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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24시] ‘친중·반중’ 대자보로 얼룩진 상아탑

홍콩=박세준 통신원입력 : 2017-09-14 10:59수정 : 2017-09-14 10:59
본토·홍콩 학생들간 날선 감정싸움 반환 이후 20년간 쌓인 모순 폭발

[박세준 홍콩통신원]


최근 홍콩 대학생들의 교내 대자보 게시 공간인 ‘민주장(民主牆)’에서는 중국 유학생들과 홍콩 본토 학생들간 날선 감정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톈안먼(天安門) 사건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민주장은 홍콩 대학생들의 자유로운 발언을 보장하는 ‘언론 자유의 장’으로, 홍콩 내 8개 대학교와 각 전문학교(한국 전문대에 해당)의 캠퍼스에 설치돼 있다.

민주장은 학생뿐만 아니라 교직원 및 교수도 이용 가능하며, 대학교 내에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역할을 해왔다.

특히 이번 사건은 홍콩 내 친중(親中) 세력과 반중(反中) 세력 간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사건은 지난 4일 중문(中文)대 곳곳에 걸린 ‘홍콩 독립’이라고 적힌 현수막과 게시물이 누군가에 의해 훼손되면서 촉발됐다.

평소 독립주의에 경도돼 있던 학생회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중국 본토 출신 유학생들은 이를 계기로 홍콩 독립파 학생들에게 맞서기 시작했다.

중국 유학생들은 “중문대 학생회는 학생들의 의견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대자보로 독립을 요구하는 게시물을 덮어버렸으며, 홍콩 학생들은 다시 독립을 요구하는 대자보를 그 위에 덧붙이는 일이 반복됐다.

결국 7일에는 친중-반중 학생들이 처음으로 민주장 앞에서 물리적으로 대치하며 마이크와 스피커를 동원해 설전을 벌였다.

대립이 격화되면서 학교 밖에서 친중·반중 단체들이 각각 교내 학생들을 지지하는 집회를 열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학교 내 갈등은 중문대를 넘어 시티(城市)대, 과기(科技)대, 영남(嶺南)대 등 홍콩 내 다른 대학으로 들불처럼 번져갔다.

같은 날 오전 친중 성향인 초이욕린(蔡若蓮) 교육국(한국 교육부에 해당) 부국장의 아들이 우울증으로 자택에서 투신자살하자, 오후에 홍콩 교육대학의 민주장에 “초이욕린의 아들이 귀신이 된 것을 축하한다”며 이를 조소하는 대자보가 붙여졌다.

초이 국장은 중국 중앙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애국주의 교육 방식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친중 교육인사로, 올 7월 출범한 캐리 람(林鄭月娥) 정부에서 교육국 부국장에 지명됐다.

초·중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를 양성하는 교육대학에 이처럼 도를 넘어선 대자보가 게시되면서 홍콩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학교 측은 해당 대자보에 유감을 표명했으며, 교육국 측은 진상 조사 및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 처벌을 천명했다.

그러나 학생회 측은 “학교 측은 ‘류샤오보(劉曉波) 사망을 축하한다’는 게시물에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서 ‘초이 부국장 아들의 죽음을 축하한다’는 게시물만 처벌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곧바로 친중 성향의 교련(教聯) 소속 각 학교 교장 500여명은 성명을 내고 “앞으로 교육대학 출신 학생들을 채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교육대 학생이 실제로 채용을 거부당한 사례도 교육대 학생회에 보고되기도 했다.

홍콩 언론은 이번 ‘대자보 설전’이 반환 이후 20년 동안 홍콩 사회에 쌓여 왔던 중국과 홍콩 간의 모순과 불만이 폭발된 것이라 분석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애국주의로 무장한 본토 학생들과 독립을 요구하는 홍콩 학생들이 상대방에 대한 인정이나 의견 교류 없이 민주장을 이용해 자신의 의견만을 관철시키려 한 점을 지적하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캐리 람 장관은 취임 당시 최우선 과제로 ‘사회통합’을 언급했지만, 취임 후 2개월 동안 노골적인 친중 노선을 표방해왔다. 이 때문에 앞으로도 독립을 요구하는 홍콩 사회 일각의 목소리는 철저히 봉쇄될 가능성이 높다.

독립파 역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반 대중의 신임을 크게 잃어 향후 활동에 큰 제약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홍콩 사회 내 친중-반중 대립은 더욱 극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대립과 분열이 사회 곳곳을 할퀴어 낸 깊은 상처는 오랜 시간이 지나야 아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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