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가 여는 주주총회, 주주들의 즐거운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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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호 기자
입력 2017-08-1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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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진에게 큰 부담을 안긴다는 ‘주주총회’가 장마와 함께 찾아온다. 6월 말에 주주총회 시즌이 도래하는데, 지난 6월 29일에는 하루에 700개가 넘는 상장기업이 주주총회를 열었다. 경영진에게 주주총회가 부담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주주들이 던지는 질문을 사전에 알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주주총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다.” 현장을 예측할 수 없는 곳에 가야 한다는 것은 경영진에게 공포 그 자체다. 그래서 부하직원들은 경영진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리허설을 열기도 하고, 예상 질문을 만들어 모범 답안을 준비한다. 이 날 만큼은 모든 부서가 주주총회 하나만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지난 6월 21일 개최된 소프트뱅크 주주총회에서 손정의 사장이 인사말을 하는 모습. (소프트뱅크 제공)

 
 
일본에서는 재미있는 주주총회를 여는 회사로 이동통신 업체 소프트뱅크가 자주 거론된다. 소프트뱅크를 이끄는 손정의(孫正義) 사장은 ‘손자병법’의 애독자로 알려져 있다. 성도 같은 손 씨다. 손 사장은 손자병법에 등장하는 오사(五事)에 한자 25자를 추가한 ‘손의 제곱 병법’을 만들기도 했다.

손자병법에는 전쟁을 치르면서 다섯 가지 조건을 세심하게 따져보고 뛰어난 계책을 세워야 한다고 적혀있다. 그 기준이 바로 오사(五事)다. 오사는 도(道), 천(天), 지(地), 장(將), 법(法)을 가리킨다.

도(道) 전쟁의 대의는 누구에게 있나.
천(天) 시간은 누구에게 유리한가.
지(地) 장소는 누구에게 유리한가.
장(將) 장수의 능력과 기량은 누가 한 수 위인가.
법(法) 누구의 규율이 우수한가.

손자는 이 다섯 가지를 검토한 후 싸울지 여부를 결정하라고 말했다. 그래서 도(道), 천(天), 지(地), 장(將), 법(法)은 비즈니스를 할 때도 반드시 검토해야 하는 항목으로 여겨진다.
 

주주총회에서 정보혁명의 미래에 대해 설명하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 (소프트뱅크 제공)

 
 
 
손 사장은 ‘손의 제곱 병법’에서 오사에 ‘정(頂)’을 추가했다. 정은 ‘비전을 갖는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풍경을 상상한다’라는 뜻이다. 산을 오를 때 정상에 가지 않으면 그 풍경을 볼 수 없지만, 오르기 전에 그것을 상상하는 것이 ‘비전을 갖는다’ 란 뜻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손 사장은 지난달 21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정보혁명이 가져다줄 밝은 미래에 대해 언급한 뒤 “그래서 지금 내 인생이 너무 즐겁다"라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정보혁명이 가져다줄 미래가 어떤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손 사장은 주주총회에서 정보혁명의 미래를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당장 내일 일어날 일도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주주들은 “그래도 이 사람을 한 번 믿어보자”, “이 사람에게 미래를 맡겨보자"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 손자병법의 ‘장(將)’에 해당되는 대목이 여기서 나온다. 미래에 대한 불투명성이 높고, 변화가 많을수록 수장의 ‘미래를 그리는 힘’이 중요시되는 까닭이다.

[소프트뱅크 제공]

 
최근 ‘기업 가치’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기업 가치란 향후 이 회사가 벌어들일 돈의 합계를 말한다. 하지만, 기업 가치는 미래에 일어날 수익을 예측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시점에선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에게 맡겨보자”라는 마음을 주주들에게 갖게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주주들은 한 회사를 이끄는 수장이 큰 뜻을 품었는지, 강한 리더십이 있는지, 회사를 잘 이끌 수 있는지,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등을 모두 따져본다.

그러기 위해 주주들은 주주총회에 참석해 경영진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회사를 이끄는 수장의 능력이 조금이라도 의심받게 된다면 그 수장은 경쟁에서 이길 수 없고, 기업 가치도 올릴 수 없다. 그래서 손 사장은 손자병법에서 제시한 ‘장(將)’을 매우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손정의 사장은 소프트뱅크는 이통사가 아니라 정보혁명 회사라고 말한다. (사진=한준호)

 
손 사장이 이날 주총에서 언급한 “인생이 너무 즐겁다"라는 말 한 마디로 주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미래에 대한 꿈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즐거워하는 수장을 믿지 못한다면 누구를 믿으란 말인가.

손 사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는 일본 국내에서 거대 통신사업자 NTT와 도요타 자동차에 이어 세 번째 영업익 1조 엔을 달성한 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실적이 뒷받침되고,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해 미래에 대한 꿈을 꾸준히 이야기하는 손정의 사장의 주주총회가 즐거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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