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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의 음악이야기] 정답과 모순 없는 변증법

반병희 기자입력 : 2017-07-11 20:00수정 : 2017-07-11 20:00

[사진=정병욱]



긴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리고 장마가 시작됐다. 이맘때 찾아오는 장마는 오호츠크해 고기압과 북태평양 고기압 사이 힘겨루기가 엇비슷해 정체전선이 형성되며 생기는 현상이다. 며칠 사이 큰 천둥과 비를 겪으니 장마를 만드는 두 고기압의 치열한 대치가 음악의 일면을 떠올리게 한다. 음악은 질서와 체계를 중요한 전제로 삼는 예술이다. 그리고 그러한 체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대개 대립의 관계 속에서 의미 있는 지위를 갖는다. 매 시대를 대표하는 질서와 그에 도전하는 대립항의 탈주 없는 정반합 과정이, 음악이라는 예술장르가 대중 가까이 살아남으면서도 스스로 진화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음악과 미술 사이는 서구 예술사 가운데 서로에게 많은 관심과 영향을 주고받던 소문난 변증의 관계였다. 미술이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적시한 ‘음악의 상태’, 즉 ‘추상의 영역’으로 옮겨 오면서는 더욱 그러했다. 경험하는 모든 감각과 감상의 종합을 표현하고자 했던 인간의 욕구는 음악 같은 그림, 회화 같은 음악 등과 같은 형태로 사람의 다중감각을 자극해왔다. 각종 녹음기술 및 소리창조 방식이 날로 발전해가는 지금에도 과거의 원초적인 관심 및 전통적인 방법에 따른 음악과 그림 사이의 전선은 활발히 형성된다. 5월 19일 발표된 홍혜림의 '화가새'가 그와 같은 변증법의 결과물이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금상 출신인 홍혜림의 본 정규 2집은 그녀의 지난 작업처럼 질박하고 차분한 건반사운드를 기반에 둔 아름다운 서정을 들려주면서도, 가사가 마치 그림을 그리듯 장면을 묘사하고 그것을 다시 소리로 재현하는 보다 입체적인 음악으로 완성됐다. ‘둥지 짓는 새’를 ‘부리로 연필 삼는 화가새’로 비유한 작가의 표현처럼, 언어로 그림을 그리고 그림이 음악이 되며, 청자에게 음악이 다시 언어로 다가오는 감각의 바쁜 전이가 노래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언어 같은 음악은 일상의 생각을 꼼꼼히 스케치해 12곡의 노래를 12편의 수필과 함께 발표한 그녀의 글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그림 같은 음악은 미니멀한 사운드 제작방식에도 원하는 소리를 실체로 그리기 위해 세상에 없던 악기를 소박하게나마 직접 제작까지 하는 등 수고했던 세심한 편곡과 녹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화가새'가 외부 요인이나 예술 영역의 구분과 무관하게 구상과 추상 사이를 오가며 내면 표현양식의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카운드업(Kound Up)의 'Kind of'는 국악과 서양음악이라는 노래 바깥에서 구별되는 거대한 질서 간 대화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민속음악과 대중음악, 전통음악과 현대음악의 관계로 인식되는 두 체계 간 중간지대를 찾는 노력은 해방 이후 국악의 영역을 꾸준히 확장하고자 했던 국악계에 의해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오늘날 특정 조류나 경향성에 얽매이지 않는 여러 시도를 통해 노력의 성과가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다. 'Kind of'는 국악과 양악이 적당히 번갈아가며 만나거나 자기 소리만 주장하는 아니라, 각자의 장점과 특성을 명확히 살리면서 온전히 혼재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들려준다. 지난해 밴드 ‘두번째 달’의 음반 '판소리 춘향가'에 판소리 보컬로 참여하여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부문을 수상했던 고영열이 노래를, 재즈 기타리스트 서호연이 반주를 맡아 각자의 소리가 어우러지는 다른 조화를 이룬다. 1980년대 민속악 명인들이 해외 재즈 스타들과의 협연을 시도한 이래로 한동안 지속하였던 프리재즈 본위의 난해한 크로스오버 시도와 다르게, 그리고 2016년 두번째 달이 선보였던 판소리와 아이리시 풍의 리드미컬한 반주 속 신비로운 분위기와도 또 다르게, 넘치는 기교에도 청자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오는 가볍고 흥겨운 기타 연주와 자유롭고 쾌청하게 뻗어나가는 전통 소리의 가창을 엮어내어 그만의 변증법을 완성한다.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는 주제로 올해 8회째를 맞이한 여우락 페스티벌의 7월 8일 공연은 현 시점 국악기와 양악기를 가장 불꽃튀기며 접붙이는 잠비나이가 무대를 꾸몄다. 2011년 첫 음반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데뷔한 잠비나이의 음악은 국악기의 기존 연주법이나 소리의 미학을 강렬한 포스트록의 그것으로 대체해 전에 없던 자기만의 정반합을 들려준다.

기존 질서에 비추어 어떤 방식이 전형적이고 어느 방향이 예외적인가 하는 음악의 사유는 이 밖에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작곡가 임준희의 7월 근작 '댄싱산조 2'는 국악기와 서양 고전악기가 기악으로 만나는 예외적 방식에 대한 고민을 작금에도 멈추지 않는다. 지난 6월 발매한 3집으로 완연한 베테랑 뮤지션이 된 이디오테잎의 음악은 신시사이저 특유의 일렉트로닉 소스를 익숙하게 차용하면서도 사이키델릭한 멜로디와 탄력 넘치는 드럼 연주로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 폭풍 같은 록음악 전선을 만들어낸다. 음악이 창의적인 결과물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지난 체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순응과 반목을 거듭하는 분주한 변증을 통해 역사는 이어진다. 물론 역사 속에 정해진 모범답안은 없다. 상반된 두 질서 사이에 화해 불가능한 완전한 모순도 없다. 늘 그래왔듯 서로 다른 답안의 가능성이 마땅히 부딪치고 고민한 장마 뒤에야 녹음 짙은 창의의 여름이 화사하게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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