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창]탈원전, 단기 정책과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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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6-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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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 경제부장]

18세기 역사학자인 비코는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역사는 일직선상이 아니라 후퇴와 발전을 거듭하며 나아간다는 의미다.

사상가이자 민주화운동가인 함석헌 선생은 ‘나선형’의 의미를 저항을 통한 성장과 변환의 징후로 설명한 바 있다.

변화엔 고통이 수반된다. 마찬가지로 역사의 발전도 고착화된 과거의 제도를 뚫어야 가능하다는 의미와 상통한다.

문재인 정부는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특히 에너지 정책면에서는 혁명적이라고 할 만큼 속도가 빠르다.

문 대통령은 후보시절 탈원전·탈석탄을 통한 국가에너지 정책의 대전환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취임 두 달도 안돼 국내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를 영구정지시켰다.

이어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에 대한 일시 공사중지 조치를 내렸다. 앞으로도 기존 원자력발전소의 설계수명 연장 불허, 노후 석탄화력 발전소 폐쇄 등의 조치가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고리 1호기 영구정지는 큰 의미를 담고 있다. 부산과 울산에 집중된 ‘고리 원전단지’는 지구상에서 가동되는 원전단지 중 가장 큰 규모다. 영화 '판도라'의 한별 1호기는 실제 고리 1호기를 모델로 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원전 밀집도가 가장 높다. 미국의 20배, 러시아의 100배에 이른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도 지적했듯이 원전은 안전하지도, 저렴하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다.

실제 제프리 이멜트 전 GE(제너럴 일렉트릭) 회장도 “핵발전은 다른 에너지와 견줘 지나치게 비싸 정당화하기 힘들다”고 고백한 바 있다. GE는 세계적인 원전 건설업체다.

이렇듯 탈원전·탈석탄의 당위성은 확보된 셈이다. 그러나 당위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엄연히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실은 산업계와 학계, 심지어 정부 내에서도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다는 점이다. 그간 이들은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을 주도하거나 이를 통해 경제적인 이익을 올린 주류세력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반대 명분도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원전가동 중단·해체에 따른 비용문제와 수출형 원전기술의 처리문제, 급격한 전기료 인상에 대한 우려 등이 그것이다. 향후 정책실현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과 국론분열의 소지도 내재하고 있다.

역사의 발전에 따르는 저항의 예로 조조의 사례가 종종 거론된다. 중국 한나라 시대 개혁가였던 조조는 창업공신의 영토를 삭감해 왕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황제도 이를 적극 찬성했다. 하지만 조조는 제후 및 권세가의 미움을 사 사형으로 일생을 마쳤다.

이를 두고 중국 최고의 역사가로 꼽히는 사마천은 “옛것을 바꾸거나 어지럽히는 사람은 죽거나 멸망한다는데 조조가 딱 그렇구나”라는 말을 남겼다.

다소 과한 예시일 수 있으나 변화에는 저항이 따라올 수밖에 없고, 너무 급격한 변화는 많은 부작용도 동반한다. 지난 참여정부도 너무 급속한 변화를 좇다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물론 변화와 저항, 고통 속에서 우리나라도 발전해 왔다. 참여정부 말 복지국가의 이상을 담아 수립된 '비전 2030'은 당시 많은 비판에 직면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정부정책에 조금씩 녹아들었다. 

문재인 정부가 당위성을 등에 업고 '에너지정책의 대전환'을 시작했지만, 기존 주류세력의 목소리에 충분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부의 주장처럼 '탈원전'에 대한 비판에 대해 "저의가 의심된다"는 식의 편가르기로 가서는 안 된다. 특히 에너지정책은 우리 여건에서 단기 정책과제여서는 안 된다.

우리보다 앞선 독일 등에서도 '탈원전'을 위해 수십년간의 공론화과정을 거친 것처럼, 우리의 현실을 반영해 보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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