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 파슈파티 인장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
입력 2018-05-14 06: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요가 수트라 I.17

배철현 교수(서울대 종교학)


몰입
몰입(沒入)은 공부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내가 어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가 있다. 바로 ‘몰입’이다.

몰입은 자신이 보려는 대상의 겉모습이 아니라 대상을 있는 그대로, 혹은 대상의 존재 이유를 대상의 입장에서 보려는 시도다. 파탄잘리는 몰입을 위해 마음을 침착하게 하는 훈련을 ‘요가’라고 정의했다. 그는 모든 잡념을 잠잠하게 하는 요가를 소개한 뒤 '요가수트라' I.17-18에서 삼매경의 두 가지 종류를 소개한다. ‘삼프라즈나타’와 ‘아삼프라즈나타’다.

‘삼프라즈나타’는 실제 있는 대상에 대한 명상이다. ‘아삼프라즈나타’는 인간의 생각과 말을 넘어선 대상에 대한 명상이다. 나는 편의상 ‘삼프라즈나타’를 ‘유상삼매(有相三昧)’라, ‘아삼프라즈나타’를 ‘무상삼매(無相三昧)’라 명명할 것이다.

파탄잘리는 유상삼매를 다시 4가지로 구별한다. 요가 수련자는 유상삼매의 4가지 구분을 통해, 참자신이 숨어있는 심연으로 진입한다. 유상삼매엔 명상을 도와주는 구체적인 대상이 있다.

요가는 사실 힌두교라는 종교가 등장하기 이전 인류의 오래된 수련방법이었다. 1922년대 영국 고고학자 존 마셜이 기원전 2600년경으로 추정되는 인더스 문명을 파키스탄 신드에서 발굴했다. 서양인들은 소위 ‘아리안 점령’설을 전파하면서 문명적으로 개화되고 철기 문화로 무장한 아리아인(Aryan)들이 기원전 12세기경 인도를 점령해 인더스 문명을 시작했다고 주장해왔다. 이 이론은 20세기 들어 히틀러를 중심으로 ‘아리안주의’를 강화하는 신화가 됐다. 그러나 인더스 문명은 아리아인들이 이곳에 들어오기 훨씬 이전에 형성되기 시작했다.

모헨조다로와 하라파 문명은 동시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문명에 견줘 부족한 것이 없고, 오히려 오늘날 도시의 기본구조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훨씬 뛰어나다.
 

모헨조다로 도시. [사진=배철현 교수 제공]

 
요가수련의 기원
이곳에서 발견한 한 인장은 요가의 기원에 관해 설명한다. 이 인장은 모헨조다로 발굴 때 표면에서 지하로 3.9m 깊이에서 발굴됐다. 모헨조다로 발굴을 주도한 고고학자 매케이(E.J.H. Mackay)는 이 인장에 420번이란 번호를 매기고, 기원전 2350년에서 2000년 사이로 연대를 추정했다. 겉이 미끌미끌한 암녹색 동석(凍石) 위에 새겨진 이 인장은 크기가 3.56cm x 3.53cm, 두께는 0.76cm로 몸에 지니거나 목에 걸 수 있는 부적과 같은 조그만 유물이다.
 
이 인장 중앙의 단(壇)에는 신비한 인물이 좌정해 있다. 마셜은 이 인장을 산스크리트어로 ‘파슈파티(pashupati)’라고 불렀다. 번역하자면 ‘동물들의 주인’이란 의미다. 마셜은 이 인물을 힌두교 시바(Shiva) 신의 원형으로 해석했다. 시바는 악을 파괴하는 신으로 우주를 창조하고 보호하고 변화시키는 최고의 신이다. 그는 흔히 카일라시(Kailash)산에 거주하는 요가 수련자의 상징이기도 하다. 시바는 ‘모든 동물을 관장하는 주인’이다. 파슈파티와 이 인장은 인도문명의 기원을 푸는 열쇠다. 그 중심에 파슈파티라는 시바 신의 화신인, 모헨조다로를 치리(治理)하는 왕이 있다. ‘파슈파티 인장’은 그가 인도에 만들 문명과 그 문명의 정신적인 근간인 ‘요가’ 사상을 그대로 담았다.
 
파슈파티 인장
이 인장을 만든 예술가는 둘레를 톱으로 자르고 칼이나 정으로 다듬고 난 뒤 연마재로 정교하게 갈았다. 이 부조는 섬세한 정으로 조각됐다. 파슈파티는 가만히 앉아 있다. 그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그는 이 동물들의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눈을 지그시 감았다. 삼매경으로 이미 들어갔는지 눈이 팔자(八字)로 평온하게 처져 있다. 자신이 있어야 할 본연의 장소에 안주하면서, 그의 귀도 아래로 처져 있고 코도 길게 늘어져 있다.
 
파슈파티의 귀에 대한 다른 설명도 있다. 마셜에 의하면 이 모양은 귀가 아니라 왼쪽과 오른쪽도 살피는 얼굴들 모습이다. 파슈파티는 세 얼굴을 지녔다. 그의 얼굴은 정면을 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른쪽과 왼쪽 모두를 경계한다. 그는 눈을 감고 있지만, 마음은 첨예하게 깨어있고, 사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인식하고 있다. 동시대 메소포타미아 ‘앗다 인장(Adda Cylinder)’에서도 신과 인간의 경계에서 신의 명령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존재인 ‘이시무(Isimu)’가 이중 얼굴로 등장한다. 인장의 맨 오른편에 서 있는 신이다.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신의 소리를 잡으려는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귀는 얼굴의 축소판으로 사방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감지하는 유일한 기관이다. 그의 입은 여전히 오랫동안 그랬던 것처럼 굳게 다물고 침묵을 수련한다.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을 되새기기 위해 침묵한다. 그러나 그가 입을 열어 말을 하면, 침묵의 수련이 전달되는, 포용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말을 한다. 그의 얼굴은 평온해 보이지는 않지만 달관한 표정이다.
 

앗다 인장. [사진=배철현 교수 제공]


그는 느슨한 큰 팔찌를 두 개씩 양팔에 감았다. 정중동을 수련하는 자신의 움직임을 감지하기 위해서다. 어깨에서 팔목까지 타투로 장식됐다. 그는 부동자세가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임을 깨달았다. 그는 가슴과 목 부분이 V자로 장식된 옷을 입었다. 극도의 절제 모습을 작은 선 조각으로 표시한 것 같다. 파슈파티의 두 팔은 자신이 좌정한 땅을 향해 무한하게 펼쳐져 있다. 두 팔은 힘없이 처져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허공에 자리를 잡고 가지런히 양 무릎 위에 올려져 있다. 그는 수련을 통해 극도로 단순하고 절제된 인위적인 자세를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승화시켰다. 양손의 엄지는 약간 벌렸다. 그의 배를 가로로 가르는 굵은 선이 있고 정 가운데 선이 가부좌를 수련하고 있는 두 발 사이를 향하고 있다. 굵은 선은 아마도 자신의 몸을 동여맨, 움직이지 않도록 만드는 동아줄이다. 발 모습이 초현실적이다. 양발의 발바닥과 발뒤꿈치가 수직으로 만난다. 발가락은 곧게 뻗은 채, 자신이 좌정한 제단 위에 서 있다. 그는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한 치의 움직임도 없이 발가락으로 서 있다.
 

파슈파티 인장. [사진=배철현 교수 제공]

그의 요가 수련을 방해하는 동물들이 있다. 이 동물들은 인간의 눈과 귀를 자극하고 겁을 주고, 스스로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소리와 이미지의 상징들이다. 오른편에는 벵골 호랑이와 코끼리가 새겨져 있다. 호랑이는 앞발을 치켜들고 무시무시한 발톱으로 위협하며 입을 벌려 큰 소리로 포효한다. 날카로운 이빨로 파슈파티를 금방이라고 물 자세다. 호랑이 얼굴은 거의 인간의 모습이다. 이 순간에도 파슈파티는 움직임이 없다. 그의 팔찌도 우주가 멈춘 듯 가만히 서 있다. 그런 정도의 포효는 파슈파티에게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명상음악이다. 호랑이 위에서는 코끼리가 정반대 방향을 향해 크게 울음소리를 내고 있다. 호랑이와 코끼리 사이에서 파슈파티의 몸종이 이 광경을 관찰한다. 파슈파티 왼편에서 코뿔소와 물소가 달려오고 있다. 아래 있는 물소도 벵골 호랑이처럼 머리를 쳐들고 포효한다. 코뿔소와 물소 위에도 오른편에 등장한 인물과 비슷한 파슈파티의 몸종이 새겨져 있다.
 
단은 직사각형 사방탁자로 양쪽엔 상하가 뾰족하게 처리된 I모양 다리가 있다. 이 인물은 이곳을 특별한 공간인 ‘제단(祭壇)’으로 만들어 수련한다. 자신의 몸을 그 위에 올려놓고 자신을 훈련하고 고양한다. 그는 자신을 ‘희생 제물’로 스스로 바친다. 그 제단 밑 중앙에서는 두 마리 야생 사슴 혹은 야생 염소가 큰 뿔을 휘저으며 뒤를 바라다본다. 파슈파티는 혼돈의 상징인 야생을 정복해 온전히 자신 안에 존재하는 ‘푸루샤’에 몰입한다.
 
퍄슈파티는 머리에 왕관을 쓰고 있다. 왕관은 마치 왼편에 있는 물소의 거대한 뿔과 유사하다. 둥글게 휜 뿔이 퍄슈파티의 머리 위에서 만나 마치 연꽃처럼 모였다. 뿔은 신성의 상징이며 동시에 왕권의 상징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신성의 상징인 ‘메(ME)’처럼, 파슈파티의 왕관도 뿔의 힘을 빌려왔다. 파슈파티는 모헨조다로를 치리하는 통치자로 신성의 상징인 뿔 왕관을 머리에 쓰고, 신이 됐다. 이 인장의 맨 위에 아직도 판독되지 않는 원-인디아어 문자(Proto-Indic Script) 5개가 있다. 요가는 나의 마음을 흔드는 외부의 괴물들뿐만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호시탐탐 일어나는 괴물들의 욕망을 제어하는 수련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