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민 칼럼] 지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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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민 초빙 논설위원
입력 2017-11-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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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형민 칼럼니스트]


1년 만에 다시 찾아온 지진. 리히터 규모 5.8의 경주 지진에 이은 규모 5.4의 포항 지진은 진앙이 지표에 가까워 체감 면에서 더 큰 공포를 불러왔다. TV에서는 종일 지진의 충격으로 흔들리는 화면과 화들짝 놀라서 대피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틀어대고 있고, 전문가들은 한반도에서 규모 6.0 이상의 지진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으며 규모 7 이상의 지진 발생도 가능하다고 다투어 경고하면서 공포를 키우고 있다.

공포는 쉽게 전염된다. 공포는 공포를 낳고 그 와중에 근거를 따지는 이성은 마비되고 위기감을 부추기는 주장만 남아 더 큰 위기를 자초하는 충동에 휩싸이게 된다. 집단 히스테리와도 같았던 2008년 광우병 사태는 공포의 확대재생산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준 바 있다. 지금은 자극적인 미디어의 보도에 휘둘리기보다는 지진이 일상화돼 있는 일본의 경우를 보면서 침착하게 지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가다듬어 보면 좋을 듯하다.

도대체 규모 9.0의 지진은 어떤 위력을 갖고 있고 얼마나 끔찍한 참화를 빚을까?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도호쿠 지방을 강타한 이른바 동일본 대지진의 경우를 되짚어 보자. 리히터 규모 1이 높아지면 위력은 30배가 된다는 산술적 계산으로 보면, 관측 사상 한반도 최대지진으로 기록된 규모 5.8 경주지진의 강도에 비해 최소 2만7000배의 강도로 표현할 수 있다. 사망자 1만5800명, 실종 2500명을 포함해 이재민 15만명을 낸 동일본 대지진. 아직 이 상처가 치유되지도 않고 있지만 문제는 앞으로도 지진과 화산분화가 계속될 것이라는 데 있다. 약 150년 주기로 일어난다는 도카이 대지진 또는 난카이 해구 대지진과 관련된 전망이 그중 하나이다. 궁금해진다. 일본인들은 과연 그같이 끔찍한 환경에서 어떻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일본인이라는 단어에는 자연재해와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습니다." 동일본 대지진 직후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했다는 말이다. 항거할 수 없는 자연재해를 체념하며 산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포기하지 않고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한다는 긍정적·적극적인 일본인들의 마음가짐을 표현한 말이 아닌가 싶다. 공포 속에서도 각기 최선을 다하겠다는 이런 마음가짐은 동일본 재해 직후 일본 정부가 설립한 '부흥청'이라는 기관명에서도 찾을 수 있다. "불난 집은 불같이 일어난다"거나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 같은 속설에 담겨 있는 낙천과 긍정의 철학까지 내포한 기관명, 단순히 재해 복구를 넘어 '부흥'의 계기로 삼겠다는 결기가 담긴 작명 센스가 부럽기까지 하다.

자연재해를 대하는 일본인의 태도를, 민폐를 삼가고 개인보다는 자신이 속한 사회·국가를 앞세우는 국민성에 기인한 것으로 보는 분석이 있다. 그것뿐일까? 자연재해 극복을 위해 시민과 정부, 언론이 제각각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 최선인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를 수용한 무언의 사회적 합의, 공감대가 존재하고 그것이 적절히 기능하고 있는 덕분으로 본다.

재난 재해를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가 정부의 복구 노력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시 동일본 대지진 때로 돌아가 보자. 긴급 재해방송 체제로 돌입한 일본 TV들의 보도 화면은 엄청난 지진이 쓸고 지나간 폐허 속에서도 묵묵히 편의점이나 주유소 앞에 줄지어 서 있는 시민들,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울음을 참아내며 복구에 나서는 이재민들의 모습을 내보냈다. 급박한 현장 상황을 전달하면서도 앵커나 기자의 어조는 침착했고, 피해자의 겁에 질린 모습을 강조하는 등의 자극적인 보도는 지양하면서 팩트 중심의 보도, 피해를 최소화할 생활정보를 담은 보도를 이어갔다. 절망적인 상황보다는 안부 방송을 내보내고, 사회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헌신적이고 다양한 극복 노력에 초점을 맞췄다. 한마디로 일본의 미디어가 일본 국민, 시민들의 놀라운 침착함과 의연함을 이끌어 냈다고도 할 수 있다.

포항 지진의 피해 규모는 상대적으로 약했지만 크고 작은 피해 당사자들의 심정은 비통할 것이고 이분들의 피해가 가능한 한 빨리 복구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우리 국민이라면 예외 없을 것이다. 하지만 피해를 보도하는 우리 언론의 자세는 이대로 괜찮은 걸까? 각 방송사가 경쟁적으로 내보내는 휴대폰의 동영상들, 위급했던 현장 상황을 전하는 시민들의 인터뷰, 한반도에 최악의 지진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전문가들의 앞다투는 경고들. 경쟁적인 보도 환경은 각 방송사들이 보다 자극적인 것, 보다 선정적인 것을 찾아 방영하는 악순환을 부르고 있다. 결과적으로 시민들에게 실제 이상의 공포를 안겨주는 이런 보도 태도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고 어떻게든 이른 시기에 개선돼야 할 것이다.

두려움이 두려움을 낳고 커질 대로 커진 두려움은 우리를 무력하게 한다. 이성적 판단보다 괴담에 귀 기울이게 하고 그 두려움을 이용하고자 하는 일방 세력의 불순한 의도에 취약하게 한다. 재해의 예방과 수습을 책임져야 할 정부나 시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기여해야 할 언론이 공포의 확산에 의도적 혹은 결과적으로 기여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재해의 직접 당사자인 피해 시민들은 물론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을 여타 시민들이 이 시점에서 결코 잊지 않아야 할 한 마디 말은 "우리가 진실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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