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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그래그래] 혹시 이순신을 아십니까?

최보기 북칼럼니스트·작가입력 : 2017-10-12 20:00수정 : 2017-10-12 20:00
[최보기의 그래그래]

 

[사진=최보기 북칼럼니스트·작가]



혹시 이순신을 아십니까?

10일간의 황금연휴에 뭘 하며 지낼까 생각하는 동안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하고 싶은, 해야 할,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읽고 싶었으나 못 읽은 책, 읽긴 했으나 정리돼 있지 않은 책들을 제대로 읽자고 작심했다. 먼저 고른 책이 ‘이순신’이었다. 여기저기서 장군을 대할 때마다 ‘내가 이순신 장군에 대해 모르는 것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든 게 한두 번이 아니어서다. 그래서 장군이 쓴 ‘난중일기’, 일기와 장계, 선조실록 등을 종합해 정리한 ‘삼가 적을 무찌른 일로 아뢰나이다’ 등 모두 4권의 이순신 책을 준비했다.

거기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 그 소설에 감동 받았다’고 해야 대우 받을 것 같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국내에서도 어마어마한 물량으로 읽혔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중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편 등을 포함해 10권이 훌쩍 넘었다. 특히 카이사르를 고른 이유는 서양인들이 그들 역사의 최고로 치는 영웅과 우리의 이순신 장군을 수평 비교해 보고 싶은 의도 때문이었다. 뭐, 그래도 10일이라면 추석 행사 좀 치르더라도 시간은 충분할 것 같았다.

연휴 첫날 설레는 마음으로 저자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잡았다. 물론 이번이 처음 읽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을 제대로 알아보자. 카이사르라는 로마영웅과 비교해보자’는 내심의 목표를 가지고 책을 폈더니 이전의 독서행태와는 다르게 사뭇 진지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했던 1592년 1월 1일의 ‘맑다. 새벽에 아우 우신과 조카 봉과 아들 회가 와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만 어머니 곁을 떠나서 두 해째 남쪽에서 설을 쇠자니 슬픔이 복받쳐 온다. 전라 병사의 군관 이경신이 병사의 편지와 설 선물과 장편전(긴 화살), 그리고 여러 가지 물건을 가져왔다’는 첫 일기부터 노량에서 적탄에 숨지기 전날인 1598년 11월 16일 ‘어제 복병장인 발포 만호 소계남과 당진포 만호 조효열 등이 왜의 중간배 한 척이 군량을 가득 싣고 남해에서 바다를 건너는 것을 한산도 앞바다까지 쫓아나갔던 일을 보고하였다··· 잡은 왜선과 군량은 명나라 군사에게 빼앗기고 빈손이었다’는 마지막 일기까지, 어느 한 날의 일기도 소홀히 읽혀지지 않았다.

정유재란 직전 이중 정보를 흘려 장군을 부산 앞바다로 유인해 격파하려 했던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小西行長)의 간계에 맞서 선조의 부산 출격명령을 목숨을 걸고 거부했다가 한양으로 끌려왔던 장군은 1597년 4월 1일 ‘맑다. 옥문을 나왔다. 남대문 밖에 있는 윤간의 종의 집에 이르렀다··· 윤기헌도 왔다. 정으로 권하며 위로하니 사양하지 못하고 억지로 술을 마셨더니 취하여··· 땀으로 몸이 흠뻑 젖'으며 석방됐다.

다음 날인 2일 장군은 ‘저물녘에 성 안으로 들어가 정승(유성룡)과 이야기를 하다 닭이 울어서야 헤어져 나왔’고, 3일 백의종군을 위해 ‘일찍 남으로 길을 떠’났다. 그날부터 합천에 있던 도원수 권율의 진영에 이르기까지, 이순신을 대신한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의 칠천량 해전 참패 후 12척의 배로 다시 조선 수군을 복구하기까지, 와중에 13척 대 133척이 벌이는 ‘명량 해협의 결투’를 벌이기까지, 최후의 노량해전을 준비하기까지 짧게 써내려간 일기들의 문장마다 당시의 역사적 배경에 숨은 안타까움, 애처로움, 분노, 슬픔, 탄식과 감동, 감탄이 새어나오지 않는 것이 없었다.

명량에서 ‘천운’으로 사선을 넘었지만 ‘곽란으로 인사불성이 되었다. 대변도 보지 못했다’, ‘병세가 몹시 위험해져서 배에서 머무르기가 불편하였다’, ‘가는 곳마다 마을이 텅텅 비어 있었다. 바다 가운데서 잤다’, ‘코피가 터져 한 되 넘게 흘렀다’, ‘생원 최집이 보러 왔는데 군량으로 벼 40섬과 쌀 8섬을 가져왔다. 며칠간 양식으로 도움이 크겠다’, ‘북풍이 크게 불어 배에 탄 군사들이 추위를 견디기 어려웠다. 나도 웅크리고 배 밑창 방에 앉아 있었다. 하루를 지내는 것이 한 해를 지내는 듯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저녁에 북풍이 더 크게 불어 배가 몹시 흔들렸다. 밤새 땀으로 온몸을 적’시는 장군 앞에서는 마침내 목울대까지 차 있던 울음이 펑펑 터져 나오고야 말았다.

그날이 황금연휴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10권도 넘는 책을 쌓아놓고 연휴 첫날을 맞이했지만 ‘난중일기’ 한 권으로 10일을 지새운 것이었다. 책이 두꺼워서가 아니었다. 일기마다 인터넷의 자료들을 탐색하지 않을 수 없어서 속도가 더뎠다. 그러니까 나는 이순신 장군을 완벽히 오판했던 것이다. 그는 하루 이틀, 서너 권의 책으로 알 수 있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10일을 이순신에 묻혀 있었지만 이제 겨우 장군에 대해 문턱 정도 넘은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을 ‘잘’ 살아야겠다는 지평이 더 넓게 열린 것으로 나는 지난 10일에 무한 감사한다.

장군의 일기가 남아 있지 않고, 다른 기록도 빈약하지만 장군의 대첩에는 ‘한산, 명량, 노량’ 말고도 노량 직전의 7월 19일, 왜선 100척 중 50척을 수장시켰던 ‘절이도 대첩’이 있었다. 23전 23승의 기록 중 제21전이었다. 난중일기의 ‘절갑도’로 추정되는 그 섬이 지금은 거금도로 이름이 바뀌었다. 기회가 된다면, 꼭 기회가 된다면 그날 그 섬 바닷가에서 ‘진짜 사나이 이순신’과 마주해 마음껏 ‘개겨보고’ 싶다. 그 섬은 나의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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