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방송 미디어 시장의 ‘그레샴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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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강 기자
입력 2017-08-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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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손계성 한국방송협회 국장

 

손계성 한국방송협회 대외협력부 국장
 

16세기 영국의 금융가 ‘토마스 그레샴’은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는 말을 남겼다. 액면가치가 동일한 주화의 발행비용 절감을 위해 소재의 순도를 낮춰 발행할 경우, 기존 고품질의 주화는 자취를 감추고 저품질의 주화만 화폐유통시장에 남게 되는 현상을 설명한 것이다. 이는 ‘그레샴의 법칙’이라 불리며, 동일 시장에서 가치가 낮은 것이 높은 것을 배척하는 사회병리현상을 설명하는 데도 유용한 개념으로 활용되고 있다. 오늘날 국내 방송 미디어 시장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어 우려스럽다.

과거 미디어 시장에는 참여 가능한 주체가 극히 제한적이었다. 미디어의 희소성과 그에 따르는 큰 영향력 때문에 모든 미디어 정책은 규제 중심으로 고착화되었다. 하지만 인터넷의 등장과 기술의 발전으로 시장의 패러다임은 완전히 바뀌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신규 사업자들이 미디어 시장에 진입하고 융합과 변이를 거듭해 더 이상 경쟁구도를 특정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성이 증가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상파 TV, 라디오 등 ‘레거시 미디어’에 대한 규제는 여전히 낡은 과거의 틀 속에 갇혀 심각한 ‘정책 지체’ 현상에 빠져 있다.

이로 인해 지상파 방송은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울 만큼 급속도로 시장점유율을 상실하고 있다. 물론 지상파 방송의 점유율 하락은 전 세계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큰 흐름일 뿐 아니라, 지상파 방송만이 반드시 좋은 품질의 콘텐츠를 내놓는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낡은 규제의 틀 속에서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고 경쟁력을 갖추기엔 전통적 사업자에게 허용된 운신의 폭이 과도하게 좁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동일한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지만, 과거에 만들어진 미디어는 규제의 영역 속에 있고 새롭게 등장한 미디어는 비규제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시간이 흐를수록 힘의 균형은 비규제 영역으로 쏠리게 될 것이 자명하다.

이로 인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무엇인가? 고품질 다큐멘터리, 문화예술 프로그램, 소외계층을 보듬는 사회공익 프로그램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프로그램의 선정성은 높아지고 그만큼 품위는 낮아지고 있다. 그 결과 많은 이의 열정이 모여 오랜 기간에 걸쳐 어렵게 이뤄온 한류의 바람은 콘텐츠의 질적 하락과 더불어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새롭게 임기를 시작하는 제4기 방송통신위원회에 좀 더 넓은 시각의 혜량을 바란다. 어떻게 해야 전통적 사업자가 품위를 지키고, 공적 책무를 수행하며, 경쟁력 있는 콘텐츠 생산자 역할을 지속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이미 정글이 돼버린 방송 미디어 시장에서 악화를 구축하고 양화를 늘릴 수 있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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