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3] 天高馬肥는 공습경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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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 칼럼니스트
입력 2017-07-24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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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정주문명권과 유목문명권
세계의 문명권을 가르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서도 머물러 사는 사람과 이동하며 사는 사람을 기준으로 가른다면 정주 문명권과 유목문명권으로 가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나 중국, 일본, 미국 등 대부분의 나라들은 아는 대로 정주 문명권 국가이다.
몽골은 대표적인 유목 문명권 국가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경계가 모호해져서 그렇게 가르는 것이 거의 의미가 없어졌다.
대부분의 국가들을 정주 문명권 국가에 포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유목국가였던 몽골도 예외가 아니다.

[사진 = 스키타이 유물]


▶ 이동을 제한한 맹기제도
몽골은 근세 2백여 년 동안 청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은 몽골 옆에 살면서 몽골인들의 습성을 가장 잘 이해하는 반(半)유목민들이었다.

때문에 유목기질을 잘 알고 있는 만주족은 몽골인들의 힘이 결집되는 것을 막기 위해 유목민들이 자유롭게 이동해 다닐 수 있는 자유를 제한했다.
그 것이 바로 이동을 행정 단위별로 제한하는 맹기제도(盟旗制度)였다.

일정 지역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면서 그 때부터 유목민과 가축의 발이 제한적으로 묶이게 됐다.
청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난 뒤, 70년간 소련의 위성국가로 지내는 동안에도 몽골은 일정 지역 안에서 유목을 하는 방법을 그대로 이어왔다.

그리고 지금은 전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수도인 울란바토르에 살 정도로 거의 정주민 국가가 돼 버렸다.
초원에 사는 유목민들도 여전히 가까운 지역으로 옮겨 다니며 가축을 기르기 때문에 사실상 정주민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 물자부족, 전쟁과 약탈로 해소
그렇지만 과거 몽골 초원을 누비던 유목민들은 마음대로 자유롭게 이동하며 살았다.
항상 기름진 풀을 찾아 초원을 이동해 다녔다. 그들에게는 항상 머무는 곳이 고향이었다.

그러나 고기와 유제품 그리고 가축의 기죽과 털이 거의 전부이다시피 한 유목민들은 항상 물자 부족에 시달려 왔다.
물자부족은 그들이 정주민들을 대상으로 전쟁과 약탈에 나서도록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었다.

기원전 3세기를 전후해 동쪽의 초원지대는 흉노(匈奴)와 동호(東胡 그리고 월지(月氏)가 분할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흉노가 다른 두 집단을 제압했다.

그리고 기타 군소세력까지 모두 손아귀에 넣었다.
그렇게 해서 역사상 초유의 가장 큰 유목민 정치 집단을 형성하게 된다.

몽골 초원을 장악했던 흉노(匈奴)는 BC 3세기부터 AD 1세기까지 끊임없이 중국 땅인 중원을 침공해 정주민들을 상대로 약탈을 일삼았다.
이들 흉노들은 기마민족 특유의 기동력을 발휘해 바람같이 중국 국경을 넘어 들어갔다가 중국 북변 일대를 휘저으며 약탈을 자행한 뒤 다시 바람처럼 초원으로 돌아오곤 했다.

▶흉노를 막기 위해 시작된 만리장성
그래서 중국인들은 흉노의 침공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북쪽에다 성을 쌓아왔다.
춘추 전국 시대에 연(燕)나라, 진(秦)나라, 조(趙)나라는 각각 북쪽 변경에다 장성을 쌓았다.
천하통일을 이룩한 이후 진의 시황제(始皇帝)는 그 장성을 증축하고 연결해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완성했다.

그러니까 당시로서 만리장성은 바로 유목문명권과 정주문명권을 가르는 상징적인 경계선이었다.
기원전 진시황제서부터 명나라에 이르기까지 2천년 이상 여러 차례 증축되고 보완된 것이 바로 지금의 만리장성이다.

만리장성이 정주민과 유목민을 가르는 인위적인 경계선이라면 만리장성 바로 바깥에서 동서로 길게 가로지르는 음산산맥(陰山山脈)은 천연적인 경계선이었다.

▶ 가을이 두려운 중국인
천고마비(天高馬肥)!

가을 상징하는 이 용어는 모두에게 익숙한 말이다.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는 가을의 풍성함을 상징하는 말로 인식된다.

하지만 과거 중국인에게 이 말은 두려움을 안겨주는 섬뜩한 말이었다.
유목민들에게 겨울은 고통스러운 계절이지만 가축들은 그 고통이 더 심하다.

겨울동안 말이나 양, 소 등 모든 가축들은 눈 덮인 초원에서 먹을 것을 찾기가 힘들다.
유목민들이 별도의 사료를 주는 법이 거의 없다.

가축들이 알아서 겨울을 넘겨야 한다. 겨우 먹을 수 있는 것이 눈 속을 헤집어 찾아내는 새순 정도다.
자연히 겨울동안 거의 먹지 못한 가축들은 말라갈 수밖에 없다.

북방지역은 봄도 늦게 온다.
거의 6월이 돼야 풀이 나기 시작하고 겨우 그 때가 돼야 가축들은 굶주렸던 배를 조금씩 채우기 시작한다.

기동력을 무기로 하는 유목민들은 말이 굶주려 말라있는 겨울부터 이른 봄까지는 사실상 발이 묶인다.
말들은 봄과 여름을 지나면서 살이 붙기 시작해 가을이 돼서야 비로소 살이 통통하게 찌기 시작한다.
그 때가 돼야 말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활동력도 왕성해진다.

▶ 맑은 가을 하늘은 공습경보
말들의 기동력이 활발해지면 유목민들은 정주민들을 대상으로 겨울나기 준비에 들어간다,
가을은 말들의 기동력이 최상에 올라있는 시기인데다 정주민들이 추수를 해서 물자가 풍부한 시기이기 때문에 이 때 약탈을 통해 물자를 확보해야 꽁꽁 얼어붙는 겨울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중국인들의 처지에서 보면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북쪽에서 바람처럼 쳐 내려왔다가 한바탕 정주민들을 휩쓸고 바람처럼 사라지는 흉노는 정주민들에게 귀신보다 무서운 존재였다.

그래서 맑은 가을 하늘은 그들에게 공습경보나 마찬가지였다.
언제 흉노가 밀어 닥칠지 모르니 미리 대비하라는 경고였다.

그래서 그들에게 천고마비는 전혀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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