심을 낼 만하다. 다음 동계올림픽(2022년)은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고, 2020년 하계올림픽은 일본 도쿄에서 열린다. 차기 올림픽 개최국은 국가원수나 고위관리를 직전 대회에 보내는 게 일종의 관례다.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평창에 못 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와서 북핵문제를 포함한 현안들을 함께 논의할 수 있다면, 문제해결에 도움도 되고 평창의 위상도 높아질 것이다. 13일 방중(訪中)하는 문재인 대통령도 시 주석에게 평창 올림픽 때 한국을 방문해 달라고 거듭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북한까지 온다면 모양은 더 좋을 터이다. 그렇다고 국가안보의 축까지 흔들 수는 없다.

이 정부도 할 만큼은 했다. 지난달 13일 유엔총회에서 ‘평창올림픽 휴전결의안’을 채택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작지 않다. 결의안은 평창올림픽 개최 1주일 전인 2월 2일부터 패럴림픽 폐막 1주일 뒤인 3월 25일까지 52일 동안 모든 적대행위를 중지하도록 했다. 혹여 결의안의 ‘적대행위 중지’를 근거로 한·미 군사훈련의 중단을 요구하고 나설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올림픽 개최지 국민으로서 그런 자해(自害) 행위를 할 사람은 없을 거라고 믿고 싶다.

‘정치’는 이걸로 족하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평창을 이유로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축소하자는 얘기가 더는 안 나왔으면 좋겠다. 북한과 중국이 노리는 쌍중단(雙中斷, 한·미훈련과 북한 도발 동시 중단)의 문을 왜 우리가 못 열어줘서 안달인가. 진보정권의 정통성 때문에 정 아쉽다면 일정이나 약간 조정하라. 그걸로 논란을 끝내자. 그리고 모두 날씨 좋고, 기록이 쏟아지기를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