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준익 감독 "'박열', 발버둥의 결과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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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6-29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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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열'을 연출한 이준익 감독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이준익(58) 감독과 박열의 인연이 처음 시작된 시점은 무려 20여 년 전. 이 감독이 영화 ‘아나키스트’를 준비할 때였다. 조선의 아나키스트 박열과 그의 연인이자 동지인 가네코 후미코는 이 감독의 가슴을 뜨겁게 달궜다. 그는 젊은이들의 뜨겁고 순수한 신념에 매혹됐고, 그들이 남긴 흑백사진 한 장을 가슴속에 품었다.

지난 28일 개봉한 영화 ‘박열’은 이 감독의 발버둥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1923년 도쿄, 관동대지진 후 퍼진 괴소문으로 6000여명의 무고한 조선인이 학살되고 그 사실을 은폐하려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선 박열(이제훈 분)과 가네코 후미코(최희서 분)의 이야기를 담은 ‘박열’은 이준익 감독이 '과실과 결점을 채우고 그것을 교훈 삼아 보약으로 만들기 위해' 발버둥쳤던 지난 시간을 대변하는 결과물인 셈이다.

“영화 ‘동주’를 찍으면서 ‘이제는 박열을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주’ 후반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박열’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죠. 제가 20여년간 역사를 영화화시켰는데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과실과 결점이 있었겠어요? 그것을 메우기 위해서 열심히 발버둥쳤죠. 그 ‘발버둥’에서 ‘박열’이라는 영화가 탄생한 거고요.”

영화 '박열'을 연출한 이준익 감독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영화 ‘황산벌’을 시작으로 ‘왕의 남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사도’, ‘동주’에 이르기까지. 이준익 감독은 수많은 시대와 인물들을 작품 속에 담아왔다. 그는 “미흡한 부분을 날카롭게 지적받을 때마다” 비판과 착오를 인정하고 다음 작품에 녹여낼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모든 작품을 신중을 기해 만들었어요. 특히 ‘소원’부터 ‘사도’, ‘동주’까지 나름 성적이 좋았으니까. 언제 ‘헛치기’가 날 줄 모르거든요. 하하하. 어쨌든 저는 대중과 관객의 심판을 받는 사람이니까. 특히 시대물의 경우에는 지적받을 게 넘쳐나거든요. 미흡한 부분을 찾고 또 되물어야죠. 그래야 다음 작품을 또 만들 수 있죠.”

시대물·역사물에는 도가 튼 이준익 감독인데도 ‘박열’의 영화화가 걱정이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박열을 그려낼 수 없다” 여겼고, 아나키스트의 본질과 박열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동주’로 먼저 문을 열었어요. 살짝 문을 연 뒤 ‘박열’로 완전히 치고 들어간 느낌이랄까요? 물론 두 작품은 완전히 달라요. 윤동주는 시대의 불화를 내재화시킨다면 박열은 시대의 불화를 외재화시키는 인물이죠. 이란성 쌍둥이 같은 개념이랄까요? 하나는 남자고 하나는 여자인데 누가 같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그 쌍둥이를 두고 누가 낫다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겠죠?”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인물들을 만들어냈던 작품들과는 달리 이 감독은 최근 ‘사도’, ‘동주’, ‘박열’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고증을 거쳐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특히 ‘박열’의 경우는 대사 한 줄까지 완벽히 사실에 가깝게 만들고자 했다. 일본 매체 아사히신문을 비롯해 각 신문사에 연락을 취해 사건이 일어난 날짜의 내용을 모두 요청, 검토하기도 했다.

“‘박열’은 철저히 고증할 수밖에 없었어요. 가네코 후미코의 경우, 일본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에요. 우리가 박열을 아는 숫자보다 일본인들이 가네코 후미코를 아는 숫자가 더 많을 걸요? 거기다 가네코 후미코의 평전을 쓴 것도 일본인이니까요. 명확한 기록이 있는데 그걸 날조하거나 왜곡할 수는 없죠. 평범한 일제강점기 배경의 영화라면 한국인이 보는 프레임, 영화적 과장을 더할 수 있지만 ‘박열’은 그럴 수 없었어요. 역사 속 중요한 인물을 찍는데 고증을 지적받는다면 영화의 본질이 훼손되지 않겠어요?”

영화 '박열'의 스틸컷 중, 박열 역의 이제훈과 후미코 역의 최희서[사진=메가박스 (주) 플러스엠 제공]


아나키즘을 비롯해 관람에 불편한 정보들이라도 이 감독은 “침착하게 영화에 담아내고자” 노력했다. 그게 ‘박열’이 가진 영화적 특성이었다. 그런 이유로 이 감독은 가네코 후미코 등 일본인 역할 캐스팅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바깥에서 보는 관점 역시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인은 나쁘고, 한국인은 착하다’는 식의 이분법적인 표현도 배제하고자 했죠. 영화 초반에 박열 대사 중, ‘일본 권력에는 반감이 있지만, 민중에게는 친밀감이 들지’라는 말도 있잖아요? 방향성을 정해준 셈이죠. 일본을 바라보는 감정적 대응의 틀에서 벗어나자는 거예요. 일본 권력은 부당한 게 많지만, 그 나라에서 양심을 가졌던 이들을 무시하거나 외면할 필요는 없는 거예요. 영화 속에도 일본 양심가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한 거죠.”

이 감독은 “철저한 고증을 거쳐 균형 있는 시선을 잡아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작품에 임했다. 평전 및 신문 등을 통해 철저하게 자료를 수집했고 “극단적 반일 감정보다 이성적 논리 설명을 통해 박열이 마주한 시대, 상황, 사람들을 균형 있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설득하려고 덤비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작품을 만들며 왜곡과 미화가 일어날 수 있는 부분도 “설득하려고 덤비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는 위인을 미화해본 적이 없어요. 김유신, 연산, 동주도 마찬가지죠. 박열 역시 미화가 아닌 그의 사실적 면면들을 담아내고자 한 거예요. 박열의 경우 신문기자인 이석과 만나 ‘허황한 이상주의자로 평가받는다’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런 부분을 통해 박열 역시 미흡한 점이 있었고 성장해나간 부분이 있다는 걸 보여준 거죠. 박열은 음모에 걸려들었고 오히려 그 점을 뒤집어 일본 제국주의의 부당함을 논리적으로 지적하고 스스로 사형을 쟁취한 거예요.”

영화 '박열'을 연출한 이준익 감독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뜨거운 신념을 가진 인물을 차가운 이성으로 그려낸 결과는 놀라웠다. 이 감독이 그린 영화 속 인물들이 매력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왜곡과 미화가 아닌 사실적 시선은 그들의 인간적 면모와 세계관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매력적 영화, 매력적 인물은 자연스럽게 N차 관람 열풍으로 이어졌다.

“‘박열’도 N차 관람 조짐이 보여요. 하하하. 지금까지 시사회를 4번 했는데, 4번 모두 본 사람이 있더라고요? 정말 감사했죠. 어찌나 호응도 좋은지. 물론 이제훈 팬이겠지만…. 팬심이라는 건 건너오는 거니까요! 하하하. 이제훈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최희서로 건너오리라 믿어요.”

영화 ‘소원’부터 ‘사도’, ‘동주’까지. 최근 이 감독은 높은 흥행 타율을 보인다. 이는 ‘박열’ 흥행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오늘의 문을 닫고, 내일의 문을 여는 거죠. 보통 내일의 문을 열었을 땐 절벽이 있기 마련이거든! 하하하. 항상 추락하고 그 절벽을 기어 올라오느라 고생하죠. 부단히 시련을 겪다 보니 가끔은 성공하고 또 가끔은 실패하고요. 그게 다음 영화를 만들 힘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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