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한담(冬夏閑談)] 말의 속도, 소의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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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희 전통문화연구회 번역실장
입력 2018-03-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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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현희 전통문화연구회 번역실장

소 타는 게 좋은 줄 모르다가(不識騎牛好·불식기우호)
말이 없는 이제야 알겠어라(今因無馬知·금인무마지)
석양 무렵 꽃풀이 핀 이 길을(夕陽芳草路·석양방초로)
봄과 함께 느릿느릿 가노라(春日共遲遲·춘일공지지)
- 양팽손(梁彭孫·1488~1545), <우연히 읊다(偶吟·우음)>

꽃을 시샘하는 추위가 아직 더 있겠지만, 피부에 와닿는 바람이 이제는 봄이라 속삭인다. 그 속삭임에 한두 번 속다 보면, 연초록의 새싹도 파릇파릇 돋아날 터이고, 예쁜 꽃도 활짝 피어나리라. 바람의 속삭임을 들으며 해마다 봄이 오면 꽃구경 한번 제대로 해보자고 마음을 먹는다.

하지만 세상이 어찌나 빨리 돌아가고 정신없이 바쁜지, 느긋하게 꽃을 구경할 마음의 여유도 없고 시간도 좀처럼 나지 않는다. 말은 더 빠른 자동차로 대체됐고, 기계문명은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고 있지만, 우리는 더 빠르고 더 많은 생산을 요구받으며 늘 바쁘고 시간에 쫓긴다.

문명의 이기(利器)들을 버리고, 루소의 말처럼 ‘자연으로 돌아가면’ 좀 더 여유롭고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을까? 웬만한 결단이 아니고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시대를 살면서 이 시대의 흐름에 뒤처져 낙오될까 두려운 탓이다.

현실에 구속되어 주마간산(走馬看山)의 상춘(賞春)조차 힘들지만, 그래도 봄이 오고 있으니 또다시 상춘을 계획해본다. 잠시나마 ‘말’의 속도를 버리고, 인간의 속도에 가까운 ‘소’의 속도로 느긋하게 봄을 즐겨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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