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욱칼럼] 주세법에 막힌 한국 수제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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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생활경제부 부장
입력 2018-06-19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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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생활경제부장]

지난해 7월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로 대기업 총수들을 불렀다. 기업인들과 소통을 위해 마련된 그날 행사의 정식명칭은 ‘주요 기업인과의 호프미팅’. 대통령과 총수들 간 허심탄회한 대화가 이어져 주목받은 행사지만, 정작 화제가 된 건 건배에 활용된 공식 ‘만찬주’였다.

그도 그럴 게 대기업 맥주일 거란 당초 예상을 깨고 강원도의 한 중소기업에서 생산된 수제맥주 ‘강서 마일드 에일’이 만찬주로 선정됐다. 2011년 ‘맥주 제조 일반면허 1호’를 취득한 국내 첫 수제 맥주기업 세븐브로이맥주의 대표제품이었다. 청와대 만찬주로 중소기업의 수제맥주가 채택된 사실이 알려지자, 가뜩이나 맥주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오르던 수제맥주는 순풍에 돛단 듯 성장가도를 달렸다.

당시 대기업과 중소기업, 소상공인 간 상생을 강조해온 정부로서도 만찬주 선택에 따른 중소 수제맥주 회사의 ‘훈풍’이 나쁠 게 없었다. 올 들어서는 지난 4월 세법개정 후속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슈퍼마켓, 편의점 등 소매점에서도 수제맥주 판매가 허용되면서 수제맥주의 열기는 더욱 고조됐다.

하지만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수제맥주와 관련한 한편의 글이 올라왔다. ‘주세제도 개편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이 글은 지난 15일 기준, 청원인원이 1800명에 육박하며 소규모 주류업체나 주류애호가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이슈화되고 있다.

청원자는 글을 통해 “현행 주세 제도에서는 양질의 원료로 술을 빚어 좋은 병에 담그면 제조자가 내야 할 세금이 폭증하기 때문에 제조자가 원가 낮추기에만 골몰하게 된다”며 “소비자는 희석식 소주, 맛없는 맥주, 저급 와인 위주로 마실 수밖에 없고 좋은 품질의 고급주는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가운데 30개국이 종량세를 채택하고 있다”면서 “특히 일본은 1990년 종량세로 전환한 이후 주류 품질이 향상돼 사케와 위스키가 명성을 얻고 있다”고 꼬집었다.

주류에 조세를 부과하는 법률인 ‘주세법’이 현실적인 기준에 맞지않아 중소 주류제조업체들이 고충을 겪고 있다는 게 청원자가 게시판에 글을 올린 취지다.

앞서 언급했듯 지난 4월 통과된 ‘주세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이제 소규모 양조장에서 생산된 수제맥주가 대형마트나 슈퍼마켓, 편의점 등에서도 유통되는 게 가능해졌다. 기존의 경우 수제맥주와 같이 소규모로 제조되는 주류는 제조업자가 해당 영업장에서만 판매할 수 있었다.

또 개정안 시행으로 소규모 주류 제조면허를 딸 때 반드시 필요했던 ‘식품접객업 영업허가’ 조건이 없어졌고 소규모 주류제조업체들이 술집을 따로 운영하지 않아도 술을 팔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청와대 청원글의 논리처럼, 정작 중소 수제맥주 업체들은 주세법이 여전히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항변한다. 현행 주류의 출고가격에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 대신, 알코올 함량을 기준으로 세금을 내는 ‘종량세’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주세법상 국산맥주는 ‘제조원가’를 기준으로 세금이 매겨진다. 즉 제조원가와 판매관리비, 이윤 등을 모두 붙인 순매가에 제조원가의 72%와 주세의 30%에 해당하는 교육세를 매긴다. 주정, 재료, 병, 포장재 등 원료나 인건비, 마케팅과 광고비, 임대료 등에 유통 마진까지도 모두 세금에 포함된다.

반면 수입맥주는 ‘수입원가’를 과세 기준으로 잡는다. 이윤 등을 제외한 공장출고가와 운임비 등을 더한 수입 신고가에 같은 세율을 부과하는 식이다. 이 경우 수입업자가 신고한 가격을 기준으로 과세하기 때문에 업자가 신고가를 낮게 부르면 그 만큼 세금을 덜 낼 수 있고, 그에 따른 이익도 더 챙길 수 있다.

지난해부터 불기 시작한 수입맥주 열풍도 이 같은 주세법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관세청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맥주 수입량은 33만1211t으로 전년(22만508t)에 비해 50%가량 늘었다. 맥주 수입액만 사상 최대인 2억6309만 달러(약 2807억원)를 돌파했다. 더욱이 올해부터는 미국산 맥주의 경우 관세가 없어졌고 오는 7월에는 유럽산 맥주도 관세가 사라질 예정이어서 수입맥주 열기는 당분간 식지않을 게 뻔하다.

현행 주세법에 따라 제조원가와 판매관리비 등이 훤히 드러나는 구조이다 보니, 국산 맥주는 가격경쟁력에서 수입맥주에 밀릴 수밖에 없다. 특히 맥주용 보리나 홉, 효모 등 맥주제조의 필수 원료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소규모 수제맥주 업체로서는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국내 1위 수제맥주 업체인 제주맥주의 문혁기 대표는 최근 전국 출시를 발표하는 간담회에서  작정이나 한 듯 “수입맥주에 유리한 주세 구조에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입 맥주에 대비해 공평한 주세법이 만들어진다면 국내에서 생산된 크래프트 맥주도 수입 맥주와 비슷한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는 자신감도 드러냈다.

지금의 주세법은 소비자들의 선택 권리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술의 원가에 따라 세금을 차등 배분하는 ‘종가세’ 대신, 재료나 제조법과 상관없이 술의 용량(알코올 도수)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종량세’를 적용하는 게 더 합리적이다.

현재 전국의 수제맥주 양조장은 70여개로 추산된다. 올해 안에 100개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규제산업’인 주류업계에서도 소상공인의 '생존'에 정부는 관심을 서서히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소비자들이 더 좋은 맥주를 더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현실에 맞는 시장시스템을 가동해야 하는 이유이자, 최소한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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