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의 팩트와 진실] 지만원이 쏟아낸 유령 '광수' 631명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황호택 아주경제 논설고문·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입력 2019-02-19 05: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황호택 아주경제 논설고문 겸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지만원씨(이하 존칭생략)는 1980년 5월 광주에 ‘북한군 특수부대’ 600여명이 침투해 폭동을 주도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1호 ‘광수’부터 631호까지 발표했다. ‘광수’라는 작명은 광주와 특수부대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 지만원의 시스템클럼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629호 광수는 북한의 정무원 김달현 부총리이고, 아웅산 테러범 두명이 630호, 631호 광수다. 미얀마에서 죽었거나 모든 자료가 북한에 있어 팩트체크(fact-check)가 불가능한 사람들이다.

지만원이 광수라고 찍은 인물 중에는 고(故)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도 들어 있다. 황 전 비서는 71호 광수다.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탈북시인 장진석씨, 對北(대북) 풍선을 날리는 박상학씨, 북한 외교관 출신 고영환씨 등도 포함돼 있다. 황씨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김일성대학 총장이었다. 김일성대학 총장이 광주에 북한군 특수부대로 내려왔다니 사이보그 영화 수준이다. 그때 12살이었던 강철환씨는 요덕 정치범수용소에 수감 중이었다. 강씨는 정치범 수용소 경험을 토대로 ‘평양의 어항’이라는 책을 쓰고 2005년 7월 미국을 방문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만났다. 1980년 장진성씨는 9살, 박상학씨는 12살이었다.

지만원은 영상전문가라는 ‘노숙자담요’(필명)의 얼굴지문 분석기법을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만원은 ‘노숙자담요’를 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의 한국계 미국인이라 주장하면서 익명의 베일 속에 가려 놓고 있다. 사선(死線)을 넘어와 북한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위장귀순으로 몰아붙이면서 그 소스도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탈북자 10명이 지만원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여러 건의 사법절차가 진행되고 있어 마술담요의 정체도 밝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광수’ 중 상당수는 5·18 항쟁에 참여했던 광주시민들이다. SBS 탐사보도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지만원이 71호 광수라고 지목한 박남수씨는 광주시민으로 항쟁에 참여했다가 3년간 수감생활을 하고 출소한 광주 민주화운동 유공자다. SBS는 박남선씨의 주민등록등본과 제적등본도 공개했다.

CIA문건.전두환 인터뷰서도 北개입 없었다는데 ... 

광주사태에 북한이 개입하지 않았음은 미국 CIA 문건이나 2016년 신동아 6월호의 전두환 인터뷰를 통해서도 증명이 되고 있다. 전두환은 “5·18당시 보안사령관으로서 북한군 침투와 관련한 정보보고를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혀”라고 부인한다. 전씨의 부인 이순자씨도 신동아 인터뷰에서 “지만원이란 사람은 독불장군이라 우리가 통제하기도 불가능해요. 그걸 우리와 연결시키면 안돼요”라고 말한다.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적 사태는 시위 진압에 공수부대를 동원한 전두환 신군부의 죄상임이 그동안 거듭된 진상조사로 밝혀졌다. 1979년 부마 사태 때 경찰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치안부재 상태가 벌어져 공수부대를 투입하자 몇 시간 만에 길거리가 잠잠해졌다. 신군부는 광주에도 공수부대가 나타나면 시위대가 다 도망갈 것으로 예측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 밑에서 보안사 정보처장을 지낸 권정달 전 의원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 이후 예상되는 시위진압 작전의 기본 방침을 ‘공수부대에 의한 초기 강경진압’으로 설정하는 데 부마사태가 영향을 주었다고 1996년 검찰 수사에서 진술했다.

광주에는 7공수여단 33대대가 배치됐다. 공수부대는 유사시 적 후방에 침투해 게릴라전 같은 비정규전을 수행하는 특수부대다. 18일 오후부터 ‘김대중 체포와 전국 계엄확대’ 소식을 들은 광주 학생들과 젊은 시민들이 시위에 나서자 공수부대원들은 젊은 사람들을 무조건 연행하면서 잔혹한 진압작전을 폈다. 공수부대원들은 최루탄도 갖고 있지 않았고 돌을 막는 방패도 준비돼 있지 않았다. 그냥 시위대를 향해 돌진해 물푸레나무로 만든 진압봉과 대검을 휘둘렀다. 학생 시민들의 머리가 깨지고 아스팔트에 유혈이 낭자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지검 김기준 검사가 검시자(檢屍者)로 돼있는 사망자의 검시서류에는 19세 여성의 사인(死因)을 左(좌)유방부 자창(刺創)과 우측 흉부, 하악골, 좌측 골반부, 대퇴부 관통 총상(銃傷)으로 기록하고 있다. 19살 젊은 여성이 데모를 했으면 얼마나 했다고 유방을 대검으로 찌르고, 가슴과 하복부에 총을 난사하는가? 대학생과 시민의 공포감을 키우기 위해 이렇게 잔혹한 학살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 공동조사단은 2018년 10월 31일 계엄군의 성폭행 사례도 10여건 발표한 바 있다. 아직도 다 밝혀지지 않은 인권유린을 밝혀내자고 출범하는 것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위원회다.

자유한국당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으로 지만원을 추천할지를 놓고 4개월 가까이 논란을 벌였다. 자유한국당 사람들이 서정갑씨나 조갑제씨한테 전화만 해봤더라도 이번처럼 망신스러운 똥볼은 차지 않았을 것이다. 명색이 자유한국당 당대표 후보로 나선 김진태 의원을 비롯 이종명 김순례 의원은 지만원을 내세워 광주 사태의 진실을 밝힌다며 국회에서 공청회를 열었다.

‘아스팔트 우파’로 불리는 예비역 육군 대령 서정갑씨는 “1968년 10월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 때 내려온 북한군이 120명인데 군경과 예비군까지 나서서 이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우리 군은 23명의 전사자를 냈고 52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말했다. 북한 특수부대원 600명이 군경이 삼엄하게 둘러싸고 있는 광주로 들어왔다면 전쟁이 벌어졌을 거라는 이야기다. 당시 부산 국제신보 기자로 광주민주화운동을 취재했던 조갑제씨는 누구보다도 이 사태의 진실을 많이 알고 있는 저널리스트다. 그는 “지만원이 공개토론을 하자고 제의해도 내가 상대를 해주지 않자 자신이 일방적으로 이겼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당대표 선거의 컨벤션 효과로 최근 상승 조짐을 보이던 자유한국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갤럽과 리얼미터에서 동시에 하락했다. 자유한국당이 보수의 결집을 꾀하기 위해 망국적인 지역감정에 편승한 전략을 펴다간 게도 구럭도 다 잃고 새로운 세대들로부터 수구(守舊)정당이라는 낙인이 찍힐 수밖에 없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