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한담(冬夏閑談)] 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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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희 전통문화연구회 번역실장
입력 2017-09-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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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하한담(冬夏閑談)]

남현희 (전통문화연구회 번역실장)


나의 길

앞서 간 성인의 길 가지 않아야
훗날에 진정한 성인이 되리라
불행전성행처(不行前聖行處)
방주후래진성(方做後來眞聖)

조선 후기 역관 출신의 시인 이언진(李彦瑱·1740∼1766)이 지은 시의 일부이다. 연암 박지원이 <우상전(虞裳傳)>에서 서술한 인물 우상이 바로 이언진이다. 독특한 시세계를 구축했던 시인이요 이단적인 삶을 살았던 천재였으나, 그가 이 세상에 머물렀던 기간은 고작 스물일곱 해밖에 되지 않는다.
비록 짧은 삶을 살았지만, 그는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길을 개척하여 새로운 시, 새로운 글을 짓고자 하는 열망이 매우 강했던 시인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생의 기간도 짧았고, 자기의 원고를 생전에 자기가 직접 불에 태워버렸지만, 우리가 여전히 그를 주목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이나 비결 없이 그저 남이 갔던 길을 따라가는 것은 모방이요 답습이다. 심하게는 표절이 된다. 모방과 답습과 표절을 일삼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을 아류(亞流)라 부른다. 이언진이 살던 조선은 상고주의(尙古主義)의 전통이 완고하여 옛 성인(聖人)을 따르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던 시대였다. 시대 현실이 그러함에도, 그의 눈에는 옛 성인의 길을 따르는 것 역시 아류로 보였고, 그래서 낡고 타성에 젖은 전통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기의 길을 개척하고자 한 것이다.
아류에게는 세상을 앞서가는 독창성이나 혜안을 기대하기 힘든 노릇이다. 그래도 남이 갔던 길을 따라가면, 으뜸은 못 돼도 잘만 하면 중간은 될 터이고 실패에 대한 위험 부담도 적긴 할 터이다. 손쉬운 생존전략이고, 그래서 그 유혹의 손길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세상은 결코 남이 갔던 길을 맹목적으로 따라간 사람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성취가 높든 낮든, 남이 갔던 길에서 벗어나 자기의 길을 개척한 사람을 세상은 알아주고 기억한다.
게다가 남을 따라하는 아류의 가장 큰 문제는 진짜와 원조의 가치를 훼손하고 갉아먹는다는 데에 있다. 어떤 제품이 성공하면 수많은 아류들이 생겨나 그 제품의 상품가치를 훼손하기도 하고, 어떤 음식이 인기를 끌면 수많은 아류들이 생겨나 그 음식을 식상하게 만들기도 한다. 심지어 농사를 지을 때도 어떤 농작물이 큰 수익을 내면 너도나도 재배하여 상품가치를 떨어뜨린다. 가짜와 아류가 진짜와 원조를 몰아내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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