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171] 간단사는 어떻게 세워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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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 칼럼니스트
입력 2018-02-12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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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판자촌에 둘러싸인 간단사

[사진 = 간단사(울란바토르)]

몽골 최대 티베트 불교 사찰인 간단사(Gandan Monastery)는 수도 울란바토르 중심가에 있다. 간단테그치늘렌 사원(Gandantegchinlen Monastry)이 이 티베트 불교 사원의 정식명칭이다. ‘완전한 기쁨을 주는 위대한 사원’이 이름이 가지고 있는 의미다. 몽골 여행 안내서에 가 볼만한 관광지로 항상 등장하는 이 사찰의 주변 모습은 아주 특이하다.
 

[사진 = 간단사 주변 게르촌]

사찰로 들어서는 길은 시내 중심 도로와 통해 있어 길 주변에는 러시아식 건물과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하지만 정작 사찰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거대한 판자촌이어서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판잣집과 게르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 주변 동네는 울란바토르의 저소득층 서민들이 사는 우리로 말하면 달동네 같은 곳이다.

▶ 2016년 달라이 라마 방문

[사진 = 간단사 방문객들]

지난 2016년 11월, 간단사는 영예스러운 큰 손님을 맞았다. 10년 만에 몽골을 찾은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간단사를 찾은 것이다. 몽골의 티베트 불교 신자들은 달라이 라마를 직접 만나는 기쁨을 누렸지만 그 때문에 앞서 언급한대로 몽골은 중국에게 호된 대가를 치렀다. 2006년에도 달라이 라마는 간단사의 초청으로 몽골을 방문했었다.
 

[사진 = 간단사 참배객]

달라이 라마는 특별한 방문객이지만 몽골을 찾는 대부분의 외국인들에게 간단사는 한번쯤은 방문하는 코스가 되고 있다.

▶ 간단사의 티베트 불교 의식

[사진 = 간단사 불당 내부]

그동안 수차례 몽골을 방문하는 동안 그 때마다 간단사를 들러서 둘러봤다. 15년 전에 들렀을 때나 최근 들렀을 때나 별로 변한 모습은 없었다. 간단사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절과 스님들의 기숙사 그리고 승가대학 등이 들어서 있다. 일요일에 방문했을 때, 대웅전에서는 예불이 진행되고 있었고 사각 통로로 신도들이 지나면서 예를 올리고 있었다.
 

[사진 = 간단사 큰 스님]

조금 높은 자리에 앉은 지도자 스님이 경전을 읽으면 다른 스님들이 이를 따라서 읽고 몇 명의 젊은 스님들은 징을 비롯한 악기를 두드리며 분위기를 맞추고 있었다. 특히 법당을 낮게 만들어 신자들이 평면에서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 부처님을 높은 곳에 모신 우리나라의 사찰과는 달랐다. 부처의 옆에는 달라이 라마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사찰의 모습이나 의식 모두가 우리의 사찰에서 보는 것과 차이가 있어 티베트 불교가 지닌 특징을 느낄 수 있었다.

▶ "한번 돌리면 경전 한번 암송"

[사진 = 마니차 돌리는 신자들]

법당 밖에는 좌우로 수십 개의 마니차(prayer wheel)가 설치돼 있었다. 많은 신도들이 줄지어 그 옆을 지나면서 마니차를 돌리고 있었다. 마니차란 속이 빈 원통에 기도문이나 불교 경전을 붙여 놓은 것으로 원통을 한번 돌릴 때마다 경전 내용을 한번 암송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 마니차]

실제로 원통에는 경전의 여러 구절에서 따온 글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이는 경전을 읽을 줄을 모르는 일반인들을 배려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즉 체계적으로 종교지식을 습득하기 어려운 유목민들에게 종교에 대한 헌신을 쉽게 실천할 수 있도록 라마승이 고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티베트에도 이 마니차라는 것이 있어 경전을 붙인 작은 회전 통을 손에 들고 다니면서 돌리는 경우도 있다.

▶ 중앙아시아서 가장 큰 불상
사찰 본당 지붕과 부속 건물 지붕위로는 비둘기들이 떼 지어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 부속 건물 가운데 한 곳은 달라이 라마 13세가 살았던 곳이었다. 그 옆 건물에는 많은 불교 서적들이 보관돼 있다고 했다. 본당 왼쪽으로 나서면 넓은 공간에 뒤쪽으로 긴 통로가 나 있고 통로가 끝나는 곳에 높은 건물이 서 있었다. 미그지드 장라이삭 사원이 이 건물의 이름이다.
 

[사진 = 관세음 보살상]

그 건물 안에는 높이가 27m나 되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는 불상이 서 있었다. 이 불상의 이름은 미그지드 장라이삭 관세음보살상이다. 불상이 만들어진 것은 1997년으로 인도와 티베트에서도 불상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비판받는 종교의 상품화

[사진 = 시줏돈 내는 신자들]

오른쪽에도 많은 여성 신도들이 전봇대 모양의 굵은 막대기를 돌고 있었다. 일종의 오보와 마찬가지로 막대 곳곳에는 신도들이 꼽아 놓은 시줏돈이 달려 있었다. 그 옆에서는 사찰의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막대에 꼽힌 돈을 뽑아 열심히 주머니에 담고 있었다. 간단사가 몽골 최대의 사찰이고 찾는 사람이 많기는 하지만 종교의 상품화를 부추기는 곳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불경 읽기 표’라는 것으로 각각의 불경에 가격을 정해놓고 그 돈을 지불하면 라마승이 정해진 날짜에 불경을 읽어준다.

▶ 활불(活佛)에 의해 세워진 사찰
울란바토르 불교 신도들이 열심히 찾는 간단사는 몽골의 활불에 의해 세워진 사찰이다. 1635년 티베트 불교의 고승 타라나타가 몽골의 왕가에 전생 했다. 그가 바로 활불로 알려진 젭춘담바(Jebtsundamba)1세다. 젭춘담바는 이후 8대까지 이어지면서 몽골 역사에서 불교 지도자이자 몽골 통치자로서의 지위를 갖게 된다. 몽골이 사회주의 체제로 들어서기 이전 마지막 몽골 통치자인 복드칸이 바로 제 8대 젭춘답바다.

[사진 = 라싸의 간단사]

젭춘담바 1세는 14살 때 티베트로 유학한 뒤 몽골로 돌아와 티베트에서 함께 데리고 온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라싸의 간단사를 모델로 몽골에 꼭 같은 이름의 사찰을 지었다. 그 것이 지금의 울란바토르 간단사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현재의 사찰 모습을 갖춘 것은 19세기(1838-1843)였다. 사찰이 지어질 당시 이 지역은 후레라고 불렀던 평범한 초원지대였다.

울란바토르가 정주 도시로 본격적인 모양을 갖추게 되는 것은 20세기 들어서지만 그 때 간단사가 지어진 것이 오늘날 울란바토르가 생겨나게 된 시발점이 아닌가 여겨진다.

▶ 종교 말살정책 속에 명맥 유지

[사진 = 파괴된 사원 터]

3백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이 사찰은 사회주의 체제 시절 혹독한 불교탄압 속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해왔다. 공산당의 불교 말살정책으로 외형상으로는 단 한 명의 승려도 없었던 1944년, 간단사에서 불교의식이 행해지게 됐다. 몽골을 방문하게 돼 있던 미국의 부통령이 몽골 불교사원을 보고 싶다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됐다.

황급히 폐쇄했던 사찰을 다시 손질하고 승려를 모집하는 소란 속에 7명이 용감하게 승려가 되겠다고 지원했다. 미국 부통령이 다녀간 후 간단사는 외국 귀빈들의 관광을 위한 장소로 계속 남아 있게 됐고 7명의 승려가 어려움 속에서 간단사를 지켜왔다. 물론 사찰 안에는 4명의 공산당원이 철저히 승려들을 감시하며 모든 활동을 통제했다.

그 와중에 나라 밖에서 몽골이 종교를 탄압하고 있다는 비난의 소리가 높아지게 되면서 간단사는 다시 발전의 기회를 맞았다. 몽골에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공산당이 1969년 아시아 불교대회를 간단사에 유치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이듬해인 1970년 간단승가대학이 정식으로 설립됐다. 현재 15동이나 되는 건물 가운데 직원 숙소와 대학건물 등 상당수가 이때 지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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