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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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훈 기자
입력 2017-10-15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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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부 강승훈 차장

[사회부 강승훈 차장]

요즘 극장가에서 영화 '남한산성'이 관객수 330만명을 넘어서며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 대표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 것과 더불어 작가 김훈의 베스트셀러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해 미리부터 관심을 모은 작품이다. 140분이란 짧지 않은 러닝타임의 마지막 스크린에 등장하며 주목을 받고 있는 게 또 하나 있다. 바로 삼전도비(三田渡碑)가 그것이다. 지금의 송파구 석촌동(잠실동 47) '삼전도비 어린이공원' 안에 있다.

청태종공덕비(淸太宗功德碑)로 불리는 이 비의 정식 명칭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다. 조선이 청의 신하 나라가 된 1636년에 일어난 병자호란과 관련된다. 청의 태종 홍타이지가 대군을 거느리고 쳐들어왔을 때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던 인조가 삼전도에 마련된 수항단(受降壇)에서 항복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청 태종의 송덕비로 1963년에 사적 제101호로 지정됐다.

과거 일본을 멸시하고 중국 문물과 사상을 흠모해 따르려는 조선의 모일모화사상(侮日慕華思想) 분위기를 우려한 일본에 의해 땅 속에 파묻혔다가 고종 32년(1895년) 청일전쟁이 끝나면서 복구됐다. 1956년 국치의 기록이라고 해 당시 문교부에 의해 다시 매몰됐다. 이후 장마로 한강이 침식되며 몸돌이 드러나자 원래 위치에서 송파구 방향으로 조금 옮긴 현 자리에 다시 세워졌다.

한겨울 먼 길을 걸어 삼전도의 청 태종 앞에 도착한 인조는 항복의 예로 '3배 9고두'를 했다. 인조가 상복을 입고 세 번 큰절을, 아홉 번 땅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이 비는 수치스런 기록임에 틀림없다. 영화 '남한산성'이 현재에 제시하는 바는 무엇일까. 오히려 부끄러운 역사도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눈을 갖추길 요구하는 게 아닐까 싶다.

삼전도비와 더불어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의 현장이 가까이에 있다. 중구 정동길에 마련된 중명전(重眀殿)과 석조전(石造殿)이다. 중명전은 1905년 11월 무력을 동원한 일본의 강압 속에 을사늑약(乙巳勒約)이 강제로 체결된 곳이다. 그야말로 비운의 장소이다. 당초 1901년 덕수궁을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정비해 가는 과정에서 황실 서적과 보물들을 보관할 서재로 지어졌다. 1904년 덕수궁에 큰 불이 나자 고종의 집무실인 편전이면서 외국사절 알현실로 쓰였다.

덕수궁은 일제강점기에 접어들어 축소시켰고, 1915년 외국인에게 임대돼 1960년대까지 사교장인 경성구락부로 사용됐다. 1925년에는 화재로 내부 원형이 크게 훼손된 후 건물 용도와 소유주가 수차례 바뀌었다. 중명전은 외교권이 박탈된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네덜란드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하는 등 시련의 근대사를 간직한 곳이란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석조전 역시 일제에 의해서 많은 훼손을 입었다. 일제강점기 미술관으로 전용되면서 주요 내부 장식이 손상된 데 이어 한국전쟁 이후 구조체가 부분적으로 파괴됐다. 120년 전인 1897년 10월 12일 선포된 대한제국의 주도로 1900년 첫 삽을 떠 1910년 완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다.

본래 고종의 처소와 사무공간으로 지었지만 일곱째 아들 영친왕이 주로 기거했다. 1938년부터 덕수궁에서 한국 고미술품과 일본 근대미술품을 전시했던 기관인 이왕가미술관으로 활용됐다. 석조전 완공 이후인 1911~1922년 영친왕의 임시숙소로, 해방 직후 1946~1947년 미·소공동위원회 회의장이 갖춰졌다. 2014년 10월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으로 다시 선보였다.

삼전도비, 중명전, 석조전을 지금 우리사회에 투영시키면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1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최근에야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세월호 보고시점 조작' 등 크고 작은 사건으로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다. 하지만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기록이다. 더 나은 훗날을 위해 반성하고, 절대 반복하지 말아야 할 역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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