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109] 반란인가? 구국항전인가?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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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 칼럼니스트
입력 2017-12-1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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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진도로 근거지를 옮긴 삼별초군은 진도 용장산(龍藏山)에 성을 쌓고 궁궐을 지었다. 그런 다음 해남, 강진, 완도 등 전라도 지역과 남해, 진주 등 경상도 해안 지역을 장악해 가며 세력을 넓혀 나갔다. 이들은 일본에 특사까지 보내 자신들이 진정한 고려임을 천명하기도 했다.

▶ 진도에서 접은 抗蒙의 꿈
삼별초의 위세가 강해지자 조정은 1270년 9월, 김방경(金方慶)을 추도사로 앞세워 토벌작전에 나섰다. 김방경과 몽골장수 아카이가 군사 천명을 이끌고 진도 공격에 나섰으나 많은 손실만 입은 채 실패했다. 삼별초군이 첫 번째 대결에서 고려․몽골 연합군을 당당하게 물리친 것이다.
 

[사진 = 몽골군의 수전]

이듬해 5월 몽골장수 힌두를 총사령관으로 하고 홍다구가 앞장 선 고려 몽골 연합군 6천명이 전함 4백여 척을 이끌고 다시 공격에 나섰다. 첫 번째 전투에서의 승리로 방심하고 있던 삼별초군은 여몽연합군에게 쉽게 제압 됐다. 고려군이 합세하기는 했지만 몽골군이 한반도에서 바다를 건너 거둔 최초 승리였다.

사로잡힌 승화후 온은 홍다구에게 붙잡혀 참형에 처해졌다. 온의 사촌동생인 영녕군(靈寧君) 준(王綧)이 형을 살려줄 것을 애원했지만 홍다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온과 그의 아들 환을 죽이고 말았다. 난을 주도했던 배중손 역시 도주를 하던 중 남도석성(南桃石城)에서 부하들과 함께 최후를 마쳤다. 반면 금갑(金甲)방면으로 도주한 김통정 일행은 배를 타고 제주로 건너갔다.

▶ 잡초 속에 버려진 용장산성

[사진 = 진도 용장산성]

지난 1984년, 해남군 학동리(鶴洞里와) 진도군 녹진리(碌津里)사이를 잇는 길이 484m의 진도대교(珍島大橋)가 울돌목 위로 연결되면서 진도도 강화처럼 육지와 연결된 섬이 됐다. 진도대교를 건너 송산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면 삼별초가 진도에 첫발을 디딘 벽파진(璧波津)이 자리 잡고 있다. 푸른 바다와 닿아 있는 벽파진에서 산등성이 하나를 넘어서면 과거 삼별초의 항몽 근거지였던 용장산성 터를 만나게 된다.
 

[사진 = 진도대교]

용장산성은 마치 잡초 속에 버려진 채 부서진 돌멩이와 기와 조각이 나뒹굴었던 몽골의 여름 수도 상도와 비슷한 느낌을 안겨준다. 무너져 버린 성벽의 흔적과 계단식으로 남아 있는 궁터가 짧은 기간 이 곳에 자리 잡고 몽골군과 몽골에 굴복한 고려왕실에 대항하던 삼별초의 본거지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용장산성의 앞으로는 들판이 펼쳐져 있고 산성의 위로 올라가면 드넓은 바다가 버티고 있었다.

이곳에서 달아난 승화후 온은 진도읍과 의신면(義新面)의 경계지점에 있는 왕무덤재 근처에서 붙잡혀 처형됐다. 그의 시신은 진도사람들이 수습해 묻어줬다고 한다. 무덤은 고개 근처에 있고 고개의 이름도 그 때 이후 왕무덤재가 됐다. 배중손이 숨진 남도석성은 남쪽 바닷가에 있다. 이 성은 조선조 대 왜적을 막기 위해 크게 중수했기 때문에 비교적 모습이 잘 보존돼 있었다.
 

[사진 = 삼별초 제주 이동]

떼무덤이 생길 정도로 숱한 목숨이 사라졌지만 삼별초의 항전은 그래도 끝나지 않았다. 배를 타고 제주로 빠져나간 김통정 일행이 제주도에 터전을 잡고 제2의 항몽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제주가 받은 자연의 선물 ‘오름’
제주도에는 한라산 주변을 끼고 크고 작은 산이나 봉우리들이 여기저기에 분포돼 있다. 그 것들을 제주도의 아름다운 말로 ‘오름’이라고 부른다. ‘오름’이란 화산 폭발 때 용암분출물이 퇴적해서 생긴 봉우리들을 일컫는 거의 제주에서만 사용되는 말이다. 학술적으로 말한다면 기생화산구(寄生火山丘)가 될 것이다. 한라산을 둘러싸고 있는 360여 개의 오름 들은 한라산과 멋진 조화를 이루어 멀리서보면 한라산을 보호하고 있는 수비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진 = 붉은오름]

바다와 산 그리고 오름이 엮어내는 아름다운 풍광은 제주만이 가질 수 있는 자연의 선물일 것이다. 그 수많은 오름들 가운데 적지 않은 오름 들은 나름대로의 전설과 신화를 지니고 있어 되새겨 보면 제주의 역사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음을 느끼게 한다.
 

[사진 = 붉은오름 휴양림 안내판]

한번쯤은 제주도 가봤을 많은 사람들에게 낯설지 않은 ‘붉은오름’도 그러한 전설을 지닌 오름 가운데 하나다. 붉은오름은 제주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사려니 숲길과 연결돼 있어서 특히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곳이다.

▶ 삼별초 항전의 종착점 '붉은오름'

[사진 = 붉은오름 자연 휴양림]

이 붉은오름은 그 곳의 돌과 흙이 유난히 붉은 색을 띠고 있어서 그렇게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은 삼별초와 연관 짓고 있다. 삼별초를 이끌고 제주에서 마지막까지 몽골에 대항했던 김통정이 부하 70여명과 최후의 결전을 치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곳, 그래서 이 주변의 흙이 붉은 피로 물들여졌다고 해서 붉은오름으로 부른다는 전설이 바로 그 것이다.

몽골과 제주의 만남은 삼별초의 저항이 그 출발점이 되지만 이후 몽골과 제주의 인연은 한반도의 어느 지역보다 끈질기게 이어져 지금까지도 많은 흔적과 사연을 남겨 놓고 있다.

▶ 천혜의 요소에 방어진지 구축
진도에서 삼별초의 주력군이 무너진 후 김통정이 이끄는 삼별초의 일부 세력들은 당시까지 탐라(耽羅)라 불리던 제주(濟州)로 들어갔다. 탐라는 20여 년 후인 충렬왕 때 이름이 제주로 바뀐다. 당시 이들은 무작정 제주로 자리를 옮긴 것은 아니었다. 진도에 본거지를 두고 있을 당시 삼별초군의 이문경(李文京)등이 이미 제주로 들어가 관군을 제압한 뒤 수륙교통의 요지인 조천포(朝天浦)에 진을 치고 있었다.

김통정은 이들 세력과 합류해 제주를 최후의 거점으로 삼을 생각으로 이 섬으로 흘러 들어오게 된다. 김통정은 한라산 북쪽에 있는 귀일촌(貴日村)를 본거지로 정하고 내외성을 쌓아 여몽연합군의 공격에 대비했다. 현재 북제주군 애월면(涯月面) 고성리(古城里)와 상귀리(上貴里)에 걸쳐 있는 이 지점은 언덕과 하천으로 둘러싸여 있고 바다가 눈앞에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적의 배가 접근하는 것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천혜의 방어 요새였다.

▶ 전쟁의 회오리 속에 휩싸인 제주주민

[사진 = 항파두성 터]

전란에 휩싸였던 육지와 달리 평화스러웠던 섬 제주는 삼별초군이 밀려오면서 전쟁의 회오리바람 속에 밀려들어가게 된다. 우선 방어진지의 구축을 위해 김통정은 이곳에다 내외성 이중으로 성을 쌓았다. 항파두성(缸坡頭城)을 쌓는 작업은 제주에서는 처음 있는 대역사(大役事)였다.

주민들은 각 호당 대비 한 자루와 나뭇재 한말씩을 받쳐야했고 부역에도 나서야 했다. 외성으로 15 리에 달하는 삼각모양의 토성을 쌓고 성 위에는 재를 뿌려 놓았다가 적이 나타나면 연막전술을 펴기 위해 빗자루를 매단 말을 달리게 했다고 하니 성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가 있다. 면적은 27만 평에 달하는 토성의 동서남북에는 4개의 대문이 세워졌다. 이 토성 안에서 기와파편과 고려청자의 조각 그리고 불상 등이 발견된 것을 보면 궁궐과 병영 그리고 사찰 등이 들어섰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이들이 구축한 방어 진지도 수와 장비에서 압도적인 여몽연합군이 밀어닥치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 3년 만에 종결된 삼별초 항전

[사진 = 여몽 연합군과 삼별초 전투도]

1273년 4월, 김방경과 힌두가 지휘하는 여몽연합군 만 3천여 명이 160대의 전함에 나눠 타고 거센 풍랑을 넘어 제주 공격에 나섰다. 초기전투에서 어느 정도 견뎌내던 삼별초군은 수적으로 우세한 연합군의 공세에 밀려 후퇴하다가 대부분 살해되거나 항복했다.
 

[사진 = 항몽 순의비]

붉은오름까지 피신한 김통정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제주 역사상 최대의 전쟁은 대부분의 삼별초군이 처참하게 참살 당한 가운데 막을 내렸다. 김통정의 시신은 전투가 끝난 두 달 후에 발견됐다. 이렇게 해서 삼별초의 난은 반기를 든 지 3년 만에 종결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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