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칼럼] ‘쿠바위기’에서 답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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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초빙논설위원·동신대교수(정치학)
입력 2017-08-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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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재호]


이재호칼럼
초빙논설위원·동신대교수(정치학)

‘쿠바위기’에서 답을 찾아?

진보진영 일각에서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사태를 북핵문제 해결에 원용할 수 있다는 의견들이 나왔다. 핵전쟁 직전까지 갔던 위기가 미·소(美蘇) 간 타협과 양보를 통해 해소됐다는 사실에 착안한 듯하다. 한 중견 언론인은 칼럼에서 “쿠바 미사일 위기 해법이 한반도에서도 작동할 조건이 무르익은 게 아닌가?”라고 묻기도 했다. 반세기도 더 지난 이 사건이 우리에게 던지는 함의는 무엇일까. 새롭고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안이 5일 유엔에서 통과됐다.

‘쿠바’가 새삼 화두가 된 데에는 로버트 게이츠 전 미 국방장관(73)도 한몫했다. 그는 지난달 11일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인터뷰 기사에서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면 미국과 중국이 먼저 큰 틀에서 협상하라고 권고했다. 이 협상에서 미국은 중국에 △북한체제 인정 △정권 교체 포기 △평화협정 체결 △한국 내 군사구조(주한미군) 일부 변경 등을 제안하고,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중국은 북핵 동결(凍結)과 엄격한 이행(사찰)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이츠는 ‘북한체제 인정’과 ‘정권 교체 포기’를 언급하면서 "소련과 함께 쿠바 미사일 위기를 해결할 때 했던 것처럼(as it did when resolving the Cuban missile crisis with the Soviet Union)"이라고 부연했다. 이 대목이 국내 한 일간지에 의해 ‘게이츠, 쿠바 위기 때의 방식 제안’으로 번역, 소개됐던 것. 물론 ‘쿠바 방식’에 대한 관심은 그 전에도 있었다. 문정인 대통령특보(통일외교안보)도 연세대 명예교수 시절이던 2016년 8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쿠바 위기의 교훈이 대북정책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1962년 10월 소련이 미국의 안마당 격인 쿠바에 핵미사일을 전격 배치함으로써 인류를 핵전쟁의 공포 속에 몰아넣었던 게 쿠바 미사일 위기다. 위기는 같은 달 28일 소련의 흐루쇼프 공산당서기장이 미사일 철수를 발표함으로써 해소됐지만 실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 해상을 봉쇄함으로써 소련을 압박했다. 미 군부는 쿠바 침공까지 건의했다. 쿠바와 가까운 플로리다엔 미군이 증원, 소집돼 대기 중이었다.

일단의 진보인사들은 위기 해소 과정에서 △미국은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소련이 쿠바의 핵미사일을 철수시키는 데 대한 반대급부로 미국도 터키에 배치했던 핵미사일을 철수키로 한 데에 주목한다. 방점은 단연 두 번째 ‘상호 철수’에 찍힌다. 문 특보는 쿠바 위기가 케네디의 단호한 대응 때문에 해결된 게 아니라고 했다. 터키 미사일도 함께 철수키로 함으로써 위기가 종식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양보가 주효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분야의 대가인 하버드대학의 앨리슨 교수에 따르면 케네디는 평소 터키에 배치된 미사일을 철수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쿠바 미사일이나 터키 미사일 모두 군사적으로는 가치가 없던 것들이라는 지적도 있다(Essence of Decision : Explaining the Cuban Missile Crisis, Allison 1971). 미국이 터키 미사일 철수로 소련의 체면을 세워주기는 했지만 ‘교환 철수’가 위기 해소의 주된 이유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애초 쿠바사태와 북핵을 동일선상에 올려놓은 것 자체가 무리였다. 쿠바사태는 미·소 양국 간 양자적 문제였고 쿠바 핵미사일의 소유주는 소련이었다. 언제든 빼려면 뺄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핵은 적어도 6개국 이상이 관련된, 난마처럼 얽힌 다자적 문제다. 핵과 미사일의 소유주도 북한 자신이다. 누가 포기하라고 해서 쉽게 포기할 사안이 아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의 핵심적 함의(교훈)는 정책결정과정(decision-making process)에 있다. 영국의 전략이론가 로런스 프리드먼은 쿠바 위기가 “이성적인 머리(clear head)와 강한 의지(strong will)로 위기도 관리할 수 있다는 점, 위기란 확대되기도 하지만(up-escalators), 축소될 수도 있다(down-escalator)는 점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Strategy, 2013). 참고할 게 있다면 이런 과정이다. 그 복잡한 심리적·정치적·군사적 과정은 지금까지도 정책결정을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교과서와도 같은 사례연구의 대상이다.

이런 점들을 무시하거나 건너뛴 채 ‘쿠바 미사일과 터키 미사일의 맞교환’에만 초점을 맞추거나 ‘교환으로 위기가 해소됐다’고 주장하는 건 사안을 호도할 우려가 있다. 그런데도 왜 이 대목에만 과중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 알 만한 사람들이 말이다. 짚이는 데가 없는 건 아니다. 우리도 양보할 수 있으면 하라는 얘기다. 뭘? 북을 비핵화의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서 게이츠가 말한 ‘한국 내 군사구조의 변화’라도 수용하라는 얘기다. 문 특보도 한때 제안했듯이 한·미연합훈련 축소까지도 전향적으로 검토하라는 거다.

이건 아니다. 한·미연합훈련의 축소는 한·미동맹의 일각을 허무는 것과 같다. 언제 휴지가 될지도 모를 그 알량한 ‘핵동결 약속’을 받아내기 위해 우리 안보의 보루인 한·미동맹까지도 건드리겠다는 건 무책임하다. 유엔 결의안 통과로 대북 제재의 강도와 수위가 더 높아진 현실과도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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