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린칼럼] 골목산업은 문화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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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린 초빙논설위원·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장
입력 2017-10-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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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린칼럼]

 

                                          [사진=모종린 초빙논설위원·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장]




골목산업은 문화산업이다


풍요로운 골목이 가득한 도시는 옛 정취를 느끼며 향수에 젖는 치유와 힐링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다양한 도시 문화를 제공해 창조인재와 그들이 도전하는 창조산업을 유치할 수 있는 미래 도시 모델이다.

골목문화는 개성 있고 창의적인 소상공인들에 의해 생산되는 시장 중심 문화다. 물리적 환경 조성만으로는 자연적으로 발생되지 않는다.

문화산업 기반은 골목문화 발전에 필수적이다. 서울이 도쿄, 싱가포르, 홍콩의 골목상권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골목산업을 문화산업으로 고도화해야 한다.

골목산업은 이미 급격히 문화산업화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골목상권이 인기를 끈 이유는 바로 개성, 체험, 창의성, 독립성, 다양성 등 골목 가게들이 제공하는 독특한 문화 때문이다.

최근 골목 트렌드는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다. 2014년 <라이프스타일을 팔다>, 2016년 <지적 자본론>을 발표하면서 일본 쓰타야 서점 창업자 마스다 무네야키는 한국 서점과 유통업계를 강타했다.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 교보문고 광화문 리모델링, 독립 서점 등 업계의 변화가 그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현재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는 골목산업, 백화점, 대형마트, 편집숍 등 유통 분야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문화산업의 성장으로 골목산업 역시 대형화되고 있다.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맛집과 독립가게, 그런 가게를 기획하는 펀드나 기업이 신흥 주역이다.

전통적인 골목 창업 투자원은 ‘쩐주'라고 불리는 골목길 투자자였다. 최근 골목길 건물에 개성 있는 독립가게를 입점시켜 건물 가치를 높이는 ‘골목길 디벨로퍼’가 등장했다. 우리나라 최대의 부동산 운용 기업인 이지스운용이 대표적인 사례다. 인천 도화동 앨리웨이 개발기업 네오밸류 등 골목형 상가(스트리트몰) 개발자도 대형 골목산업 투자 기업에 포함된다.

골목산업의 대형화는 창업기업에서도 목격할 수 있다. 경리단길 장진우가게, 서촌 까델루포와 친친그룹, 연남동 툭툭누들타이 그룹 등 한 골목에 다수의 가게를 여는 골목길 브랜드 사업자, 익선동 익선다다 등 콘셉트·인테리어·아이디어를 골목 가게 창업자에게 제공해 수익을 올리는 골목길 컨설팅 기업, 골목길에 다수의 가게를 열어 단시간에 권리금을 높인 후 되파는 골목길 권리금 사업자가 골목길 창업의 산업화를 주도한다.

골목산업의 다변화도 새로운 현상이다. 소셜벤처, 문화기획자, 도시재생 스타트업 등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삶의 질을 높이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다양한 분야의 창업이 늘고 있다.

소셜벤처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결합해 문화, 교육, 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지역 문제해결에 기여한다. 문화를 통해 지역 특성 강화 및 차별화를 촉진하는 문화기획자는 골목의 정체성과 개성이 담긴 골목문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역할을 한다. 낙후된 공간을 문화예술과 혁신 창업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도시재생 스타트업은 골목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골목길의 문화산업화는 순탄치 않다. 가장 우려되는 현상은 양극화다. 현재 골목산업은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큰 수익을 올리는 로컬 벤처와 기술 기반 없이 창업한 생계형 자영업으로 양분되어 있다. 골목길에서 성공한 장인 가게 중 하나는 추석 연휴를 이용해 무려 16일을 휴업했다. 유럽에서만 볼 수 있었던 도도한 장인가게가 서울에서도 나타날 만큼 훌륭히 자리잡은 이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자영업자들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두번째 걸림돌이 젠트리피케이션이다. 골목길이 산업화되면서 기존 상점들이 임대료 상승을 감당하지 못하고 지역을 떠나는 현상이다. 이들 중에는 골목문화를 개척한 개성 있는 가게들이 많아 골목문화의 후퇴로 보는 것이 보편적 시각이다. 실제로 홍대 앞, 삼청동, 압구정동, 전주한옥마을 등이 임대료 증가에 따른 공실률 증가, 유동인구 감소 등 젠트리피케이션의 폐해를 경험하고 있다.

2016년에 들어서면서 골목시장 열풍이 식기 시작했다. 신흥 골목상권이 늘어나면서 희소성이 떨어진 것이 하나의 요인이었다. 급속한 성장의 후유증으로 일부 지역은 '몰락' 단계에 이르렀다. 조정기가 지속되면 적어도 서울 도심 지역에서는 대규모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재현될 가능성이 낮다.

과정을 잠시 차치하고, 결과를 보자. 민간 도시재생 노력 덕분에 강북은 2000년대 초에 비해 상상 이상으로 발전했다. 홍대, 이태원, 도심 지역은 앞으로도 천년 고도에 어울리는 품격 있는 거리 상권으로 성장할 것이다. 서울 강북의 변신은 서울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의 도심 공동화로 홍역을 치르는 지역 도시가 부러워할 만한 결과를 가져왔다.

과도한 반(反)젠트리피케이션 정책을 우려하는 이유는 도시재생과 골목상권 발전에 끼치는 악영향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골목상권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완만한 임대료 상승과 이를 통한 골목 투자 유치가 불가피하다. 골목 건물에 투자하는 이가 없다면, 경쟁력을 갖춘 골목상권은 형성될 수 없다. 적절한 투자와 환경개선을 통해 창출되는 개성 있는 건축물도 골목문화의 일부다.

지속가능한 골목상권 모델은 모든 이해당사자가 진정한 의미의 동반자로 참여하는 '장인 공동체'다. 장인 공동체의 전제는 골목길의 상인과 건물주 모두 장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골목길 자영업자를 약자로 인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기업 브랜드와 경쟁하고 건물주에 대한 협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골목산업의 문화산업화를 원한다면, 가장 시급한 정책은 ‘자영업 역량 강화의 지원’이다. 모든 선진국이 불평등 해소 방안으로 투자하는 전 국민 재교육은 골목상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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