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123] 바그다드는 어떻게 무너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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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 칼럼니스트
입력 2017-12-25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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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몽골 평화의 시대(팍스 몽골리카)도래

[사진 = 팍스 몽골리카]

전쟁(戰爭)이 만들어 낸 평화(平和)!
그토록 많은 파괴와 학살을 치른 몽골의 정복전쟁은 평화라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다. 팍스 몽골리카(Pax-Mongolica)라 부르는 평화의 시대가 찾아 온 것이다. 팍스 몽골리카는 몽골을 타타르라 부르기도 한다는 점에서 팍스 타타리아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1세기에서 2세기에 이르는 로마의 평화 기간에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는 말을 붙인 것처럼 서구학자들이 몽골에 의한 평화라는 의미로 붙인 말이다. 세계 역사상 가장 거대한 단일 지배체제가 등장했으니 그렇게 부를 만 했다. 당시 세계의 절반 이상이 몽골제국이라는 한 지배체제 아래 놓이면서 그 동안 막혔던 길이 뚫리고 세계의 간격이 좁혀졌다.
 

[사진 = 실크로드 취재차량]

곳곳이 단절됐던 동서간의 통로도 여러 갈래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열린 동서간의 통로는 상인들에게, 선교사들에게, 외교관들에게 일찍이 알지 못했던 안전을 제공해 줬다. 중국의 동쪽 끝에서 멀리 카스피해 너머 러시아까지, 중동의 거의 대부분 지역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뒤쪽에 있는 유럽의 각 지역까지, 자유로운 통행이 가능해진 것이다. 팍스 몽골리카의 시대가 찾아왔기 때문에 전 세계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고 그 것을 바탕으로 대항해의 시대, 대여행의 시대가 열릴 수 있었다.

▶ 중동지역에서 멈춘 서진(西進)

[사진 = 실크로드 교역 추정도]

몽골제국이라는 이름 아래 장악된 지역은 여러 한국(汗國:칸국)으로 나뉘어져 통치되고 있었다. 각 한국들 사이에서 간혹 발생하는 불화와 갈등이 내부 전쟁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지만 적어도 제국을 지나는 통행인의 안전은 최대한 보장됐다. 특히 쿠빌라이 치세에 이르러 바다로 길을 내면서 이제는 팍스 몽골리카라는 이름 아래 육지와 해상을 아우르는 새로운 교역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가 오기까지 수많은 전쟁이 있었고 수많은 지역 정세의 변화가 있었다. 중국 대륙을 장악하는 과정과 러시아 정벌의 과정 그리고 바다 정복의 과정과 함께 중동지역 정벌 과정도 함께 버무려 넣어야 비로소 몽골제국 전체의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이 부분을 꿰어 맞춰야 비로소 팍스 몽골리카의 영향이 미치는 몽골제국의 전체 모양을 잡아볼 수 있고 그래야 그 땅이 가져온 변화를 짚어볼 수가 있다.

사실상 몽골의 서진(西進)이 마지막으로 멈춘 것이 바로 중동 지역이었다. 그런 점에서 시대를 다소 거슬러 올라가기는 하지만 훌레구 울루스(Hulagu Ulus), 즉 일 한국(Il Khanate)이라 불리는 중동의 몽골제국이 이 지역을 어떻게 장악하고 다스렸는지 살펴봐야 한다.

▶ 풍전등화(風前燈火) 바그다드

[사진 = 훌레구 칸 추정도(집사)]

1258년, 지금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는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태로운 지경에 놓여 있었다. 중동지역 평정에 나섰던 쿠빌라이의 동생 훌레구가 이끄는 몽골군이 바그다드를 포위하고 이 도시를 끝장내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그다드, 즉 ‘하늘이 주었다’는 이름을 지닌 이 도시는 당시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가 자리 잡고 있던 수도였다. 칼리프란 아바스 왕조의 최고 통치자를 말한다.

하지만 5백 년 동안 37명의 칼리프로 이어져 온 이 왕조는 자칫 신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운명에 처해 있었다.

▶ "무기를 잡지 않도록 조심해라"

[사진 = 아바스 왕조의 연회]

공격에 나선 훌레구는 신중한 태도를 취하면서 항복을 권했다. 오히려 불리한 여건에 있던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 무스타심은 허세를 부렸다. 주고받은 편지가 그 것을 보여주고 있다. 훌레구가 무스타심에게 보낸 편지다.

"그대는 칭기스칸 이래 몽골군이 세상에 어떤 운명을 가져다 줬는지 알 것이다. 영원한 하늘의 은총에 따라 호레즘의 샤를 비롯한 여러 왕조의 왕들에게 어떤 굴욕이 덮쳤던가? 그러한 힘과 권력을 가진 우리가 이 도시에 들어가는 것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대항하기 위해 무기를 잡지 않도록 조심하라!"

▶ 현실과 괴리된 허세 부린 칼리프
무스타심은 전임자들이 몇 차례의 외침(外侵)을 견뎌냈듯이 자신도 충분히 대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훌레구의 경고를 무시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허세를 부렸다.

"이제 겨우 자신의 경력을 시작한, 그리고 열흘 성공을 축하해 축배를 든, 모든 세상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젊은이여! 너는 동쪽에서 마그레브까지 알라의 모든 숭배자들은 국왕이든 거지든 내 조정의 노예이며 내가 그들에게 소집을 명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가?"

마그레브란 7세기 무슬림이 정복했던 지중해에 연해있는 북아프리카지역, 즉 모로코, 알제리, 리비아 튀니지 등을 말한다. 당시 힘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형식상 칼리프가 모든 무슬림의 우두머리였으니 무슬림 땅의 군대가 모두 자신의 군대라는 무스타심의 주장은 옳았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압바스 왕조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고 어느 누구도 칼리프를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바그다드의 동쪽 지역은 이미 대부분 몽골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고 서쪽의 시리아와 이집트도 꼼짝하지 않으려 했다.

▶ 순식간에 함락된 바그다드

[사진 = 계획도시 바그다드]

훌레구의 바그다드 공략은 1258년 1월에 시작된다. 훌레구는 가급적 전쟁을 하지 않고 바그다드를 손에 넣으려했지만 칼리프 무스타심은 이를 즉각 거부했다. 몽골군이 사방에서 포위망을 좁혀 오는 동안 칼리프의 군대들이 포위망을 깨뜨리려고 나섰다가 산산조각 났다.

몽골군이 투석기를 통해 성안으로 돌멩이를 퍼부으면서 성안은 아수라장이 됐다. 뒤늦게 칼리프는 네스토리우스교 대주교와 시아파 교도를 사신으로 보내 몽골인들을 달래려 했지만 때가 너무 늦었다. 바그다드는 동쪽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해 순식간에 몽골군에게 장악됐다. 바그다드는 이렇다 할 전투도 한번 치르지 못한 채 함락된 것이다.

▶ 대량학살과 파괴 뒤따라

[사진 = 몽골군 바그다드 공략]

몽골 점령군은 달아나기에 급급한 수비대 병사들은 그냥 두지 않았다. 거의 모든 병사들이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1258년 2월, 칼리프 무스타심은 직접 훌레구를 찾아와 항복했다. 그러나 그도 목숨을 구할 수는 없었다. 몽골군은 투항한 그를 탑 속에 가두어 놓고 굶겨 죽였다는 설도 있고 자루에 담아 꿰맨 뒤 말발굽에 밟혀 죽도록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두 번째의 방법은 몽골이 피를 흘리지 않고 죽도록 특별 배려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뒤이어 바그다드는 대량 학살에 맡겨졌다. 수많은 주민들이 학살되고 도시 곳곳이 파괴되고 불에 탔다. 몽골군은 특히 이슬람사원들을 불태우고 아바스 왕조의 무덤까지 파괴했다. 이 때 학살된 사람이 80만이나 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당시 바그다드의 인구 자체가 그만큼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한 과장이다. 10만이라는 주장과 20만이라는 주장도 있는 것을 보면 아무튼 엄청난 사람이 살해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 폐허로 변한 에덴동산의 땅

[사진 = 몽골군 공성전]

그 학살의 와중에서 네스토리우스교도를 비롯한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목숨과 재산을 모두 건졌다. 이는 네스토리우스 교도였던 훌레구의 아내 도쿠즈 카툰의 배려 덕분이었다. 그래서 동방의 기독교인들은 바그다드의 함락을 하늘의 응징이라 주장했다. 이로써 이슬람 세계의 중심으로 5백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압바스 왕조가 사라진 것은 물론 정통 칼리프시대도 끝장났다.

구약성서에 기록된 에덴동산이 있고 노아의 홍수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메소포타미아의 문명 발생지가 폐허의 땅으로 변한 것이다. 노아의 홍수가 덮쳤을 때 노아의 세 아들은 방주를 타고 터키북부 지역까지 흘러가 세계 여러 인종의 뿌리가 됐다고 하지만 몽골이 몰고 온 재앙에서는 새로운 역사의 계기를 만들 아무 것도 남겨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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