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기업, 한국을 떠나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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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 기자
입력 2017-08-29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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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 산업부 차장


“삼성이 많이 어렵습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삼성이 더 잘 할 수 있도록 따뜻한 응원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피에르 호텔에서 간담회를 마친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사장)은 끝 인사로 이렇게 당부했다. 갤럭시 노트7 사태를 단기간에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준 고객에 대한 감사의 말이었지만 하루 뒤에 있을 이재용 부회장 1심 선고 결과를 앞두고 ‘삼성맨’으로서 전한 개인적인 소망으로 들렸다.

고 사장의 바람과는 기대와 전혀 다른 선고 결과가 나왔다. 삼성맨들이 입은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많은 국민들도 적잖이 놀랐다.

재판부의 결정을 비난하거나 폄하할 의도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대목이 여럿 보였다. 단어는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에, 법률 용어는 수학 기호, 비즈니스 언어 등과 같이 단 한 가지의 뜻을 명확히 표현해야 한다고 들었다.

이 부회장 판결문에는 △추단(증거는 없지만 추정, 짐작할 수 있다) △묵시적 청탁(말은 안 했지만 그런 생각이 있다고 보여진다) △포괄적 뇌물죄(직무관련성, 대가성, 직무관련 구체성이 없어도 무조건 뇌물이다) △개괄적 인식(인과관계도 불명확하고 불확정적이지만 재판부가 보기엔 대충 그럴 것이라고 간주한다) 등과 같은 용어들이 등장했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이들 법률용어들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무죄추정의 원칙’, ‘죄형법정주의’라는 재판의 본래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눈에 보이는 증거는 없지만 정황을 추정해 본 결과 유죄라고 판결할 수 있다는 언급은 아무래도 이해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들 용어들은 사용한 이의 의도에 따라 포괄 범위가 무한대다. 논리를 비약해보면, 25만여 명의 모든 삼성맨들도 이 부회장이 저질렀다고 판단하는 위법 행위를 묵인, 방조, 지원했다는 의혹으로 죄를 씌울 수도 있다. “25일 법원 판결과 동시에 삼성의 모든 구성원들은 죄인이 되었다”는 한 삼성맨의 하소연이 나온 이유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경제학 교수는 이번 판결을 “반재벌 정서가 지배한 비겁한 판결”이라고 강력히 비판했고, 제45대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역임한 김평우 변호사도 “우리나라 법관들의 재판 목적은 검찰이 입증하지 못한 피고인의 유죄를 자신들이 사또, 원님 재판으로 유죄를 만드는데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한 네티즌이 올린 “증거가 없는 경우 포괄해 버리고 짐작하여 추단하고 불확정적으로 개괄적으로 인식 간주하고 마음속의 묵시적 생각까지 처벌하는 세상··· 참 무서운 나라이다”라는 글에서도 재판 결과에 대한 불신감이 강하게 배어있다.

한국과 한국인, 한국기업을 가장 무시하고 부정하는 이들은 바로 한국인이라고 한다.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아무리 “한국인들은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치켜세워도 한국인들은 한국기업은 애플, 구글, 샤오미, 알리바바 등에 못 미친다고 불만이다. 갤럭시노트8이 공개된 뉴욕 파크 애비뉴 아모리에는 글로벌 미디어 기자와 파트너 관계자들이 1500여명이 자발적으로 참석했다는 말에 “삼성이 동원했겠지···”라며 의심부터 하는 한국인들이다.

이러한 국민들의 불안감과 재벌을 끊임없이 악으로 치부하는 지지율 70~80%대 현 정권의 인식이 결합한 결과가 이 부회장 재판 결과였다. 재계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한다.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을 지 눈에 선하다. 수의를 입고 양손목을 포승줄로 묶은 총수들에게 독심술로 유죄를 씌우는 모습에 환호성을 지르는 한국사회에서 기업과 기업인, 임직원들이 과연 언제까지 ‘한국기업’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업들에게 진지하게 권하고 싶다. 이젠 한국을 떠나도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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