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택시 기사 음주운전, 가중처벌 규정이 없다…판사 재량으로 '엄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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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해 기자
입력 2017-09-14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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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스 음주운전 기사 5년간 자격 제한 등 행정처분만

지난 5일 서울의 한 시내버스. 버스 기사 이모씨(55)는 흐린 날씨에도 선글라스를 끼고 버스에선 술 냄새가 진동했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한 승객이 "버스 운전기사가 음주운전을 하는 것 같다"고 신고하면서 이씨의 음주 운전은 들통났다.

14일 경찰에 따르면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 수준인 0.063%. 이씨는 "전날 소주 1병을 마셨는데, 술이 깨지 않을지 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씨를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고, 서울시는 해당 버스 업체에 대한 행정 처분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버스·택시 등 대중교통 운전자의 음주운전이 잇따르고 있지만, 이에 대한 별도 처벌 규정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중교통 음주운전 사고는 끔찍한 사고로 연결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최근 5년간 버스·택시 음주 교통사고 904건

지난 2015년 조원진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버스 음주 교통사고는 99건, 택시 음주 교통사고는 805건에 이른다.

같은 기간 버스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는 사망 2명, 부상 400명이었고, 택시는 사망 29명, 부상 1454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버스·택시 같은 공공적 성격을 띠는 대중교통 운전자의 음주운전에 대한 가중처벌 규정은 따로 없다.

한문철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는 "원칙적으로 대중교통 운전자에 대한 별도 처벌 규정은 없다"면서 "도로교통법에서 혈중알코올농도에 따라 처벌 정도가 정해져 있는데, 대중교통 운전자의 경우 일반 자가용 운전자보다 처벌 수준이 높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판사들이 개별적으로 재량 범위 내에서 엄벌에 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해 9월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형사1단독 한성수 부장판사)은 혈중알코올농도 0.109% 만취 상태로 시외버스를 운전한 버스기사 정모씨(51)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실형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불특정 다수의 승객을 태운 채 포항에서 부산까지 고속버스를 운행하려 한 피고인의 사회적 책임이 크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 '음주 면허취소' 버스 기사는 5년간 운전 못 해

다만 버스 기사가 음주운전을 해 면허가 취소될 경우, 일정 기간 버스 운전을 못 하도록 하는 법안이 2016년 마련됐다.

지난해 7월 영동고속도로 5중 추돌을 사건이 발단이 됐다. 당시 사고로 20대 여성 4명을 숨지게 한 버스운전기사가 세번의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전력이 있음에도 2년 만에 다시 운전대를 잡아 대형참사가 빚어졌던 것이다.

이에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7월 대표 발의한 '자동차 운수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대형버스 운전기사가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되면 5년간 운수 종사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기존 법은 5년 동안 3회 이상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경우에만 운수종사 자격 취득을 제한했다.

버스 기사 개인을 넘어 사업장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규칙 제44조는 운송사업자는 차량 운행 전에 운수종사자의 건강상태, 음주 여부 및 운행경로 숙지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사업장이 해당 규칙을 어길 경우 과징금 액수가 180만원에 불과해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전문가 "사후 처벌보다 사전 단속 철저히 해야"

전문가들은 대중교통 운전자의 음주운전에 대한 단속·처벌 규정 등 안전관리 규제를 강화해야 입을 모은다.

모창환 한국교통연구원 실장은 "앞으로도 산업진입 규제는 완화하더라도 안전규제는 강화해야 한다"며 "안전규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버스 음주·졸음 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또 사후 처벌보다 중요한 게 사전 단속"이라면서 "영국의 경우 정부가 공공조직에 단속권을 주고 해당 조직이 사업용 자동차에 대해 휴게소든 주요소든 수시로 단속을 한다"고 말했다.

사업장 차원에서 안전 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조준한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박사는 "안전사고를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게 사업장의 안전에 대한 관심"이라며 "운전자의 건강상태 등에 대한 것은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모니터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조 박사는 "운전자 졸음운전의 경우에도 잠을 많이 못 잤다거나 지병이 있는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럴 때 회사 차원에서 휴직해 준다거나 쉬게 해주는 등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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