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홍콩②] 민주주의 시련 속 ‘잃어버린 20년’ 되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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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박세준 통신원
입력 2017-08-3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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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정부·홍콩 새정권, 정치적 압박 강화

  • 시민 무관심에 제2의 우산혁명은 요원

올해로 반환 20주년을 맞고 있는 홍콩은 ‘사춘기’를 겪고 있다. 급격한 대륙화로 인한 정체성의 혼란과 맞물리면서 홍콩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각종 시위자들에 대한 강경 처벌과 함께 국기 경례법까지 바꾸려고 하면서까지 홍콩의 사상 통제를 강화화고 있는 모습이다.

홍콩의 원래 ‘주인’이었던 영국은 민주주의 후퇴를 얘기하며 중국을 비난하고 있고, 중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이웨이’를 걷는 중이다.

국내 언론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대부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1인 지배체제 강화라는 정치적인 측면으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짙다.

장정아 인천대 중국학과 교수는 홍콩에 대한 중국의 압박이 심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국의 식민 시절부터 홍콩의 민주주의 기반은 취약했다고 지적한다. 장 교수는 “홍콩이 오랫동안 자유민주사회이자, 법치사회였다는 이미지는 중국반환을 앞두고 만들어진 신화”라면서 “최근 이 신화에 대한 성찰이 시작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주차이나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보장)의 실험 속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홍콩 민주주의 현실과 그 이면의 모습들을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아열대에 위치한 홍콩의 8월은 찜통같이 높은 습도와 기온으로 악명이 높다. 홍콩의 민주세력에게 올 8월은 정부로부터의 정치적 압박으로 인해 더욱 더 힘든 시련의 시간이었다.

이달 초, 광저우(廣州)-홍콩 고속철의 웨스트카우룽(西九龍)역에 홍콩법이 아닌 중국법의 적용을 받는 ‘일지양검(一地兩檢)’ 방안이 논란을 불러 왔고, 7일에는 2016년 ‘어묵혁명’ 관련 시위자 2명이 법원에서 3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홍콩 법원의 강경 판결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4일 홍콩 정부의 신제(新界) 동북지역 개발안에 반대하던 시민운동가 13명이 각각 8~13개월의 징역형에 처해졌다.

17일에는 ‘우산혁명’의 주역인 조슈아 웡(黃之鋒), 네이선 로(羅冠聰), 알렉스 초우(周永康) 등 3명이 정부의 항소에 의해 징역 6~8개월을 선고받았다.

25일에는 2016년 입법회 의원 취임 선서 도중 “홍콩은 중국이 아니다”라고 발언해 의원 자격이 취소됐던 야우와이칭(游蕙禎), 바지오 렁(梁頌恒) 등 2명이 종심법원(終審法院, 한국 대법원에 해당)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다. 이들은 항소심을 기각 당하면서 의원직을 상실했다.

지난 7월 캐리 람(林鄭月娥) 정부가 새로 들어선 이후 법원에서 친정부적인 판결이 이어지면서 홍콩 언론에서는 이를 ‘8월의 폭력(八月的暴力)’, 홍콩판 ‘문자의 옥(文字獄)’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영미권 언론에서도 홍콩 법원의 판결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국제인권단체인 엠네스티와 미국 하원 중국분과에서도 보복성 판결과 홍콩의 정치적 자유 후퇴를 우려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이러한 외부의 비판에 대해 “소위 ’민주’와 ‘자유’를 빌미로 불법 폭력행위를 자행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면서 “홍콩에서 벌어지는 일은 중국 내부의 일이기 때문에 외부의 어떤 세력도 중국의 내정에 간섭할 권한이 없다”고 강경 일변도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는 민주파에게 한 치의 양보도 용납하지 않는 중국 정부와 비교해 봤을 때 홍콩 시민사회의 역량은 아직까지 유약한 수준이다.

[그래픽=임이슬 기자 90606a@]


우산혁명 주동자 3명에 대한 수감 판결이 나고 지난 20일에는 2만2000명(경찰 추산)이 거리로 나와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이 시위가 우산혁명과 같은 대규모 민중시위로 발전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문제는 분산돼 있는 민주세력들을 규합해 중앙정부에 대항할 만한 정치적 역량을 가졌거나, 대중의 광범위한 지지와 존경을 받는 상징적인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른바 ‘선서 파동’ 이후 홍콩 사회 일각에서 이들에 대한 동정 여론이 잠시 일기도 했다.

하지만 젊은 의원들의 ‘아마추어리즘’으로 인해 선거에서 어렵게 얻어낸 의석이 날아갔고, 오히려 이로 인해 민주세력이 합법적으로 활동할 공간이 줄어들었다는 비판의 목소리 역시 존재하고 있다.

또한 현재 정치적 이슈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가 우산혁명 당시와 비교했을 때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홍콩 시민들의 정치 참여 척도를 알아볼 수 있는 지난 7월 1일 가두시위 참가자 수를 살펴보면, 우산혁명 시위가 발생한 2014년에는 경찰 추산 9만8600명(주최 측 추산 51만명)으로 2004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이후 2015년 1만9650명(4만8000명), 2016년 1만9300명(11만명), 2017년 1만4500명(6만명, 이상 주최 측 추산)으로 점차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게다가 법원 판결 후 1주일 새에 대형 태풍 하토(Hato)와 파카르(Pakhar)가 잇따라 홍콩을 지나면서 도시기능이 마비되는 등 궂은 날씨마저 반(反)정부 역량 결집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100년 이상 이어진 영국의 통치하에서 체득한 서구식 계약과 그 충실한 이행에 대한 굳건한 믿음은 바로 ‘홍콩을 홍콩답게’ 하는 자부심의 근간이 됐다.

홍콩이 영국 식민지 시기에도 온전한 민주주의와 자치제도를 누리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50년 간의 일국양제’를 중국 중앙정부와의 ‘계약’으로 받아들였던 홍콩인들의 믿음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캐리 람 정부 등장 이후 정치권의 친중(親中) 인사들은 독립주의자들에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식의 강경발언을 쏟아내는 중이다.

많은 홍콩인들이 일국양제에서 ‘일국(一國)’의 중요성만을 강요하며 홍콩의 기존 법치시스템을 무력화시키려는 중국 중앙정부와 점차 중국 본토의 입김이 거세지는 홍콩의 현 상황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코즈웨이베이 등 번화가에서 대만 등 외국 이민을 알선하는 광고가 심심찮게 눈에 띄고 있다. 1980년대 홍콩의 ‘이민열(移民潮)’이 다시금 뜨거워지는 분위기다.

홍콩은 100년이 넘는 식민지 시기를 거쳐 중국에 반환된 지 20년이 되는 올해, 민주주의 위기라는 거센 풍파를 맞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항인치항(港人治港·홍콩인에 의한 홍콩 통치)’의 꿈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박세준 홍콩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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