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사 그후①] 한번 백기사는 영원한 백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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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기자
입력 2019-12-09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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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버린ㆍ엘리어트 등 해외 헤지펀드 공격시 대기업간 공조

  • 현대산업개발, 아시아나 인수로 삼양식품 백기사 역할 마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데일리동방] 최근 시장에서는 한진그룹 경영권을 지켜줄 ‘백기사’ 등장에 관심이 쏠린다. 백기사는 과거부터 기업 간 인수합병(M&A)에 종종 등장했다. 현재까지도 든든한 백기사로 남아 기업을 지원하는 곳도 있지만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돼버린 사례도 있다.

올해 4월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이 갑작스럽게 별세한 뒤 KCGI(강성부펀드)는 한진그룹과 경영권 싸움을 시작했다. KCGI는 한진칼 2대주주로 경영권 쟁취를 위해 움직이자 오너가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기업들의 지원이 이어졌다.

GS홈쇼핑, 델타항공, 반도그룹은 한진그룹 관련 지분을 사들여 오너일가를 지원사격했다. GS홈쇼핑은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한진 지분 전량인 6.87%를 인수했다. GS홈쇼핑과 한진은 총수들의 돈독한 관계를 바탕으로 GS홈쇼핑 설립 초기부터 협력관계를 맺어왔다. 현재 GS홈쇼핑 배송 물량 중 약 70%를 한진이 담당하고 있으며, 한진그룹은 GS홈쇼핑 2대주주로 올라있기도 하다.

이에 시장은 GS홈쇼핑이 한진그룹의 백기사라고 평가했다. 다만 GS홈쇼핑은 “급변하는 배송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해나가기 위해 한진에 전략적 투자를 결정한 것”이라며 백기사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또 다른 지원자로 한진칼 지분 10%를 매입해 2대주주에 오른 미국 항공사 델타항공이 꼽히며, 한진칼 4대주주로 오른 반도그룹도 백기사 역할을 할지 관심이 쏠린 상황이다.

◆과거의 ‘백기사’, 현재는?

이처럼 경영권과 경영 인사를 의결하는 데 있어 지분율 경쟁을 할 경우 경영자 편에 선 우호세력을 ‘백기사’라고 부른다. 통상 인수합병(M&A) 상황 시 피합병되는 기업의 경영진을 보호하기 위해 지분매입 등 지원에 나서는 기업을 의미한다.

과거부터 우리 기업들은 활발히 M&A를 했고 수많은 백기사 기업들이 나왔다. 대표적으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당시 KCC가 꼽힌다. 2015년 삼성물산은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어트는 이들의 합병이 주주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면서 반발했다.

이에 KCC는 삼성물산 자사주 5.76%를 매입해 백기사로 나섰다. 삼성물산이 행사할 수 없는 자사주를 매입해 주주총회에서 삼성물산에 힘을 실어준다는 전략을 펼친 것이다. 현재 KCC는 삼성물산 지분 8.97%를 보유한 3대주주로 머물러 있다.

2003~2004년 SK그룹과 소버린의 경영권 분쟁에는 은행 3곳이 팔을 걷어붙였다. SK그룹은 SK네트웍스 분식회계, SK증권 관련 부당 내부거래 등으로 경영 및 사업이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이 틈을 타 뉴질랜드계 자산운용사 소버린이 SK 주식 14.99%가량을 경영 참여 목적으로 매입해 2대주주가 됐다. 이는 우리나라 적대적 M&A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소버린은 SK그룹 경영권을 인수하겠다고 나섰고 SK는 그룹 전체 경영권이 걸려있는 만큼 경영권 사수에 총력을 기울였다. SK 측은 전체 계열사는 물론 국내 기관투자가, 소액주주들까지 찾아다니며 우호세력이 돼주길 설득했다. 결국 SK그룹 경영권 방어를 위해 SK 계열사와 대주주, 기관투자가, 소액주주 등이 SK 편에 섰다. 특히 하나은행, 신한은행, 산업은행 3개사가 지분 1.5~2%씩 매입해 백기사로 나섰다.

결국 소버린은 SK 경영권 인수에 실패하고 SK그룹은 경영권을 지켜냈다. 그러나 소버린은 이 분쟁으로 7000억~8000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둬 잃을 것 없는 실패를 거뒀다.

또 2004년 노르웨이계 해운 지주회사 골라LNG로부터 대한해운 경영권이 위협받자 대우조선이 백기사로 나섰다. 

2010년에는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이 벌인 현대건설 인수전에 동양종금증권(현 유안타증권)이 현대그룹 우호세력으로 나서기도 했다. 당시 현대건설 관리회사였던 한국외환은행(현 하나은행)은 현대건설 우선인수협상자로 현대그룹을 선정해 동양종금증권의 백기사 역할이 성공하는 듯했다. 하지만 외환은행이 현대건설 우선인수협상자를 현대차그룹으로 변경하면서 결론적으로는 실패한 백기사로 남겨지게 됐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자본시장에 ‘영원한 백기사’는 없다

지난 2005년에는 신한금융지주가 삼양식품 보유 지분 매각을 추진하면서 삼양식품 오너일가 경영권이 위협을 받았다. 이에 현대산업개발이 신한금융지주가 내놓은 지분 중 20.65%를 인수, 3대주주에 오르면서 백기사 역할을 했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과 초등학교 동창으로 삼양식품이 흔들릴 때마다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그러나 지난 9월 HDC현대산업개발은 아시아나 인수전에 참여하면서 유동성 확보를 위해 삼양식품 주식 전량을 매각했다. 이를 통해 HDC현대산업개발은 947억원의 현금을 확보해 미래에셋대우와 컨소시엄을 꾸려 아시아나항공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약 14년간 이어온 백기사 역할을 마감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삼양식품의 오너리스크 등 문제들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이처럼 백기사로 나섰다고 해도 언제든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떠나거나, 돌아설 수 있는 것이 자본주의의 현실이다.

백기사로 등장해 함께 성장하고 있는 기업들도 있다. 게임개발 및 서비스업체 엔씨소프트와와 게임 퍼블리셔 기업 넷마블이 대표적이다. 2015년 넥슨은 엔씨소프트 지분 15.08%를 인수하며 경영 참여를 선언, 경영권을 위협했다. 이에 넷마블이 백기사로 등장해 엔씨소프트 지분 8.9%를 인수해 엔씨소프트 3대 주주가 됐다. 엔씨소프트도 넷마블 지분 9.8%를 사들여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이를 계기로 넷마블은 엔씨소프트의 IP를 공유할 수 있게 됐다. 넷마블은 엔씨소프트 IP를 통해 2016년 12월 ‘리니지2 레볼루션’을 출시했다. 이 게임은 출시 한 달 만에 매출 2000억원을 기록했으며, 넷마블은 이듬해 5월 국내 게임사 중 최대 규모인 시가총액 13조7000억원으로 코스피에 상장했다.

한편 올해 초 넥슨이 매물로 나오면서 넷마블이 인수할 가능성도 점쳐졌으나 매각 자체가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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