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브이아이피' 이종석, 결이 다른 '누아르'를 완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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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17-09-0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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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브이아이피'에서 광일 역을 맡은 배우 이종석[사진=YG엔터테인먼트 제공]

서정적 사이코. 박훈정 감독은 배우 이종석(28)이 연기한 김광일을 이렇게 정의했다. 말간 얼굴과 나른한 얼굴로 잔혹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인물. 마음에 드는 건 쉬이 얻어왔고 어려운 일이라곤 겪어본 적이 없는 김광일은 마음에 드는 책과 음악을 질릴 때까지 듣고 또 읽으며 집착적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영화 ‘브이아이피’(감독 박훈정)는 북에서 온 VIP 김광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세 인물의 치열한 분투를 담은 영화다. 은폐하려는 자와 잡으려는 자, 복자하려는 자의 치열한 싸움을 그리고 있다.

극 중 김광일은 영화의 제목 격으로 사건의 핵심이자 모든 인물을 쥐락펴락하는 ‘베리 임포턴트 펄슨(Very Important Person)’이다. 하지만 이는 배우 이종석에게도 마찬가지다. 그의 필모그래피에 새긴 누아르라는 장르, 김광일이라는 인물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가진 이종석과의 일문일답

영화 '브이아이피'에서 광일 역을 맡은 배우 이종석[사진=YG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공개 후 연기에 대한 호평이 많았다. 만족도는?
- 언론시사회 이후 리뷰나 영화평을 봤을 땐 만족할 만한 결과였다. 하지만 영화를 보았을 땐 너무 유약하고 연약해보이지 않나 걱정이 됐다. 그런데 김명민 선배님께서 좋았다고 칭찬을 해주셔서 안심하기로 했다. 워낙 빈말을 안 하시는 분이니까.

김광일을 선택하기에 앞서 우려되는 부분도 있었을 텐데
-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감독님을 찾아가 제가 해보겠다고 했고 찍어놓고도 잘 몰랐다. 그런데 개봉을 앞둔 상황에 걱정이 커지더라. 어린 친구들이 혹여나 상처받을까 봐서였다. 누아르를 하고 싶었는데 어쩌면 시기상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이아이피’로 본다면 김광일은 제가 가진 것들이 무기로 작용된 것 같다. 예컨대 제가 채이도를 한다고 했을 때 쉽게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으니까. 인상 쓰고 욕설한다고 이도의 묵직함이 표현되지는 않을 것 같다.

우려되는 부분에도 김광일을 선택했는데
- 연차가 쌓이다 보니 내가 가진 성향과 캐릭터의 방향이 대립하기도 하고 부딪칠 때도 많다. 심한 슬럼프가 왔었고 캐릭터를 묘사하지만 속으로는 공감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이걸 극복할 방법에 관해 많이 고민했다. 나와 다른 인물을 공감하지 못할 때 혹은 공감해서는 안 될 때도 돌파구는 있어야 했다.

평소 누아르에 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 보는 걸 좋아한다. 원빈 선배님의 ‘아저씨’, 김래원 선배님의 ‘해바라기’, 조인성의 ‘비열한 거리’ 등등. 남자 배우들은 다 대표작이 하나씩 있으니까. 저도 수컷 향기를 풍기는 작품 하나 하고 싶었다.

앞서 말한 작품들과 ‘브이아이피’ 특히 광일은 결이 다른데?
- 그렇다. 하지만 광일은 남자배우들이 욕심낼만한 역할일 거다. 저도 신인 때 ‘사이코패스 역을 해보고 싶다’고 했었다. 다른 신인배우들도 많이들 답하고. 지금까지 안 해본 작품과 결이 다른 캐릭터를 해보고 싶었고 욕심이 났다. 거기에 박훈정 감독님은 워낙 (누아르 장르에) 최적화된 감독님이기 때문에 제가 해보겠다고 했다.

영화 '브이아이피'에서 광일 역을 맡은 배우 이종석[사진=YG엔터테인먼트 제공]


광일을 만들어 갈 때 어땠나?
- 캐릭터를 잡기 전에 전사나 역사를 만들지 않나. 하지만 광일은 다른 캐릭터로 하여금 유추할 수밖에 없었다. 감독님께 이야기를 많이 듣고자 했다. 감독님이 각본을 쓰셨으니까. 특히 광일의 웃는 얼굴에 디테일이 많았다. 여기서는 한쪽 입꼬리만 올리고 여기는 활짝 웃고 등등.

대사가 많이 없었는데
- 다른 선배들이 에너지가 너무 세다 보니까. 안 지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런데 대사가 없으니까 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안 해도 되나? 최대한 나른하고 여유롭게 하려고 했다.

이종석이 그린 김광일만의 매력 혹은 독특함은?
- 비주얼? 영화를 보면서 ‘왜 저렇게 하얘’라는 생각만 했다. 모티브로 삼을 만한 캐릭터는 많았는데 광일만의 결을 만들고 싶었다. 어떻게 다른 표현을 할까 생각하다가 살인하면서 희열을 느끼거나 쾌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마냥 아이처럼 해맑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비주얼적인 모습을 무기로 삼고자 했다.

여성 캐릭터를 소모한다는 것에 관해 지적하는 이들도 많은데
- 그래서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다. 감독님의 생각이 있으시겠지만, 배우로서는 광일이라는 인물을 최대한 보여드리고자 한 것 같다. 첫 장면의 경우 왜 이렇게 길게 살인을 보여줘야 했느냐고 한다면 그 장면이 없었다면 광일이 유약해 보일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모든 캐릭터와 관객에게 분노를 일으켜야 하는데 그 장면이 없었다면 광일을 미워하고 싫어할 중요 요소가 빠진 것 같았을 거다.

영화 '브이아이피'에서 광일 역을 맡은 배우 이종석[사진=YG엔터테인먼트 제공]


김명민과 많이 부딪치는 캐릭터였는데. 호흡은 어땠나?
- 김명민 선배님은 NG도 안 내고 톤이 어긋나지도 않게 연기한다. 정확한 연기를 하시는 분이다. 그러다 보니 걱정이 많이 됐다. 저는 공기 반, 소리 반 대사하는 편인데 선배님들이 성량이 좋으니까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더라. 이미 ‘관상’ 때 경험한 바가 있어서 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걸 가장 걱정했다.

해결 방안이 있었다면?
- 그냥 불안해하면서 찍었다. 이게 맞는 건가? 계속 고민했다. 사투리도 북한에서 태어났지만, 해외에 나가 있는 시간이 길어서 더 세련됐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남북의 중간 발음으로 연기하고자 했다. 남북의 중간 발음을 어떻게 표현하지? 하하하. 박희순 선배님의 톤이 좋다고 하셔서 보고 배우기도 했다.

이번 작품으로 얻고자 하는 반응이 있다면?
- 연기 욕심이 있는 애구나 하는 평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다작을 해왔는데 연기하는 순간이 일상이었다. 집에 있을 때 너무 무기력하기도 하고. 연기를 덜어내면 내가 도대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도 한다.

영화 '브이아이피'에서 광일 역을 맡은 배우 이종석[사진=YG엔터테인먼트 제공]


연기 외적인 고민이 많은가보다
- 모르고 살았던 것들에 관해 생각을 많이 했다. 초등학교 동창들 특히 보이스카우트를 함께 했던 친구들을 자주 만나는데 그 친구들이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지내는지 잘 모르고 살았었다. 최근에 많이 만나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다.

군대 가기 전이라 그랬나?
- 그런 건 아니다. 친구 없다고 인터뷰를 많이 했었는데 알고 보니 제가 친구가 꽤 많더라. 예전에는 친구들의 사는 이야기에 공감을 잘 못 하고 심드렁했는데 이제는 그냥 듣기만 해도 재밌다. 서로 일하는 환경이 다른데 모르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있더라.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마음가짐의 변화 혹은 급변하는 시점인 것 같다. 중요한 때인데
- 음 잘 모르겠다. 특별한 계기 같은 건 없다. 저는 제 작품 모니터를 굉장히 많이 한다. 많이 보다 보면 오히려 더 객관적으로 변한다. 데뷔 초 작품을 보면서 ‘연기가 왜 저따위지’ 생각한다. 최근 작품을 보다가 어느 순간 늘지 않는 정체된 구간을 발견했다. 다양한 표현에 있어서 고민하고 있다. 똑같은 지문이라고 그렇게 표현할 때가 많더라. 방법을 알아버린 것 같다. 그걸 탈피하려고 노력 중이다.

‘브이아이피’로 하여금 변화 단계에 올라섰나?
- 제가 작품에 대해 스스로 만족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를 보며 정말 애썼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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