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의 차 한 잔] 영성시대에 꼭 봐야 할 영화 '침묵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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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9-1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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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니스트(문학박사)

[사진=하도겸 박사 제공]


2016년 DMZ국제다큐영화제(DMZ International Documentary Film Festival, DMZ Docs) 국제경쟁부문에는 좀 특별한 영화가 상륙한다. 1975년생인 미국 감독 패트릭 쉔(Patrick Shen)의 '침묵을 찾아서'(In Pursuit of Silence, 2015)라는 81분간의 다큐멘터리가 그것이다. '체인지 유어 라이프!'(2009), '라 소스'(2012)에 이은 이 영화는 지성에서 영성으로 넘어가는 이 시대에 걸맞게 2016년 10회 달라스 국제 영화제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어느덧 인류의 잃어버린 유산이 되어버린 ‘침묵’을 찾아서 쉔은 영성시대의 ‘깨달음’을 침묵을 빙자해 설명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들은 그동안 다른 가지에 각각 맺혀있던 알음알이와 같은 포도알들을 하나의 실로, 어쩌면 보이지 않는 많은 실로 이어 ‘인연’의 시스템이라는 포도송이를 만들어 보이고 있는 듯하다.

우리에게 있어 침묵이란 1차적으로는 세상의 모든 소음으로부터 벗어나 정적을 찾는 일이다. 밖에서 보면 모든 것이 중단된 듯한 환상을 경험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때서야 보이는, 내면의 모든 현상이 밖의 세계와 통하는 네트워크를 발견하게 된다. 소음으로 알 수 없었던 내 몸의 호흡이나 기나 의식의 흐름을 ‘귀’가 아닌 또 다른 ‘감각’으로 인지하게 되는 이런 경험은 불교의 ‘선’에서 말하는 깨달음과 일면 유사하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후에 실생활에 임하는 것이 입전수수로 설명되는 생활선이다. 모든 삶의 과정에 최선을 다하고 집중하는 것이 동양의 ‘다도’에서 말하는 모든 동작에의 몰입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이유이다.

다도라는 침묵의 공간에서 우리는 소음 대신 잡념이나 집착을 여의고 말 대신 마음을 전한다. 어떤 때는 ‘미소’ 등의 움직임보다도 빠르게 ‘눈’이나 ‘표정’으로 전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일기일회라는 손님을 대하는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전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센노 리큐가 말하는 다도는 ‘깨달음’을 얻는 또 하나의 과정이다. 중국 당나라 시대에 '끽다거'(喫茶去)라는 유명한 화두를 남긴 조주(趙州) 종심(從諗, 778~897)의 다선일여의 일본적인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하도겸 박사 제공]


‘침묵’이란 ‘중단’이 아니라 또 하나의 말없는 ‘소리’이며 어쩌면 정돈되지 않은 처녀지의 ‘소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몇 분의 명상을 통한 이 소리 없는 소리에 대한 탐닉은 그동안 정리되지 않았던 소리에 대한 정리를 시도할 것이다. 그러한 과정속에서 머릿속의 볼펜없이 글, 그림, 지도, 비디오 등의 갖은 미디어를 그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런 미디어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억겁을 뛰어넘어 내게 그리고 우주에 존재했던 것의 일부이다. 그리고 이것을 알게 된 것을 온몸으로 아니 온 마음으로 이해하게 될 뿐이다.

때로 침묵은 장마철 한여름 밤에 ‘번개’에 동반하는 ‘천둥’으로 조용함에 지쳐가던 몸에 ‘벼락’과 같은 충격을 우리에게 던진다. 그런 전율이 일종의 작은 깨달음의 한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로 깨달음은 그런 경험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나 이외의 생명, 환경, 우주의 소리나 그 외의 것에 대한 인식의 확대를 말한다.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나 나아가 물건에 깃든 정령의 소리마저 연민을 가지고 자비롭게 바로 보는 것이 바로 진정한 삶의 실천으로서 구도의 길이다. 그리고 모든 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자체가 관세음, 즉 관음보살의 서원을 상징하는 보살도의 바로 그 길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보이듯이, 세상을 잊고 고요한 곳에서 걷다보면 미세하게 왼발과 오른발의 차이를 느끼곤 한다. 다리의 길이가 다르며 중량을 싣는 방법도 다르며 거기에 개인적인 병력이나 경험 등에 따른 심리적인 이유 등으로 우린 다르게 내는 소리를 통해 전해오는 나의 ‘아픔’을 비로서 경청하고 조금이나마 이해의 첫발자국을 뗄 수 있게 되는 듯하다. 두 발자국의 소리를 같게 하는 작업은 나와 마음과, 생각, 의지, 언어, 행동의 싱크로율을 높이는 ‘지행일치’ ‘언행일치’의 지속적인 완성을 위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한 과정에 섰을 때 비로서 보이는 것이 있다. 바로 내 몸의 피는 냇물과 같고 기운의 흐름은 바람과 같은 그것이다. 침묵이라는 말의 어원 속에 담겨 있는 바람이 잦아드는 곳과 중단이라는 의미는 결국 불교에서 말하는 세상을 이루는 4대요소인 지수화풍의 의미를 간략화한 것과 어쩌면 상통할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서양에서는 풍경 음향학으로, 동양에서는 풍수지리로 발전한 것은 아닐까?

이 다큐멘터리 자체가 머지않아 ‘거장’이 될 감독에 의해 정교하게 만들어진 하나의 구도의 텍스트이다. 그는 주변의 욕심을 끊은 방법을 ‘소리’의 사라지기 또는 지우기를 통해서 암시해 준다. 그것은 모든 사념의 흐름을 끊는 중단시키는 방법을 의미한다. 이 방법을 잘 음용하면, 우리는 소리뿐만 아니라 시각이나 미각 등의 모든 감각으로 인한 번뇌를 하나씩 끊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궁극에는 모든 것을 끊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요소들의 원근과 배치 등을 바꾸고 음향의 소리를 조절하여 나만의 ‘교향곡’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인생이며 수행자의 길이기도 하다. 그것의 침묵의 또하나의 의미이기도 하다. 중단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침묵 즉 중단한 것 또는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이 아닌 완전한 통제를 통해서 재구성된 나의 짜여진 삶을 제대로 바로 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이야 말로 큰 소음이 발생하는 100데시벨(db)을 초과하는 레벨 속으로부터도 자유자재로 벗어나 스스로의 침묵을 통해 ‘정적’을 만들어내는 지속적인 통제가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자연의 정적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 유전자의 욕구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그것을 너무 추구하는 것은 또 하나의 과장이고 허풍이 될 수도 있다. 침묵 마케팅에 대한 또 다른 다큐가 기대되는 부분이다.

예방의학, 면역력 강화, 항암세포의 활성도 증가, 힐링, 긴장 풀기, 릴렉스 등의 이점으로 표현되는 ‘침묵’은 사실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진정 우리가 들어야 할 다른 소리를 듣기 위한 입문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심장박동과 숨결 같은 호흡, 그리고 리듬이 그것이다. 영화 속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침묵은 원래부터 내 안에 있었던 것으로 어느날 다른 세상에서 갑자기 온 것이 아니다. 그렇다. 밖이 아닌 안을 보게 하는 것이 침묵으로 어쩌면 욕심을 버리거나 비우거나 내려놓는다는 뜻에서 움켜 쥔 주먹을 펴는 과정으로 비유될 수 있다.
 

[사진=하도겸 박사 제공]


우리가 소음에 둔감해진다는 말은 중의적으로는 사회현상을 외면하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경향과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쉴 새없이 활동하는 우리의 뇌는 이미 한계점에 이르렀고 이미 그 속에는 사색할 공간조차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단 3분이라도 아니 1분의 짧은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여유가 없거나 고의적으로 중요하지 않기에 내지 않는다고 이해하면 좋다는 것이 더 적절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동의도 얻지 않은 채 우리 주변으로 기차가 지나고 비행기가 날아가고 버스와 트럭이 굉음을 내고 사라진다. 그러한 소음은 한밤중에도 멈추지 않고 지속된다. 이런 환경 속에 사는 우리는 어쩌면 소음만으로도 충분히 죽을 수 있다. 스트레스 고혈압 등의 병은 물론이고 정서적인 불안으로 우리는 극단적으로는 짜증스러운 소음을 피해 자살을 더 쉽게 선택할지도 모른다.

소음에 익숙하거나 둔감해지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음에 대해서 침묵한다. 이런 침묵은 소음을 무차별적으로 생산하는 신산업사회에 대한 소극적인 반항이나 외면일 뿐 아니라 정작 필요한 대화와 소통을 방해하기도 한다. 삶에 있어서 필요한 매뉴얼처럼 우리는 소음(어쩌면 침묵)에 대한 사용 매뉴얼을 얼른 가지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항상 소음에 대해서 어쩌면 침묵에 대해서도 이래도 정말 좋은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점검이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 불교에서 말하는 조고각하(照顧脚下)의 의미가 아닐까?

영화 '침묵을 찾아서'는 이와 같이 침묵을 구실로 삼아 우리들의 인생에 다양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그러나 이 다큐 역시 단지 하나의 설명(서)에 지나지 않는다. 남은 것은 언제나 그러하듯이 우리의 몫이다. 이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몸서 탐구해야 할 시간이다. 아니 침묵(깨달음)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에 멈추지 않고, 나아가 삶속에서 탐구를 해야 한다. 머리로 하는 유희가 아닌 몸으로 하는 실수(실제 닦음)가 필요한 시기이다. 당신은 지금 침묵하고 있는가? 아니 제대로 침묵할 수 있는가!

※ 이 영화는 오는 26일(오후 1시) 메가박스 백석, 27일(오후 6시 30분) 메가박스 파주출판도시에서 두 번 상영된다. 자세한 것은 누리집(dmzdocs.com)를 참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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