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진 '길 위의 에세이'] 파타고니아 (중) - 페리토 모레노 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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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진 논설고문
입력 2018-03-2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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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빙하 국립공원에 있는 페리토 모레노 빙하.

빙하는 응축된 세월이다.
눈이 쌓이고 녹고 얼기를 수없이 되풀이하며 하얗게 응어리진 차가운 역사다.

수천 년인가, 수만 년인가.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이젠 모두 추억으로 굳은 채 틈새 틈새로 퍼런 서슬을 뿜어낸다.

태고의 숨결인가.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공원 입구 전망대에서 바라본 페리토 모레노 빙하

전망대에서 빙하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바쁘다.

페리토 모레노(Perito Moreno) 빙하는 아르헨티나 쪽 파타고니아의 '빙하 국립공원'안에 있다.

1월 20일 오전 9시쯤 숙소가 있는 엘칼라파테에서 버스를 탔다.
1시간여 호수 낀 산길을 달리다 산모퉁이를 돌자 갑자기 눈부신 순백의 세상이 나타난다.

"우와~."
관광객들이 일제히 감탄사를 연발한다. 가이드가 "wow point"라며 웃는다.

멀리 설산을 배경으로 하얗게 펼쳐진 빙하 벌판.
빙하는 호수로 이어진다.

물속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것 같다.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호수는 옥빛이다.

전망대 쪽은 한여름. 초록의 나뭇잎이 싱그럽다. 민들레인가, 노랑꽃도 한창이다.

파란 하늘, 하얀 빙하와 설산, 옥빛 호수, 그리고 초록과 노랑…
환상적인 색의 배합에 눈이 부시다.

공원 안내책자에 따르면 빙하의 위치는 해발 177m. 전망대보다도 낮다.
그런데 거긴 겨울 왕국이고, 건너편 높은 언덕은 여름 왕국이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다.

저만치 서로 마주 보며 겨울과 여름이 공존하는 희한한 세상이다.

선박 투어를 위해 배에 오르는 관광객들. 빙하를 코앞에서 감상할 수 있다.

배 갑판에서 바라본 빙하. 하얗게 굳은 몸통 사이사이로 파란빛이 배어 나와 신비감을 더한다.

본체에서 떨어져 나온 빙하 조각. 유빙(流氷)이다.

빙하투어는 세 갈래로 진행된다.
호수 위 선박 투어와 호수 건너편 전망대 산책 투어.
그리고 우리 프로그램엔 빠졌지만 인기 있는 빙하 트레킹.

먼저, 배를 타고 빙하 가까이 다가갔다.
수직으로 깎아지른 하얀 얼음 성채가 배를 막아선다.
일직선으로 호수와 경계를 이루며 위엄있게 버티고 있다.

'여기는 인간 세가 아니니라~.'
범접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모양새다.

윗부분은 뾰족뾰족한 봉우리들로 가득하다.
그 틈새로 맑고 투명한 푸른빛이 배어 나와 신비감을 더한다.

얼핏 보기엔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데 높이가 60m란다.
길이 203km, 호수와 면한 마지막 부분의 넓이 5km.
전체 면적 254㎢로 이 나라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보다 조금 더 넓다.

호수 복판엔 본체에서 떨어져 나온 유빙(流氷) 덩어리들이 둥둥 떠다닌다.
 

나무 덱을 깔아만든 산책로와 전망대에서 바라본 빙하의 웅장하고도 신비로운 광경.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산책로 맨 위쪽에서 바라본 빙하. 광활하게 펼쳐진 하얀색 벌판이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산책로는 언덕을 오르내리며 길게 이어져 여러 각도에서 빙하를 감상할 수 있다.
빙하 벌판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조망하는 맛이 특히 일품이다.

그러나 역시 모레노 빙하의 진수는 무너져내리는 붕괴 장면이다.
인터넷에서 그 엄청난 광경을 봤다.

커다란 얼음덩어리들이 쪼개져 호수 속으로 곤두박질친다.
천둥 같은 굉음과 함께 호수가 출렁이고 하얀 물거품이 사방으로 튄다.

부서진 유빙들이 하얗게 떠오른 호수 위로 또다시 얼음 무더기가 쏟아진다.
수천 년의 세월을 마감하는 빙하의 장엄한 최후.

그러나 배 갑판 위에서, 전망대 산책로에서 3시간여 목을 빼고 기다렸으나
끝내 그 장관을 만나지 못했다.
빙하 붕괴 장면을 보려고 며칠씩 묵는 관광객도 있다지만 아쉬운 채로 발길을 돌렸다.

경사가 가파른 이곳 빙하는 하루 평균 2.2m씩 밀려내리기 때문에
장관의 붕괴 장면이 연출되는 것이다. (공원 안내판)

이런 식이면 빙하가 얼마 안 가 다 없어지는 건 아닐까.
가이드가 걱정 말란다.

습한 지역이라 눈 비가 많이 내려 없어지는 만큼 계속 빙하가 만들어진다는 게 가이드의 설명이다.
전반적인 지구 온난화 현상과는 조금 다른 양상이라나.

6년 전 영국 가디언지에 실린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기억난다.
여기서 안데스산맥을 넘어가면 칠레 파타고니아다.

그곳 오긴스국립공원에 위치한 조지 몬트 빙하는 지구상 가장 빨리 줄어드는 빙하 중 하나로 환경과학자들이 걱정스레 지켜보는 곳이다.
하필 그곳의 빙하 5톤을 잘라내 냉동 트럭으로 옮기려던 사람이 잡혔다.

위스키나 럼주의 칵테일용으로 식당에 팔려고 했단다.
칠레판 봉이 김선달~ㅎㅎ.
 
 

 

알 칼라파테 시내 외곽에 있는 니메즈 호수. 각종 새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유료.

니메즈 호수에서 만난 새 한 쌍. 수리 종류로 보인다.

플라멩코 무리. 멀어서 잘 찍히지 않았다.

알 칼라파테 시내 석양. 기묘한 형상의 회오리 구름이 노을에 황금빛으로 물들어 한폭의 그림같다.

빙 하
지구에 있는 물은 97%가 소금물로 먹을 수 있는 담수는 3%에 불과하다.
그것도 77%는 빙하와 같은 얼음 상태이고 23%만 액체다.

빙하가 모두 녹으면 해수면이 약 60m쯤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빙하가 차지하는 면적은 육지의 약 10%. 대부분 남극 대륙과 그린란드에 있다.

눈이 빙하빙으로 발달하기까지는 3,000~5,000년이 걸린다.
빙하 하층부는 압력 때문에 공기의 비율이 감소하고 밀도는 증가하여 단단해진다.

공기 함유율이 20% 이하인 오래된 얼음은 푸른빛을 띤다.
빙하는 낮은 곳으로 또는 바깥쪽으로 이동한다.

모레노 빙하처럼 흐름 속도가 빠른 경우 1년에 4km, 느린 경우 2m 정도 이동한다.
속도가 느려도 빙하에 의한 침식 및 운반작용은 매우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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