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여교사' 김하늘 "모멸감·질투·열등감, 데뷔 20년 만에 처음 겪는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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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1-1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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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교사'에서 효주 역을 맡은 배우 김하늘[사진=필라멘트픽쳐스 제공]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이런 모멸감은 처음이라고 했다. 연예계 데뷔 21년 차. 거의 모든 작품에서 상대의 사랑을 독식해온 배우 김하늘(39)은 영화 ‘여교사’(감독 김태용) 속 효주의 상황, 질투와 열등감이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그는 ‘여교사’가 흥미롭고 또 궁금해졌다. 자신을 향한 적나라한 적개심과 냉대는 배우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처음 겪는 일이었으니까.

“항상 사랑받고, 좋은 이야기를 듣는 작품과 역할만 했던 것 같아요. 간간이 공포영화도 찍었지만, 모멸감을 느낄 일은 없었거든요. 이렇게 면전에서 적대와 무시를 당하는 건 처음이었어요. 정말 힘들더라고요.”

영화는 계약직 여교사 효주가 이사장 딸 혜영(유인영 분)과 자신이 눈여겨보던 학생 재하(이원근 분)의 관계를 알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김하늘은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혜영”이 아닌, 사랑을 갈구하는 계약직 여교사 효주 역을 맡아 열연했다.

영화 '여교사'에서 효주 역을 맡은 배우 김하늘[사진=필라멘트픽쳐스 제공]


“김태용 감독님과 첫 미팅을 잡아놓고서도 할지 말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태였어요. 그러한 와중에도 감독님께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어요. ‘왜, 저예요?’ 혜영도 아니고 효주를 두고 왜 저를 생각하신 건지 정말 궁금하더라고요.”

어째서 김하늘이었을까? 김태용 감독은 과거 그가 출연한 SBS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가 이유였다고 답했다. “남이 모르는 김하늘을 발견했다”면서 “효주의 느낌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김하늘은 김태용 감독의 답변에 바로 출연을 결심했다.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김하늘의 모습”을 발견했다는 말에 기대가 커졌기 때문이다.

“사실 시나리오를 읽을 땐 자존심도 상하고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효주의 감정을 따라가기가 힘들었거든요. 특히 계약직 교사라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괄시받는 장면은 가슴이 떨리고 얼굴이 화끈거리더라고요. 효주의 감정은 곧 제 감정이었어요.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데뷔 20년간 연기해왔던 모든 캐릭터를 통틀어 가장 “불쌍하고 안타까운 캐릭터”였다. 영화 ‘블라인드’(2011) 수아의 경우에는 자아를 찾았지만 “효주는 삶 자체가 안타깝고 연민”이 갔다.

“시나리오상에서는 더 심했어요. 하하하. 아무래도 편집이 된 부분들이 있어서 완화된 듯한 느낌도 들더라고요. 시나리오에서는 그 모멸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감독님은 재하에 대한 감정이 사랑이길 바라셨고, 저는 재하에게 천천히 빠져드는 미묘한 감정이라고 생각했죠. 감정의 결이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긴 했는데 감독님은 항상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셨어요. 시나리오를 쓰고 만든 분이긴 하지만 효주를 연기하는 건 저고, 또 여성의 감정과 디테일은 제가 느끼는 것이니까요. 효주의 감정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영화 '여교사'에서 효주 역을 맡은 배우 김하늘[사진=필라멘트픽쳐스 제공]


드라마 ‘로망스’(2002) 이후 15년 만이다.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를 외치던 그는 피폐하고 지친 기색을 한 계약직 여교사가 됐다. 같은 직업, 비슷한 관계를 완전히 틀어버렸지만, 또다시 교사와 제자 간의 사랑을 다룬 작품이라는 점에서 우려가 있을 법했다.

“저는 사랑이라고 생각지 않았어요. 제 생각에 효주는 가진 것도, 기댈 곳도 없는 사람이에요. 흔한 친구 한 명도 없죠. 마음에 쌓인 게 있더라도 하소연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사실 누구든 기대고 싶고, 가지고 싶은 게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그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재하에게 빠진 것으로 생각해요. 무모한 감정이 소용돌이치게끔. 제목부터 ‘여교사’고 교사와 한생 간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저는 그 감정이 중요했지 사제지간이라는 건 생각지 않았어요.”

누차 이야기한 것처럼 영화 ‘여교사’는 지난 김하늘의 필모그래피를 완벽하게 뒤집는 작품이다. 김하늘의 낯선 얼굴, 낯선 감각은 고스란히 스크린을 통해 드러난다.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한 얼굴을 발견”하곤 했으니 말이다.

“촬영하면서 계속해서 모니터했는데도 완성본을 보고 나니까 너무도 낯설더라고요. 목소리의 떨림이나 숨소리, 눈동자의 움직임, 표정 같은 게 제가 아는 저의 모습과 너무도 달랐어요. 가장 놀랐던 건 재하와 체육관에서 싸우는 장면이에요. 재하가 효주에게 ‘네가 너무 싫다. 널 좋아한 게 아니다’라고 할 때, 효주의 반응이나 목소리가 너무 좋더라고요. 낯설고 다급한 인상에서 느껴지는 불안감을 보면서 ‘내가 저런 연기를 했었나?’ 싶었어요.”

무겁고 진득한 감정들. 배우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를 잠식해버린 감정을 어떻게 씻어버릴 수 있었을까?

“예전에는 캐릭터의 감정에 사로잡혀서 (촬영) 앞뒤로 감정이 오래갔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몰입과 빠져나오는 시간이 짧아지더라고요. 거기에 ‘여교사’를 찍는 동안, 개인적으로는 너무 행복했던 기억이 많아서 금방 씻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다행이었죠. 촬영장에서 모니터하고 스틸컷만 봐도 가슴이 아팠는데, 촬영장을 나서는 순간 인간 김하늘에게는 행복한 일들이 많았으니까요.”

영화 '여교사'에서 효주 역을 맡은 배우 김하늘[사진=필라멘트픽쳐스 제공]


그야말로 완벽한 분리였다. 영화 ‘여교사’를 촬영할 당시, 결혼 준비에 한창이었던 김하늘은 무사히 효주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억장이 무너지고 슬픔에 빠지더라도, 결혼 준비에 달뜬 자신을 마주할 때면 효주가 타인처럼 느껴지곤 했다.

조곤조곤, 김하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궁금한 점이 생겼다. 드라마 ‘공항 가는 길’에 이어 영화 ‘여교사’까지 “이렇게 행복한 시기, 우울한 캐릭터들을 연기하게 된 이유”에 관해서다.

“하하하. 그러게요? 가장 행복한 시기에 우울한 캐릭터들을 많이 맡았네요. 저는 작품 따라 다르긴 하지만 캐릭터에 대한 욕심이 있는 것 같아요. 감독님께 ‘왜, (효주가) 저예요?’라고 물었던 것도 좋은 뜻이었어요. 다른 사람이 아닌 저를 떠올려준 것에 대해 고마움이었죠. 새로운 장르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너무도 즐겁고 앞으로도 이런 작품이 많아지길 바라요.”

한때는 로맨틱 코미디 계의 여왕이었다. “너무도 행복한 시기, 우울한 캐릭터”를 즐겨온 그에게 더 이상 ‘로맨틱 코미디’는 없는 걸까?

“사실 관심이 잘 안 가요. 20년 가까이 연기를 해왔고, 특히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사랑도 많이 받고 흥행도 됐는데 캐릭터나 연기적인 면으로 폭을 넓히고 싶었어요. 물론 로맨틱 코미디 연기도 쉽지 않지만 아무래도 비슷한 색깔이잖아요? 완전히 다른 색깔을 연기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예전보다 흥행은 못 할 수 있겠지만, 저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다른 연기 톤을 보여준다는 것에 박수를 쳐주실 것 같아요. 그에 대한 믿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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