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효과·이야기 조화된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시선집중'(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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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5-12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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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 예술감독·코디 최·이완 작가가 꾸민 '카운터밸런스'

(베네치아=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10일(현지시간) 오후 이탈리아 베네치아. 바닷가에 한적하게 자리잡은 시민들의 쉼터 자르디니에 인파가 몰리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의 현대미술 축제인 제57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국가별 전시관이 이날 오후를 기해 일제히 언론과 VIP를 상대로 첫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긴 줄을 기다려 녹음이 우거진 공원에 입장하니 나무 사이 사이에 얌전히 파묻혀 있는 여느 전시관들과 달리 현란한 네온사인으로 장식된 한 전시관이 유독 눈을 잡아 끌었다.

튀어나올 듯한 호랑이와 공작 등으로 이뤄진 형광색 외관의 왼편에는 '모텔'(MOTEL)이라는 문구까지 있어 '아, 저건 뭐지'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이 전시관이 바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커미셔너, 이대형 현대자동차 아트디렉터가 각각 예술감독을 맡은 가운데 재미 작가 코디 최(56), 젊은 작가 이완(38)의 작품들로 꾸민 한국관이었다.

'균형을 잡아주는 평행추'를 의미하는 '카운터밸런스(Counterbalance): 더 스톤 앤 더 마운틴(The Stone and the Mountain)'를 주제로 한 한국관은 이처럼 입구부터 강렬한 시각적 효과로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냈다.

한국관의 입구에 설치된 작품은 '베네치아 랩소디'라는 제목이 붙은 코디 최의 신작이다.

코디 최는 "베네치아는 세계 최고의 예술이 벌어지는 곳으로 인식되나 이곳에 모이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예술 투자에 관심이 많다. 작가들도 마음 한편으로 이 기회를 이용해 '떠야지', '성공해야지'하는 마음이 있다. 그것을 아무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을 뿐"이라며 "일확천금의 꿈이 떠다니는 라스베이거스, 마카오를 떠오르게 하는 작품으로 미술계에 파고든 '카지노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싶었다"고 제작 의도를 설명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돌덩이와 미국의 청량음료 마운틴 듀 박스가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추가 자리하고 있다. '불가능한 것들의 가능성: 돌과 산'(Possibility of Impossible Things-The Stone and the Mountain)으로 명명된 이 작품에서 이완 작가는 하나의 돌이 하나의 산의 무게와 맞먹을 수 있다는 철학을 언어 유희적으로 풀어냈다.

이완 작가는 "화엄경에 보면 '하나의 미세한 것 속에 우주가 들어있다'는 구절이 나온다"며 이런 의미에서 돌 하나로 대변되는 작은 것과 돌들이 모여 이뤄진 산이라는 큰 사물이 등가로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전시관 오른쪽 벽면은 구한말 친일파 이완용이 쓴 친필 글씨부터 군대에서 받은 표창장, 결 사진, 1990년대 김영삼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진 3당 합당,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과 서거, 박근혜 탄핵 요구 촛불 집회에 이르기까지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보도한 신문 등 작가가 수십 년에 걸쳐 모은 자료가 가득 채우고 있다.

'미스터K와 한국역사의 수집품'(Mr.K and the Collection of Korean History)'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이완 작가가 서울 황학동에서 5만원에 구입한 사진 1천412장의 실존인물인 고(故) 김기문 씨를 내세워 한 개인의 인생과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치열한 한국 근대화의 과정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로 제작됐다.

이완 작가는 "균형이 무너지면 그때부터 균열이 일어나고 파괴가 시작된다. 일단 파괴되면 복구가 복잡하고, 복구하더라도 깨졌던 흔적이 남기 마련이라 환경이든, 예술이든, 사랑이든, 삶이든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상대방과의 공감이 필요한데, 공감하기 위해서는 서로 바라보고, 이해하고, 알아야 하며, 이를 위해 한 개인을 집요하게 보여주기 위한 자료를 수집해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독립된 방으로 들어가자 흰 바탕에 검은 바늘로 이뤄진 똑같은 시계 668개가 각기 다른 속도로 작동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이름과 직업이 적힌 이 시계들로 이뤄진 작품은 이완 작가가 '내일 아침 한끼의 식사를 위해 오늘 몇 시간 일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전 세계 1천200여 명에게 던진 뒤 그중 668명을 선정, 이들의 삶을 서로 다른 속도로 회전하는 시계로 형상화한 '고유시'(Proper Time).

이 작가는 "각 개인의 연봉, 노동시간, 식사 비용 등에 따라 벽면을 가득 채운 시계가 각기 다른 속도로 회전하는 모습을 통해 자본주의 현장에서 개인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과 불균형한 세상을 짚어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방에 진입하면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의 명작 '생각하는 사람'을 변주한 코디 최의 '더 씽커'(The thinker)가 반겨준다. 이 작품은 그러나 로댕의 작품과 달리 분홍색으로 돼 있고, 매끈하지 않고 투박하게 빚어졌으며, 나무로 된 받침대에 사람 엉덩이가 들어가는 변기 형태까지 뚫려 있다.

미국 문화에 대한 동경을 지니고 있다가 가세가 기운 탓에 20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는 코디 최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이질적인 문화의 충돌, 막연히 생각하던 미국 문화가 환상임을 깨닫고 받은 충격 등으로 도미 후 3년 동안 소화불량에 시달리며 소화제를 달고 살았다"며 "이런 내적 갈등을 당시 복용하던 분홍 빛깔이 나는 미국의 소화제와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를 짓이겨 해학적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이날 한국관을 찾은 스페인 큐레이터 이냐시오 카브레로 씨는 "독특한 한국 미술에 매료돼 매번 베니스 비엔날레에 올 때마다 한국관을 꼭 들른다"며 "올해 전시 역시 다층적이고, 유쾌한 작품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개인의 기억을 간직한 물건이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선 한 나라의 역사가 되도록 구성하고, 하나의 작품을 통해 여러 맥락을 상상하도록 만드는 작가의 능력이 놀랍다"고 인상을 전했다.

이대형 예술감독은 "올해 한국관 전시는 시각효과와 작품들을 관통하는 이야기가 잘 조화를 이뤘다는 입소문이 나며 초반부터 반응이 꽤 괜찮은 것 같다"고 자평했다.

그의 말처럼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미술 관련 매체인 아트뉴스페이퍼는 2017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꼭 봐야 할 전시 10개에 한국관을 포함시켜 한국관에 쏠린 관심을 보여줬다.

이탈리아 미술 관련 유력 매체인 아르트리부네(Artribune)도 한국관을 독일관, 프랑스관, 스위스관, 호주관과 함께 '톱5' 전시관으로 꼽았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전시는 오는 11월26일까지 이어진다.

ykhyun14@yna.co.kr

(끝)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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