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11] ‘우파 대통령 판결문’과 인공지능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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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열 초빙 논설위원· 정보사회학 박사
입력 2017-08-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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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홍열]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11
초빙 논설위원· 정보사회학 박사


‘우파 대통령 판결문’과 인공지능 판사

가끔 법정에서 판사의 고압적 태도와 발언이 문제가 되어 미디어에 보도되는 경우가 있다. 현장 분위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는 경우, 판사 개인의 인격적 미성숙으로 인한 해프닝으로 끝나게 된다. 이 경우 아쉽기는 하지만 이해는 된다. 누구라도 여러 면에서 성숙하기가 쉽지 않다. 평소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들도 특정 상황에서는 미성숙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이 있다. 때로는 미성숙 태도가 더 인간적일 때도 있다. 불의한 상황을 목격했을 때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분노와 욕설은 교양 있는 성숙보다 더 인간적이다. 그러나 특정 상황이 아닌 보편적 국면에서는 우리 모두 성숙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특히 판사들은 더 그래야 하는 사회적 책임이 있다. 최근 이런 믿음에 반하는 판결문이 하나 보도됐다.

“박 전 대통령은 보수주의를 표방해 당선됐고 보수주의를 지지하는 국민들을 그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문화·예술계 지원사업과 관련해 ‘좌파에 대한 지원 축소와 우파에 대한 지원 확대’를 표방한 것 자체가 헌법이나 법령에 위반된다고 볼 수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작성된 소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 박 전 대통령을 이 사건의 공범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 (부장판사 황병헌) 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판결문의 일부다. 판결문에서는 ‘표방’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대통령의 ‘표방’은 사실상 명령과 지시의 동의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청와대 비서실과 국무위원은 이 표방을 받들어 ‘우파 대통령은 좌파에 대한 지원 축소를 해도 된다고 판단’했고 지원 축소를 위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활용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 목격한 것처럼 수년간에 걸쳐 ‘좌파 예술인 질곡 시대’가 이어졌다.

당연히 이 판결문에는 많은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다. 특정한 상황에서 나타난 일시적 감정 표출이라면 이해하겠지만 오랜 시간 걸쳐 작성된 판결문에 담길 내용으로는 적절치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이 판결문이 헌법의 기본 정신을 정면으로 위반했다는 사실이다. 헌법은 좌파 국민과 우파 국민을 구별하지 않는다. 헌법 10조는 다음과 같다. “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 대통령은 이 10조를 포함한 헌법 전체를 수호할 책무를 져야 한다. 보수주의를 지지하는 국민들을 기반으로 당선되었다고 해도 헌법 수호의 책임은 변하지 않는다.

선거과정 중에는 보수와 진보 또는 중도와 같은 특정 이념을 강하게 주창한다. 당연한 일이다. ‘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전, 국가의 계속성’을 보존하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각 정당의 지도자들은 내부 토론과 연구를 거쳐 자신들이 생각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적절한 방안을 국민들에게 제시한다. 국민 모두의 행복을 위한 구체적 정책들을 보여주고 지지를 호소한다. 이 정책들을 포장하는 이데올로기가 보수와 진보 또는 중도라는 상대적 개념들이다. 시대에 따라 바뀌고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된다. 교과서적으로 정의될 수 없는 가변적인 정치 개념들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개념들이 아니라 누가 더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리더인가다. 이것이 민주 정당들이 존재하는 이유이고 정권교체가 되는 이유이다.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 갈등은 존재할 수밖에 없고, 볼 수 없는 신이 아닌 인간 누군가가 그 갈등을 중재하고 조정하고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한다. 사회는 그 조정자에게 절대적·도덕적 권위를 부여했다. 왕·제사장·철학자·원로 등이 그 역할을 수행해 왔고, 지금은 법에 의해 판사가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재판정에서 판사가 입장하면 모두 일어나서 예의를 갖추는 것도 판사라는 역할이 갖고 있는 준엄함 때문이다. 판결 하나로 한 인간의 미래가 결정된다. 사람들은 판사에게 법과 양심에 따른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한다. 법은 사회 구성원들이 만든 사회적 약속이다. 양심은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도덕 감정에 기초하고 있다. 결국 판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동의할 수 있는 상식적 판단이다. 기계적 판결이 아니다.

해외 보도에 의하면 점차 판사가 필요 없는 인공지능에 의한 판결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다. 아직은 판결을 위한 자료 제공 혹은 소액 재판 등에 활용되겠지만 점차 그 범위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판례를 분석하고 정리해서 선택 가능한 서너 개의 안으로 압축하는 능력은 인공지능이 탁월할 수밖에 없다. 중요하지 않은 결정임에도 최종 판결을 얻기까지 걸리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감안하면 인공지능에 의한 빠른 판결이 더 효과적인 측면도 많다. 신속성과 효율성은 인공지능이 갖고 있는 경쟁력이다. 이제 남은 것은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판결이다. 빵을 훔쳤지만 무죄를 선고하는 판결이 필요하다. 텍스트를 넘어 콘텍스트를 읽어야 하고 콘텍스트를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휴머니즘적 사고를 해야 된다. 인공지능 판사를 보고 싶지 않은 단 하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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