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책을 만나다] 주류 경제학에 날리는 페미니즘의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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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2-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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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 존엄한 죽음 | 졸혼시대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밀린 집안일, TV리모콘과의 손가락 씨름, 아이들과 놀아주기 등 주말·휴일엔 '의외로' 할 일이 많아 피곤해지기 일쑤다. 그렇지만 책 한 권만 슬렁슬렁 읽어도 다가오는 한 주가 달라질 수 있다. '주말, 책을 만나다'에서 그런 기분좋은 변화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 김희정 옮김 | 부키 펴냄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사진=부키 제공]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은 돈에 관심이 없는, 조용하고 수줍은 천사 같은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그러나 그녀는 경제학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싸움꾼에 더 가까웠다.

나이팅게일은 간호사들이 정당한 보수를 받게 하기 위해 평생을 싸웠다. 그녀는 선한 일을 수행한다는 사실이 간호사들의 적은 보수를 정당화할 수는 없으며, 이들의 노동에 더 많은 보수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행을 하는 것과 경제적으로 잘살기를 원하는 것 사이에 아무런 모순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선한' 일을 하기 원하는 사람에게도 돈은 꼭 필요하다.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혹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그들의 욕구 때문이다." 

이른바 '주류 경제학'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이 같이 말했다. 그는 빵집 주인이 빵을 굽고, 양조장 주인이 술을 빚는 것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윤을 취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모두가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라도 있는 것처럼 세상은 돌아간다. 

그렇지만 이 책의 저자 카트리네 마르살은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절반의 답을 찾은 데 불과하다. 그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상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의 어머니가 매일 저녁 식사가 식탁에 오를 수 있도록 보살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국부론'에 등장하는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이 이기심을 발휘해 돈을 벌 수 있던 것도 그의 아이를 키우고 식사를 준비하고 텃밭에서 채소를 키운 그들의 아내 혹은 누이 덕분이었다는 말이다. 

저자는 여성들의 가사노동이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면서 그들의 경제적 역할이 과소평가되고 성불평등, 차별적 경제 구조 등이 공고해지는 사회에 날카로운 일침을 날린다. 

주류 경제학의 문제점을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풀어낸 재치있는 비판서이다.

328쪽 | 1만5000원


◆ '존엄한 죽음' 최철주 지음 | 메디치미디어 펴냄
 

'존엄한 죽음' [사진=메디치미디어 제공]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작금의 국정농단 사태는 국민들로 하여금 우리 '헌법'에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됐다. 물론 '민주공화국' '권력' 등 국가체제 등에 관한 헌법조항도 중요하지만, '인간'과 '행복'에 대한 지당한 명제를 담고 있는 이 헌법 제10조에도 새삼 관심을 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딸과 부인을 먼저 떠나보내며 본격적으로 죽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저자는 헌법조항을 언급하며 "행복이란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찾는 것이고, 자신의 존엄과 가치도 그 안에 있다"고 말한다. 연명치료 중단이 생명을 단축한다고 해서, 환자의 의지에 반해 인위적으로 신체를 침해한다면 이는 행복추구권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타인이 내 죽음에 개입하게 된다"고 담담히 읊조린다. 

2008년 연명치료 중단과 존엄사법 허용 논쟁을 일으킨 '김할머니 사건' 이후 진통 끝에 제정된 '웰다잉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은 지난해 국회를 통과, 오는 2018년 2월부터 시행된다. 그러나 약 2년의 유예기간에도 준비는 미비하다. 
  
개인적인 이별의 아픔을 보듬으며 외국의 존엄사 문제를 취재하고, 웰다잉 강사·칼럼니스트로 활동해 온 저자는 자신의 강의를 들으러 오는 이들과 호스피스 병동의 풍경 그리고 의료현장에서 죽음이 외면받는 현실 등을 가까이서 관찰했다.

그에 따르면, 당사자가 작성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담당 의사를 통해 작성하는 '연명의료 계획서'도 일상과 현장에서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법 시행을 앞두고 "죽음에 대한 공부와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저자는 각계각층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죽음이 곁에 있음을 인식하지 못 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죽음을 맞닥뜨리는 사람들이 자주 질문하는 내용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으며 죽음에 대한 인식은 어디까지 왔는지에 대한 저자의 관조 등을 찬찬히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왜 죽음을 공부하고 '자기결정권'을 행사해야 하는지 곱씹어보게 된다. 

248쪽 | 1만5000원


◆ '졸혼시대' 스기야마 유미코 지음 | 장은주 옮김 | 더퀘스트 펴냄
 

'졸혼시대' [사진=더퀘스트 제공]


최근 일본에서는 '사후(死後)이혼'을 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인족(姻族)관계종료신청서'라는 서류 한 장만 행정관청에 제출하면 사별한 배우자의 가족과 남남이 될 수 있단다.  

이처럼 사후이혼이 늘어나는 데에는 뒤틀린 고부·장서관계, 간병에 대한 부담 등이 자리하고 있지만 배우자에 맞추며 살아 온 과거에 대한 보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사후이혼까지는 아니지만 '결혼을 졸업한다'는 의미의 '졸혼'(卒婚)도 새로운 풍속으로 등장했다. 탤런트 백일섭도 한 TV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졸혼을 고백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저자인 스기야마 유미코는 40대에 찾아온 남편과의 갈등으로 고민하던 중 딸의 권유로 남편과 따로 살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독립적으로 살면서 자신의 결혼 생활을 돌아보던 그는 '다른 부부들은 어떻게 갈등을 해결하며 사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쓰겠다고 결심했고, 남들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 상황에 맞는 부부 역할로 사는 사람들을 취재했다. 저자가 이들에게 발견한 공통점이 바로 '졸혼'이다. 

저자는 "졸혼은 틀에 박힌 가정생활을 송두리째 뒤엎는 새로운 삶의 태도"라며 "가족이라는 개념이 한 곳을 바라보며 하나로 움직였던 전체에서 각각의 개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개인으로 방향을 바꾼다"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졸혼자들은 서로 흥미가 다르고 생각이 다른 것을 인정하고 따로 떨어져 살기도, 각자 다른 곳을 여행하기도 한다. 다만, 서로를 든든하게 지지해준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배우자와 더불어 가장 나답게 사는 법' 또는 '일상에서 내 삶의 비중을 늘리는 새로운 결혼생활'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이 책에 대해 "젊은 남자들부터 읽어야 한다. 다 늙어서 고민해봐야 답이 전혀 안 나오기 때문이다. 젊은 여자들도 꼭 읽어야 한다. 아이들 교육, 남편의 승진은 아주 잠시의 고민이기 때문이다"고 추천사를 남겼다. 

나와 배우자 그리고 가족을 솔직하게 바라본 '행복 길잡이' 같은 책이다.

240쪽 |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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