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한담冬夏閑談, 박연호칼럼] 프라이버시와 명절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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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전통문화연구회 회원
입력 2017-10-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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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하한담 冬夏閑談


프라이버시와 명절갈등

박연호(전통문화연구회 회원)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피란 시절 ‘굳세어라 금순아’의 ‘일가친척’이나 ‘고향 꿈’은 그 말 자체만으로도 가슴을 저몄다. 월남한 실향민은 물론 삶의 뿌리가 송두리째 뽑혔던 남한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친지와 고향이 그런 의미였기에 앞세대는 명절 귀성에 필사적이었다.

지금 세대는 다르다. 교통, 통신 발달로 실시간에 소식과 정을 나눌 수 있어 고향과 친지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거나 쌓일 여지가 별로 없다. 반면 명절 하면 교통체증과 가족·친척 간 갈등, 스트레스가 먼저 떠오르고, 돌아와서는 심한 후유증에 시달린다.

고향이면 누구든 반갑고, 고향열차 기적소리만 들어도 애틋하던 앞세대와는 판이하다. 뒷세대에게 명절은 의무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지뢰밭이나 살얼음판 같다. 고향 친척을 대하는 정서가 반세기만에 이렇게 달라졌다.

그 내부를 보면 다양한 원인 가운데 프라이버시 문제가 가장 깊이, 거세게 흐르고 있다. 예전에는 권위의식과 가족주의, 인정을 앞세운 간섭이나 사생활 침해를 뒷세대가 참고 넘어갔다. 아니 침묵을 강요당한 것이다. “아랫사람은 입이 있어도 말해서는 안 된다”는 ‘재하자유구무언(在下者有口無言)’ 때였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참지 않는다. 당당하게 의사를 표현하고, 사생활 보호를 우선시한다. 그럼에도 앞세대는 인정과 관심이랍시고 취업, 결혼, 출산, 진학, 진로, 외모 등에 대해 묻고 간섭한다. 거의 몰상식 수준이다. 반발하면 지금까지 그래왔는데 왜 그러느냐고 반문한다.

답은 ‘그래서는 안 되는 때가 됐기 때문’이다. 과거의 전통, 관습 일부가 이젠 폐습이 된 것이다. 그렇게 정색할 것까지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헌법 17조와 세계인권선언 12조도 사생활 보호를 명시하고 있다. 세상이 변한 것이다. 개인의 가치와 취미에 함부로 간섭하는 데 대한 젊은 세대의 불평불만이 지금 온라인상에서 걷잡을 수 없이 뜨겁다.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가 머지않은 느낌이다.

앞세대는 이를 예사로 보지 말고 생각과 관념의 동맥경화 해소를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명절 갈등에 좋은 완화제가 될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열자(列子)는 “천하에 항상 옳거나 항상 그른 것은 없다(天下理無常是 事無常非·천하이무상시 사무상비)”고 했다. 한비자(韓非子)도 ”세상이 달라지면 일이 달라지고, 일이 달라지면 대비하는 방법도 달라야 한다(世異卽事異, 事異卽備變·세이즉사이 사이즉비변)"고 강조했다.

항시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당시 위정자들에게 세상변화를 똑바로 보라고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동서고금 누구에게나 통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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